요즘 네일아트는 하나의 패션이자 문화가 되었다. 색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화려하다. 작은 손톱 위에 그림을 그리고 보석을 붙이는 것을 보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인공의 아름다움이 궁극적으로 닮고자 하는 것은 자연이 가진 색과 조화가 아닐까.
아무리 화려하고 정교한 네일아트라 해도 어린 시절 봉숭아꽃으로 손톱을 물들이며 느꼈던 그 감성까지 따라오기는 쉽지 않다. 네일은 시간이 지나면 손톱이 자라면서 경계가 생기고 다시 손질해야 하지만, 봉숭아물은 손톱이 자라는 시간과 함께 조금씩 밀려나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스럽게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우리 집 대문 양쪽에는 해바라기가 자랐다. 내 키를 훌쩍 넘어선 해바라기는 담장보다 높이 자라 한여름 햇살을 향해 커다란 얼굴을 들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봉숭아꽃이 피었다.
봉숭아꽃과 잎을 따서 돌로 곱게 찧어 손톱 위에 조심스레 올렸다. 잎으로 손가락을 감싸고 실로 동여매면 밤새 손끝에 꽃물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하나씩 풀어볼 때의 설렘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얼마나 물이 들었을까?”
조심스럽게 잎을 벗겨내면 손톱마다 붉은 봉숭아물이 곱게 배어 있었다. 그 작은 변화가 얼마나 신기하고 예뻤던지 모른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꽃과 잎을 만지고 찧고 기다리면서 자연의 색과 시간의 의미를 하나씩 배워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옛집도 변하고 마을의 모습도 달라졌으며 그곳에 살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 대문 양쪽의 해바라기만은 아직도 그때처럼 키가 크다. 그리고 그 해바라기 아래에서 나는 여전히 봉숭아물을 들이고 있다.
요즘 유아·아동·청소년을 위한 체험 행사장을 찾아가 보면 프로그램이 참 다양하다. 각종 만들기와 공예, 인공적인 아트 체험은 넘쳐나지만 정작 우리 세대가 자연스럽게 경험했던 ‘봉숭아 물들이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봉숭아 물들이기’를 제안해 본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아이들이 봉숭아꽃과 잎을 직접 보고 만져본다. 작은 용기에 꽃과 잎을 넣고 찧어보게 한다. 그것을 손톱 위에 올리고 잎이나 안전한 재료로 감싸 고정한 뒤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기다린다. 얼마 뒤 아이가 직접 손가락을 풀어보게 하는 것이다.
“내 손톱은 무슨 색이 되었을까?”
바로 결과가 나타나는 디지털 시대의 아이들에게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교육이 될 수 있다. 꽃을 보고, 만지고, 향을 맡고, 찧어보고, 손끝에 올리고, 색이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모든 과정이 자연과 교감하는 체험이다. 교육은 반드시 많은 것을 설명해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은 꽃 한 송이를 직접 만져보는 경험이 긴 설명보다 오래 남는다.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했던 기억은 어른이 된 뒤에도 마음 한편에 남는다. 삶이 힘들 때 문득 떠올릴 수 있는 따뜻한 기억 하나,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정서의 뿌리 하나를 만들어주는 것도 교육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이 자연을 닮아가는 시대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완성된 인공의 아름다움만 보여주기보다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하게 해주면 어떨까. 해바라기 아래에서 봉숭아물을 들이던 어린 날의 나처럼 말이다. 손끝에 스며든 봉숭아꽃의 붉은빛은 언젠가 지워지지만, 자연과 함께했던 기억의 색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