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지난 4월 19일에 수능시험 개선책을 발표하였다. 그 핵심은 입학전형요소별로 다단계 전형이 도입되는 2002학년도부터 수능 총점제를 폐지하고 등급제를 도입하여 입시경쟁을 획기적으로 완화함과 동시에 대학이 학과별 특성을 고려하여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등급은 영역별 등급과 5개 영역을 합친 종합등급으로 구분하여 표시한다는 것이다. 다단계 전형제도와 더불어 이러한 수능 등급제의 도입은 현행 입시제도가 내포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학교는 이미 1996년에 입시제도 개선을 위하여 자체적으로 수행한 "서울대학교 입시방법의 타당성 평가 연구"에서 고교장 추천입학제, 다단계 입학전형제 등의 도입을 건의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서는 수능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1차 합격하고, 2단계와 3단계에서는 과목별 가중치, 학생부 성적, 논술, 면접 등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을 제안하였다.
대학입시제도가 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고등학교가 대학입시제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본연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하며,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에서 적성과 능력에 따른 진학이 이루어 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입시제도는 무한 학력경쟁을 완화하고 의미있는 교육적 경쟁을 창출하며, 학생들을 입시구속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되돌려 줌으로써 학교현장을 즐거운 '학습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교육부가 제시한 대학입시 개선안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학생, 고등학교, 대학 모두에게 환영받을 만하다. 우선 학생의 입장에서는 대학입시에서의 과열 경쟁이 완화되고 입시준비로 인한 학업부담이 크게 경감되어 의미있는 고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전형요소를 단순 합산한 총점을 기준으로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는 현행의 제도하에서는 경쟁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보다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하여 한없는 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새 제도에서는 수능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동등한 등급을 받게 되고, 대학별로 1차 합격에 필요한 최저등급을 사전예고 하게됨에 따라 합격안정권에 이미 진입한 학생의 경우에는 더 이상 소모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의미있는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게 될 것이다. 수능성적에서 수석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수능성적의 총점보다는 등급이 중요하고, 학생이 전공하고자 하는 학문분야 관련 교과목의 등급이 중요하므로 대학입시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덜 받게 되며,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신장시키는 교육을 할 수 있게 된다. 입시전형에서 학생부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됨으로써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하게 될 것이다.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선발에 대한 자율권의 폭이 크게 확대되고, 전공별 적격자 선발의 타당성이 제고되며, 입시 업무 부담이 크게 경감될 것이다. 1차 합격에 필요한 최저 수능등급을 대학자체에서 결정하고, 학과별 또는 모집 단위별로도 영역별 등급을 결정하며, 2단계와 3단계에서는 학생부 성적, 논술, 면접 등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되 자격기준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형단계별로 자동적으로 합격 불합격자가 판명됨으로써 최종단계에서는 소수의 합격자를 대상으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면접이나 실기시험을 심도있게 실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입시업무 부담이 크게 경감됨은 물론 적격자 선발에 보다 심혈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입시제도에서는 동점자가 많이 생길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므로 각 대학에서는 동점자 처리기준을 사전에 면밀하게 수립해야 할 것이다. 보다 이상적인 것은 각 대학이 입학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수한 학생이 많이 지원했을 경우에는 정원을 초과해서 선발할 수 있고, 반대로 우수한 학생이 적게 지원했을 경우에는 정원보다 적게 선발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수능시험을 고교졸업자격고사로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고교 전교과에 대한 학업성취도의 객관적인 측정을 위한 표준화 학력고사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대학에서 고교졸업자격고사 등급을 입시전형자료로 활용하게 될 때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그 질적 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 <윤정일 학교바로세우기실천연대 운영위원장,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