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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교육경쟁력 회복 위한 총체적 정책 전환 시급

(2) 학교경제교육 실태와 과제

‘경제’수업시수 절대 부족…‘지리’의 1/3 수준 못 미쳐
교사전문성 위해 체계적 교사재교육․연수 시스템 필요

교육과정 개발 단계부터 수요자․경제학계 참여 필요
수능시험 ‘경제’ 선택 13% 불과…자료개발 등 힘써야


청소년의 낮은 경제인식과 경제교육의 문제점

지난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는 우리 청소년의 경제인식 수준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에 의하면 과반수의 학생들이 경제발전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소비자나 기업이 아니라 정부이며, 정부개입 없이는 경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땅을 살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라는 쇄국주의적 주장에 동의하는 학생들도 70%나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답변을 한 학생들의 비율이 학년이 높아져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비록 3년 전의 것이긴 하지만 지금 다시 조사를 해본다 하더라도 결과는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굳이 이 조사결과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청소년 경제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2003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과 미국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경제이해력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미국 학생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낮은 점수를 받았을 뿐 아니라 경제과목을 이수한 미국 학생들은 점수가 30% 이상 높아진 반면 한국 학생들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는 실효성 있는 경제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교육의 문제는 교사들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5년 9월에 사회과 중등교사 4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5%가 현행 학교경제교육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응답하였다.




◆ 학교 경제교육 부실의 원인

청소년 경제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초중고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의 경제 관련 내용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사회 각계로부터 제기되었다. 2005년 10월에는 재정경제부와 KDI를 비롯한 5개 기관이 초․중․고 경제관련 교과서 및 지도서 117종을 검토하여 총 446곳의 오류를 지적하여 수정작업이 추진되는 일도 있었다. 필자도 당시에 교과서 평가 작업에 참여하였는데, 교과서 내용의 오류도 문제지만 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가 다분히 무성의하게 급조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교과서는 교육과정, 교사, 입시제도 등 경제교육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의 일부에 불과하다. 경제교육 시스템이 시장경제의 원리와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시키지 못하고 학생들의 논리적, 객관적 사고력을 기르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교과서의 오류 역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문제제기에 앞서 스스로 걸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초중고 경제교육의 문제점을 총체적인 시각에서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교과서의 경우만 보더라도 좋은 교과서가 집필되기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교과서의 가격, 저자인세, 출판사의 이윤 등은 교육부 규정에 의해 낮은 수준에서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우수한 집필진을 섭외하고 충분한 시간과 보상을 제공할 여지 자체가 없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검정교과서의 경우 출판사들이 이윤을 판매비율과 무관하게 공동 분배하기 때문에 좋은 교과서를 만들 유인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검정에 통과되기만 하면 동일한 이윤을 얻기 때문에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 인센티브는 없으며, 지속적인 수정 및 품질 관리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검정과정 역시 기간과 예산의 부족으로 인해 명백한 오류를 잡아내는 것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교과서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경제교육 시간의 절대적 부족이다. 공통기본교육과정 사회과목에서 경제 관련 내용의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경북대 오영수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중학교 이후의 경우 경제 교육내용의 비중은 단원 수로는 9% (3/34), 수업시간으로도 11% (49/442)에 불과하며, 이는 지리(단원 기준 38.2%), 세계사(26.5%)에 비해 매우 적은 수준이다. 그나마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경제 부분을 명시적으로 다루는 내용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2-3학년의 선택과목에서도 ‘경제’ 과목은 다른 과목들이 훨씬 세분화, 전문화된 것에 비해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는 사회 군에 포함된 10개 과목 중 하나에 불과하고 수업 단위수도 적다. 반면 ‘지리’의 경우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 등 세 과목이나 포함되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7차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도 경제 관련 단원 및 과목의 비중은 더 높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는 등 경제교육 시간 부족의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지적해야 할 문제점은 교사의 전문성 부족이다. 현재 중․고등학교 ‘사회’ 및 ‘경제’과목 교사는 주로 사범대학의 사회교육과에서 양성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교육과에서는 교육학,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 등 6개 분야를 모두 전공과목으로 공부해야 한다. 더구나 공통사회로 운영하는 중학교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 위의 분야들에다가 덧붙여 역사와 지리과목들까지 추가로 공부해야 한다. 경제학은 인문사회과학 중에서도 학습 난이도가 높은 과목에 속한다. 짧은 학부과정 동안 다양한 내용을 소화해 내야 하는 교사들이 충분한 경제 전공능력을 배양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현직에 나간 교사들을 도와줄 수 있는 연수교육이나 학습지도 자료가 제대로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의 경제 학습 기피 분위기 역시 지적할 수 있다. 예컨대 2005년도 모의고사를 기준으로 하면 대입수능시험에서 ‘경제’ 과목의 선택비율은 총 응시자의 13% 내외에 불과하다. 이는 같은 사회과목 중에서도 사회문화(37%), 한국지리(36%), 한국근현대사(29%) 등에 비교할 때 크게 낮은 것이다. 경제과목을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 수능성적을 받기 어려운 과목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교에서의 청소년 경제교육은 부실한 교과서, 경제교육 시간의 부족, 교사의 전문성 부족, 학생들의 회피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있어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간부문의 경제교육이 공교육을 적절히 보완해 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KDI와 전경련 등 여러 기관들이 경제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교육 체계나 수준, 교육량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수능과 대학입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국내 교육의 현실에 비추어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경제교육을 실시하는 데에는 원천적인 어려움이 있다. 최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어린이 경제교육 붐이 일고 있으나 이 역시 재테크와 주식투자 등 말초적인 것들에 치우쳐서 제대로 된 경제교육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 학교 경제교육 개선을 위한 과제

초중등 학교의 경제교육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경제교육의 문제는 사실 우리나라의 공교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 문제점들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총체적인 정책전환 없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손을 놓고 기다리고 있기에는 경제교육의 중요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천 가능한 과제부터 발굴하여 지속적으로 개선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교과과정의 내용개발 단계에서부터 교육수요자와 경제학계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제시가 필요하다. 특히, 교사 및 교육수요자들의 요구를 파악하는 피드백 시스템을 마련하여 교과과정에 사회적인 교육수요를 반영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편, 교과서 집필진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검정과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원고료와 같은 경제적 보상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물론, 학계의 최고 권위자들이 교과서 집필에 명예롭게 참여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검정과정 역시 인원과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엄정하고도 지속적인 검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수 교과서를 선발하여 시상하거나 수요자인 학생, 교사로 하여금 교과서 만족도를 평가하여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저자와 출판사에 지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경제교육의 비중을 지금보다 확대시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통교육과정 사회 과목에서의 경제관련 내용의 비중을 확대하고 심화선택과목에서 경제영역 교과목 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시도는 다른 사회과 영역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어려움과 반발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정치학, 사회학, 법학, 역사학 등 많은 사회과학 영역에서 경제학적 방법론의 응용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충분한 노력이 있다면 슬기로운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셋째, 교사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회 및 경제과목 교사에 대한 재교육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교육부가 중심이 되고 재정경제부와 민간단체 등이 협조, 후원하는 체계적인 교사 재교육 및 연수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경제현장 방문, 연수교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마련을 통해 교사 스스로 재교육 수요를 북돋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심화선택과정 ‘경제’ 과목의 경우 전공과목의 추가이수나 재교육을 통해 일정 자격이 확보된 교사들이 전담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학생들로 하여금 경제학습에 대한 흥미와 교육효과를 높일 수 있는 교육내용을 개발하여 보급할 필요가 있다.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동영상, 강의자료, 사례모음집, 실험학습 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개발, 보급하고 경제교육 포탈 웹사이트를 마련하여 자율학습, 자료보급, 의견교환 등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이러한 노력들은 KDI나 일부 경제단체들에 의해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보다 많은 교사들과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각급 학교의 재량활동 및 특별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재미있고 유익한 경제교육 프로그램들을 실시 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든 활동을 지원하고, 추진할 민․관 협력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미 여러 기관들이 개별적인 노력을 통해 성과를 거두고는 있으나 이런 식으로는 체계적인 접근과 지원이 어렵고, 교육 전문성의 확보가 쉽지 않다. 앞에서 열거한 과제들을 장기적,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각계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학계와 교사가 중심이 되고 기관들과 후원자들이 참여하는 추진체계가 필요하다. 경제교육자협회와 미국경제학회 의 협력을 통해 비영리민간기구로 창설되어 활발한 활동을 해 온 미국의 국가경제교육위원회(NCEE)는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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