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첨 성 대 북쪽 산 가리지 않는 북두칠성 관측에 적합한 경주 시내 위치 '제단' 아닌 '천문대'로 밝혀져
첨성대라면 경주 첨성대만 연상하지만 고구려와 백제에도 첨성대는 있었다. 고구려 첨성대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평양성 안에 9개 사당과 9개 못(池)이 있는데 9개 사당은 바로 9가지 별이 날아 들어간 곳이며 이 못 옆에 첨성대가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경주 첨성대에 대해 학자들 간에 열띤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 언론은 '첨성대: 천문대인가, 제단인가'라는 표제까지 달았다. 해방이후 첨성대는 줄곧 천문대로 알려졌으나 높이가 10여미터에 불과한데다 상부로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되지 않아 천문대 역할을 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첨성대 내부는 자연석 상태로 있고 내부가 좁아 관측자가 출입하기에도 불편하다. 더구나 하늘을 관측하는 천문대가 도심지인 경주 한복판에 있는 것 때문에 천문관측시설이 아닐지 모른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 논란의 결론은 신라역사과학관(구 동악미술관)에 있는 신라 밤하늘을 재현한 천문도(天文圖)와 혼상(천구의)이 해결해 주었다. 혼상은 하늘의 별들을 보이는 위치에 따라 천구면에 표시한 것으로 별의 제작법은 천문도와 동일하지만 천장에 평면적으로 그린 천문도와는 달리 일주운동에 따라 회전하면서 별들이 지평선에 뜨고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혼상이 놓여 있는 나무 판자의 가장자리에 첨성대를 중심으로 첨성대에서 보이는 산들을 배치했는데 그 결과 북쪽 부분에 산이 없이 뚫린 부분이 생겼다. 이것은 첨성대의 자리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북두칠성의 움직임을 관측하기에 적합한 자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북두칠성을 잘 관측할 수 있는 첨성대는 북쪽 부분이 산에 가리지 않고 보이는 지금의 자리에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고대 천문도에 표시되어 있는 5등성의 희미한 별에 북극이라고 적혀 있는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이 별은 현재 하늘에서는 북극에서 약 6°이상 떨어져 있는 기린자리에 속해 있지만, 약 2000년 전 중국에서 별자리를 정하던 당시에는 북극 가까이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선덕여왕 시대에는 이 별이 북극에서 불과 1°떨어져 있었으므로 신라시대 사람들이 그 별을 북극이라고 부른 것이 결코 오류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결국 첨성대가 경주시내에 있었다는 것은 신라인들이 천문관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음을 뜻한다. 첨성대의 뿌리는 고려 천문학으로 이어져 한 단계 더 높이 발전한다. 고려는 서운관(태사국과 태복감의 후신)이라는 전문 천문기상 관측기관을 설치했다. 이후 조선말기까지 천문기상 관측과 연구는 서운관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제 첨성대에 깃든 과학정신을 계승, 우리나라 천문학을 세계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일이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라 하겠다. <이동에너지기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