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빼앗는 것 아니냐’
‘어른들이 채점하기 편하려고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명쾌하다. 문제의 원인을 축소하고, 진단을 쉽게 내리며, 해결책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교사가 수학여행을 기피하는 이유는 ‘책임 회피’이고, 교육자로서 그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을 담가야 한다’는 논리다.
교사와 교육을 바라보는 협소한 시각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객관식 시험을 치는 이유는 교사들의 ‘편리함’ 때문이니, 아이들을 괴롭히는 입시 체제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단순함에 있다. 현상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실타래가 어떻게 엮였는지 들여다보지 않는다.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는 영리한 정치가의 화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유능한 정책가로서의 세밀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문제는 형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교육당국은 서·논술형 시험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AI 시대로의 변화를 내세운다. 주어진 질문에 정확한 정답을 내놓는 일은 AI가 대신할 수 있으니, 정답 맞히기식 교육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인간에게는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주어진 범위 내에서의 사고, 생각의 다양성을 차단하는 발문, 지식과 이해만을 평가하는 저차원적인 방식으로는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사고력을 길러낼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로 선다형 평가를 악(惡), 서·논술형 평가를 선(善)으로 구획하는 이분법적인 태도에는 다소 오류가 있다. 각각의 평가 문항이 타당하게 측정할 수 있는 사고 수준이 다를 뿐, 하나의 평가 문항이 다른 평가 문항을 완벽하게 대체한다고 보는 논리는 교육학적으로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제는 문항의 형식이 아니라 문항의 질이 아닐까? 현재도 일부 시도교육청은 지필고사에 서·논술형 평가 문항을 출제할 것을 강제한다. 그런데 지필고사에 출제되는 서·논술형 평가 문항을 ‘고차원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는 문항이라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원과 이의 제기를 막기 위해 대다수 서·논술형 평가 문항은 허술하게 만들어진다.
지문 속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빈칸을 적당히 채워 문장 형식으로 서술하게 만드는 문항이 부지기수다. 선다형 문항과 다르지 않은 서·논술형 평가 문항을 출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현장에 있는 많은 교사가 우려한다. 새로운 형식의 평가를 아무리 확대한들,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기존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AI 자동 채점은 교사의 부담을 덜어주지 않는다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는 교사의 채점 부담과 학생·학부모의 민원 제기를 AI가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증명되지 않은 기대와 선언에 가깝다. AI 채점 시스템이 도입되면 채점의 정확성이 향상되고,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얻으며, 이의 제기에 대한 교육공동체 간 소통이 더 수월해질까? 단언컨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발생한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2023년, 텍사스주는 3학년부터 12학년까지 치르는 주 학업성취도평가(STAAR)를 개편했다. 선다형을 줄이고 구성형, 곧 서·논술형 평가 문항을 6~7배 늘렸다. 채점 부담이 폭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채점을 위해 인력을 늘리려면 연간 1,500만~2,000만 달러를 추가로 지출해야 했다. 텍사스주는 자체 개발한 자동 채점 엔진(ASE)을 대안으로 도입했다. 3,000건의 답안에 대한 인간의 채점 결과를 학습시켜 해당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2024년부터 구성형 답안의 채점을 기계에 맡겼고, 2023년 약 6,000명이던 임시 채점 인력을 2,000명 미만으로 줄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댈러스 교육구(Dallas ISD)에서는 학년에 따라 45~50%의 학생이 서술형 문항에서 0점을 받았고, 주 전체로도 3학년의 39%, 5학년의 48%가 0점을 받았다. 5학년만 놓고 보면 전년도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뛴 수치다. 당연히 해당 교육구는 재채점을 요청했다. 결과는? 사람이 다시 채점한 답안의 3분의 1 이상에서 점수가 올라갔다.
텍사스주 교육청은 지금도 채점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2024년 주(州)교육청의 권한과 관련된 소송에서 자동 채점의 정확성과 관련된 재판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구성형 문항은 애초에 정밀한 점수가 나오는 문항이 아니어서, 재채점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기계와 사람의 판단이 다르다는 사실뿐이며 어느 쪽이 옳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기계를 도입했으나, 교육공동체는 반발했고, 논란이 이어졌으며, 결국 재채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누구의 판단이 옳았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이 사례에서 한국의 미래를 읽었다면 과도한 우려일까?
시스템과 시스템의 대결, 예쁜 손글씨를 향한 열풍 … 또 다른 사교육의 세계
사교육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공교육에서 사용하는 자동 채점 알고리즘이 공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교육 시스템은 막대한 자본력을 들여 또 다른 AI 채점 시스템을 개발할 것이다. 결국 시스템 간 막대한 경쟁이 시작될 게 분명하다. 이의 제기의 근거는 인간의 전문적인 판단이 아니라, 고도화된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채점 시스템의 판단일 것이다.
여기에 맞서 학교는 또다시 시스템으로 대응할 테다. 그러나 AI 채점 시스템의 판단 근거를 인간 교사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학습자의 수행 과정과 결과에 대한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처리 과정은 블랙박스에 가깝다. 인간 교사는 이 블랙박스를 해독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길 게 분명하다.
미시적인 부분이지만 손글씨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단위 학교의 서·논술형 평가는 대부분 손으로 쓴다. 자동 채점을 위해서는 손글씨를 변환해야 한다. 그러나 OCR 기능은 100% 정확하지 않다. 수학 서·논술형 답안의 손글씨 답안을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채점한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미세한 기호 인식의 차이 등이 부정확한 채점 결과를 유발한다고도 한다. 결국 인공지능에 오독되지 않으려면, 학습자의 예쁜 손글씨가 중요해질 것이다.
만약 부정확한 손글씨 때문에 잘못된 채점이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민원과 소송이 이어질 것이다. 그전에는? 예쁜 손글씨를 쓰는 학원이 성행할 것이다. 바른 글씨, 예쁜 글씨 쓰기 연습 학원이 등장할 게 뻔하다. 한국의 사교육 시장은 놀라울 만큼의 적응력과 확장력을 갖추고 있다. 제도와 정책의 변화가 가져올 부수적인 효과를 정책 당국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를 묻게 되는 이유다.
모든 정책에는 디테일이 중요하다
다양한 반발과 우려가 발생하는 지점을 짚었지만, 내신과 수능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하고, 절대평가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정책 흐름은 바람직하며 시의적절하기까지 하다. AI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사고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했고, 다양한 기술도 언젠가는 정책 변화와 관련된 공동체의 우려를 잠재울 정도로 발전할 것이다.
아마도 이 정책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책이기도 할 것이다. 지나친 경쟁, 그로 인한 좌절과 무기력은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오래된 고민이 아니었던가. 입시제도의 개혁으로 이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시도를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과 논리에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당국과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AI가 채점 부담을 덜어 줄 테니까’, ‘교사들이 편하기 위해 객관식을 치르는 것이니까’, ‘AI 시대에 선다형 평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등의 논리에서 지나친 자기 확신과 정책적 단순함을 엿보았다면 과장일까? 아무리 선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실하고 오류투성이면 공격당하기 마련이다. 정책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섬세하게 고민하지 않고, 선한 의도와 목적만 강조하면 이 시도는 또다시 좌초될 게 뻔하다. 모든 정책 입안자가 명심해야 할 유명한 명언이 있지 않은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