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국민대 교수 재직시절 한 논문에 대해 일부 언론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교육부(부총리)와 해당 언론 사이에 공방이 한창이다.
표절 의혹을 최초 보도한 해당 언론은 25일 이틀째 공세를 폈고 김 부총리는 해당 기자에 대해 명예 훼손 소송 등 법적 대응에 착수키로 했다.
정치권도 여야로 나뉘어 공방에 뛰어들고 있어 표절 의혹의 실체가 주목된다.
연합뉴스는 표절 여부는 한 두 학자의 말로 판단하기 보다는 전문가 집단이 가려내야 할 부분이라는 점에서 표절 논쟁과 가치 판단은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관계를 짚어본다.
◇ 신xx씨 논문 = 당시 상명여대 총무처장이었던 신씨(사망)의 논문 제목은 '도시재개발에 대한 지역주민의 정책행태-세입자를 중심으로'이며 1988년 2월 심사를 통과했다.
유모씨(정년퇴임)가 지도교수였고, 김병준 교수는 부심을 맡아 논문을 지도했다.
데이터는 당시 재개발이 예정된 지구의 주민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활용됐다.
◇ 김병준 학술대회 발표 논문과 자료 출처 = 김병준 당시 국민대 교수는 1987년 12월10일 한국행정학회 학술대회에 자신의 이름으로 '도시재개발에 대한 시민의 반응-세입자를 중심으로'란 논문을 게재했다.
그는 머릿말 각주에서 '설문 데이터는 상명여대 신xx교수에 의해 수집된 것이다. 데이터의 사용을 흔쾌히 승락해준 신 교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설문은 1987년 9월16일에서 25일 사이에 재개발이 예정된 지구에서 지구당 100명씩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는 숙련된 대학생 12명에 의해 개별 응답자 단위로 면접에 의해 행해졌다"고 적시했다.
이 논문은 한국행정학회보에 이듬해인 1988년 6월 실렸다.
이에 대해 해당 언론은 24일자에서 "김병준 교수가 심사를 맡았던 제자의 논문을 베꼈다"고 보도했고, 교육부는 "김병준의 논문이 신씨의 논문보다 먼저 작성됐다"고 해명했다.
◇ 김병준 교내 학술지 게재 논문과 자료 출처 = 김 교수는 이어 국민대 법학연구소와 사회과학연구소가 발간하는 '법정논총 제10집 별책 1987'(발간시점은 87년말인지 88년초인지 불분명)에 이 논문을 다시 실었다.
논문집 머릿말에는 각주가 없는 대신 본문에 '연구기간과 연구비에 따른 제약으로 본 연구를 위한 별도의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못하고 '유사한 연구자'가 다른 연구 목적을 가지고 수집한 것을 재활용했다. 다른 연구자가 설정한 설문항목 중 본 연구의 의도에 부합되는 것만 골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데서 오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데, 뒤의 반응행태 분석 부분에서 보이는 것처럼 하나의 변수가 단일 설문항목에 의해 측정되어 지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고 적혀있다.
이에 대해 해당 언론은 "김 부총리가 논문을 1988년 2월 발행된 법정논총에 기고할 당시 제자 신모씨가 자료를 수집했음을 감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25일자에 보도했다.
교육부는 "논문의 각주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본문에서 다른 연구자의 데이터를 재활용했고 데이터의 선택적 사용에 따른 문제점까지 거론했다"며 반박했다.
◇ 논문 발표 시점 등 쟁점 = 해당 언론은 24일자에서 "김 부총리의 논문이 신씨의 논문을 요약했으며 신씨가 논문에서 사용한 표 48개 가운데 5개를 그대로 옮겨 사용하거나 수치만 일부 변경해 활용했고 결론에서도 어휘 순서와 단어가 조금 바뀌었을 뿐 문장 자체가 유사한 것도 17개에 이른다"는 점을 표절의 근거로 들었다.
해당 언론은 25일에서는 "국민대 교내 학술지에 기고할 당시 제자 신모씨가 자료를 수집했음을 감췄다"고 보도했다.
시기적으로 보면 김병준 학술대회 논문발표(87년 12월10일)-김병준 국민대 학술지 게재(학술지 표지에 1987년으로 돼 있으나 발간 시점은 불명확)-신xx 논문 심사 통과(88년 2월) 순이다.
이는 김 부총리가 "어떻게 나중에 나온 논문을 표절하냐.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있냐"고 반문하는 가장 큰 근거가 되고 있다.
김 부총리는 24일 "두 논문은 접근방법 등이 다른 별개의 논문이고 주로 사용된 분석의 방법과 내용 기술의 방법 또한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25일 "제자가 나의 논문을 원용했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김 부총리는 "행정학회보와 교내 학술지에 신씨의 논문 제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당시 신씨의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논문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논문의 제목 등을 밝힐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 부총리는 또 "당시 설문조사 결과를 공유한다는 전제 아래 지도교수와 함께 신씨의 연구에 필요한 설문조사의 틀을 작성하는 데도 크게 관여했고 조사의 데이터 입력과 분석과정에서의 지도에 있어서도 거의 합동연구라 할만큼 적극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신씨 논문의 지도교수였던 유모(정년퇴임)씨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신씨가 그때 수집한 도시빈민 자료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신씨가 김병준 교수와 전공적으로 매치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도를 적극적으로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한 논문의 틀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교수의 조교였던 소순창 교수(건국대 행정학과)도 "두 논문이 다른 연구방법을 사용한 별개의 논문"이라며 "신씨 논문은 다중회귀분석을, 당시 김 교수의 논문은 단순빈도분석을 사용해 방법론이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