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중요성
얼마 전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 데이’ 행사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청소년들의 혐오 표현이 사회적 화두로 부상하였다. 이 역시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주장과 ‘혐오 표현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즉 혐오 표현과 관련한 쟁점의 중심에는 당해 혐오 표현이 표현의 자유라는 핵심적 기본권의 영역에서 논의된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기본권 장전인 「수정헌법」 제1조에서 선언하고 있는 기본권이 바로 표현의 자유이고, 우리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 민주 체제에 있어 핵심적인 기본권이 바로 당해 표현의 자유인 것이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와 혐오 표현의 문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특히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공적인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공표하고 그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일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표현의 자유가 다른 기본권과 달리 우월적인 지위를 향유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표현의 자유 역시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무한정 인정되는 절대적인 기본권은 아니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표현의 자유 역시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본권은 ‘국가-국민’이라는 관계, 즉 국가가 잠재적인 기본권 제한자로서의 지위를 향유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국가-국민①(표현자)-국민②(표현 대상)’라는 관계, 즉 국가의 잠재적인 보호자로서의 지위를 향유하는 관계를 보인다. 표현의 자유의 행사가 다른 기본권, 특히 인격권과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국가는 이와 같은 기본권 상충의 상황을 해결하여야 한다. 이 경우 국가는 하나의 기본권을 우선시키는 이익형량의 원칙이나 양 기본권 모두가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규범조화적 해석의 원칙을 원용할 수 있는데, 양 기본권 모두 정신적 기본권으로서 그 우월을 판단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규범조화적 해석의 원칙을 원용할 수 있다(헌재 1991.9.16. 89헌마165).
다만 특정 표현이 타인의 명예를 침해한다면 국가는 그 표현을 규제할 수 있고 혐오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 즉 규제가 정당하다고 무심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혐오 표현의 정의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존재하지 않고, 혐오 표현 역시 원칙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범위 안에 포섭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혐오 표현 규제의 특수성 및 함의
혐오 표현을 한 자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됨은 물론이다. 우리 역시 혐오 표현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면, 형사적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다른 유형의 제재 역시 예정되어 있다. 다음의 [표]에서 보듯 혐오 표현에 대한 여러 유형의 제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혐오 표현의 범위가 상당히 넓기 때문이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여 혐오 표현 규제에 소극적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법원은 성별, 인종·피부색, 성적 지향 및 국적 등의 사유에 근거하여 소수자에게 오명을 씌우는 발언과 행동을 금지하는 미시간 대학교의 규칙을 위헌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최근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라는 학생인권조례 조항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표현의 자유가 무한정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공격적인 발언과 선동을 초래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데 실제로 우리는 이에 대한 규제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현장 내 혐오 표현 문제의 특수성
혐오 표현 역시 표현의 자유의 보호범위 안에 있다고 보고 있어서 이에 대한 규제는 위 [표]에서와 같이 상당히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방안에 기대고 있다. 학교 현장 역시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입장을 가지고 대응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그 대상이 가치관과 판단 능력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 학생이라는 점에서 규제와 제재 방안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더욱이 현재의 혐오 표현에 대한 제재 방안은 책임 능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를 그대로 학교 현장에 적용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학교 현장에서의 혐오 표현 대응과 관련해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르도록 지도·교육하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혐오 표현 규제와 관련해서는 처벌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표에서의 ‘c 영역’에 집중하는 가운데, ‘b 영역’에서의 혐오 표현 규제 방안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규제와 제재 중심의 접근보다는 교육과 지도를 통하여 학생들이 혐오 표현의 문제점을 자발적으로 인식하고 스스로 책임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a·b·c 영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혐오 표현의 대응 방안 모두 학교 내 교사의 책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교사는 학교 현장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혐오의 시대,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이들은 SNS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 특히 또래 문화를 통해 혐오 표현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튀어나온 혐오 표현에 대해 “혐오 표현인지 몰랐어요”라고 변명하는 아이들을 무작정 질책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 교사가 “그 말은 나쁜 말이니 사용하지 마”라고만 지도하고,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또다시 혐오 표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우선 교사는 혐오 표현의 의미와 그 공격성과 차별성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우선 혐오 표현의 의미와 특성을 이해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같은 표현도 맥락과 상황 그리고 상대방에 따라 그 함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실질적인 지도를 해야 한다.
사실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 데이’ 논란 역시 ‘탱크’라는 말 자체만으로 그 의미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5월 18일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사건과 그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결합하면서 표현의 특정한 의미가 확정되고, 결국 그 과정에서 역사적 경험을 조롱하거나 관련자들의 존엄을 훼손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사건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일 수 있다.
언어에는 사전적 의미뿐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 학생들에게 혐오 표현을 가르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을 읽는 능력을 가르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혐오 표현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의 목록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말이 어떠한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상대방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말하고 비판하고 반박할 수 있는 자유롭고 편안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생각의 힘과 정서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루소는 자신의 저서 <에밀>에서 아이의 자연스러운 발달 단계와 본성에 따라 스스로 경험하며 성장하도록 교육해야 하지만, 무엇을 가르친 후에는 배운 것을 계속 확인하여야 함을 강조했다. 혐오 표현의 대응에 있어서는 서둘러 확보한 성과보다 과정 혹은 절차가 중요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간 균형을 도모하는 구체적이고도 치밀한 작업, 즉 그 절차와 과정의 열쇠는 교사가 쥐고 있다. 혐오 표현 대응은 결국 한 아이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지도하는 교사의 소명에서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