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시샘하듯 꽃샘추위가 차가운 눈보라를 몰고 왔다. 껍질 모자를 삐뚜름하게 쓰고 뾰족뾰족 올라오던 해바라기 싹이 까맣게 얼어 죽었다.
“우리 옌변 집 마당에는 해바라기가 참 많았는데.”
엄마가 죽은 해바라기 싹을 매만지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엄마가 해바라기 씨를 뿌리던 날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바보처럼 한참이 지난 뒤 식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장독대에 해바라기 싹 하나가 살아남았다.
한 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았다. 햇살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따갑게 내리쬐었다. 장독대의 해바라기는 할머니처럼 허리가 꼬부라졌다.
엄마는 틈만 나면 물뿌리개를 들고 해바라기에게 물을 주었다. 물을 줄 때마다 엄마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옌변 마당가의 해바라기가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전화 소리에 화단에 물을 주던 엄마가 깜짝 놀랐다.
“아흠, 엄마 전화! 중국인가봐요.”
동만이가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왔다.
엄마가 허겁지겁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이 덜 깬 동만이가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방안에서는 중국말이 나직나직 들렸다.
엄마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머리를 푹 숙이고 방에서 나왔다. 엄마의 얼굴이 광에서 겨울을 지낸 찌그러진 감자 같았다. 엄마는 한동안 먼 산을 바라봤다. 나는 그런 엄마가 산처럼 멀리 느껴졌다.
“엄마, 외갓집에 무슨 일이 있대요?”
“저, 저어…….”
엄마가 대답을 하려는데 할머니와 아버지가 대문에 들어섰다. 돼지 똥이 덕지덕지 붙은 장화에서 구린내가 풀풀 날렸다.
“어머니, 저 옌변에 좀 다녀와야겠어메.”
엄마는 머뭇머뭇 하며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뭐라쿠노? 옌변?”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울 친정어머니가 마이 편찮으시대요.”
“그라모 시집온 사람한테 연락하면 우짜노? 그 짜게서 해결해야지!”
할머니가 버럭 화를 냈다. 집안 분위기가 불 안 땐 방처럼 썰렁해졌다. 한동안 집안에서는 동만이 숨소리만 새근새근 들렸다. 아버지가 엎드려 자는 동만이를 반듯하게 뒤집어 놓았다. 마룻바닥에 흘렸던 침이 찌익 늘어났다.
“다녀 와!”
아버지는 장화를 벗어 마당으로 던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할머니가 토라져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
“중국은 맨손으로 가나? 돼지 열 마리는 더 팔아야 될끼다.”
방에서 할머니가 구시렁거렸다.
“엄마, 가지마. 나도 갈래.”
잠에서 깬 동만이가 침을 닦으며 엄마의 치마폭에 매달렸다.
“동만아, 누나 말 잘 듣고 있어. 엄마 금방 올게. 해바라기가 이만큼 크면 올게.”
엄마는 동만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닦았다. 나도 엄마 옆으로 바싹 당겨 앉으며 팔을 끌어안았다.
엄마가 중국에 간 뒤 동만이는 반찬투정, 잠투정에 떼가 늘었다. 할머니도 걸핏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냈다.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며 아버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 가도 별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시무룩해 있자 아이들이 더 놀렸다.
“야, 깡통, 너희 돼지 똥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어.”
민식이가 돼지처럼 입과 코를 쑥 내밀고 콧바람을 핑핑 불었다. 우리 집 돼지우리에서 똥냄새가 교실까지 날아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돼지 같은 놈! 네 똥 냄새다. 난 깡통이 아니고 강동희야.”
나는 참다참다 소리를 버럭 질렀다.
“받아쓰기도 10점밖에 못 받는 게 무슨 우리나라 사람이야. 너희 나라로 가. 이 염병아.”
염병.
엄마가 옌변에서 시집을 왔다고 민식이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었다. 민식이 할아버지는 우리를 염병 딸, 염병 아들이라고 불렀다.
“야, 뚱땡아. 옌변 사람도 우리나라 사람이야. 같은 동포란 말야.”
나는 소리치며 책상에 엎드렸다. 눈물과 콧물이 책상 위에 번들거렸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제자리를 잡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나는 공부 시간 내내 큰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을 기다려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뒤를 돌아 기어이 울음을 꺼억꺼억 터뜨렸다.
“동희야, 울지마! 조금만 지나면 너희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잘 하실 거야.”
단짝 지혜가 뒤에서 꼭 껴안아 주었다. 지혜는 엄마가 중국에 간 줄 몰랐다.
엄마가 없는 하루하루는 정말 지루하고 길었다. 낮이 점점 길어지고 햇살도 더욱 뜨거워졌다. 논바닥이 거북이 등같이 버쩍 금이 갔다. 해바라기도 기운을 잃고 새들새들해졌다.
틈만 나면 나는 엄마처럼 해바라기에 물을 주었다. 학교가 끝나면 돼지우리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에게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어느새 약속처럼 되었다.
돼지우리에서 돌아와 집 가까이 왔을 무렵이었다. 동만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나, 누나,……엉엉 어엉엉!”
동만이가 겁에 질려 기둥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마당에는 양동이, 대야, 호미, 괭이, 빗자루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장독대를 바라보았다. 해바라기와 봉숭아의 줄기가 뚝뚝 부러져 있고, 잎은 질근질근 씹혀 있었다.
헛간에 가둬 놓은 먹똘이 짓이었다. 그저께 아버지가 돼지우리에서 아픈 먹똘이를 헛간으로 옮겼다. 먹똘이는 힘없이 쭉 늘어져 눈만 멀뚱거렸다. 아버지는 먹똘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주사를 놓았다.
“엉엉, 난 몰라. 어떡해? 어떡해?”
나는 부러진 해바라기를 주워들고 발을 동동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동만이도 다가와 함께 울었다.
“야, 이놈의 자식들 네 에미라도 죽었나?”
대문을 들어서던 할머니가 쩌렁쩌렁 고함쳤다.
“엉엉, 해바라기가 죽었어요. 이만큼 크면 엄마가 온다고 했는데.”
“누나, 누나, 엉엉!”
동만이와 서로 얼싸 안았다. 그러나 자꾸만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뚝 그치지 못하노? 에미가 오고 싶어도 니들 뵈기 싫어 안 오겠다. 패앵.”
할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할머니가 코를 풀어 바지에 쓰윽 닦으며 돌아섰다.
“엉엉! 누나, 엄마 언제 와?”
동만이가 칭얼거렸다.
“꼬-올 꼬-올 꼬-올 꼴꼴.”
먹똘이는 주둥이에 지푸라기를 닥지닥지 묻히고 헛간을 뒤지고 있었다.
“너 이놈! 가만두나보자.”
나는 눈에 보이는 작대기를 집어 들고 헛간 쪽으로 씩씩 대며 갔다.
“꼬-올 꼬-올 꼬-올 꼴꼴.”
아무것도 모르는 먹똘이가 되똥되똥 다가오며 말갛게 눈을 맞추었다. 먹똘이의 눈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동만이가 밤마다 베개를 안고 엄마를 찾아 할머니방과 아버지 방을 왔다갔다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작대기를 슬그머니 놓아버렸다.
“쯧쯧, 요것또 에미 찾는 갑따.”
할머니가 조심조심 먹똘이를 헛간으로 몰았다. 할머니의 어깨가 축 쳐지고 힘이 없어 보였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밤이 되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갈수록 개구리 울음 소리도 커지고 빗방울도 굵어졌다. 마루에 켜 놓은 전깃불이 빗속을 뚫고 장독대를 비췄다. 그러나 해바라기가 자라고 있던 자리는 깊은 동굴처럼 캄캄했다.
“엄마!”
나는 가만히 엄마를 불러 보았다.
‘해바라기가 이만큼 크면 올게.’
어디선가 엄마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우르릉 꽝! 우르르 꽝! 우르르 꽝꽝.”
번쩍거리던 번개가 기어이 천둥소리를 몰고 와 집안을 흔들었다.
갑자기 캄캄하던 눈앞이 환해졌다. 민식이네 담장이 떠올랐다. 담장을 따라 바깥쪽에 해바라기가 줄지어 서 있었다. 해바라기는 민식이 할아버지가 거름을 주고 정성스럽게 길러 탐스러웠다.
나는 후드득거리는 굵은 빗방울을 뚫고 헛간으로 뛰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호미를 찾아 들었다.
“쿵쿵쿵.”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민식이네 집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머리칼을 타고 입안으로 들어온 빗물이 찝찔했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 보이는 민식이의 방은 캄캄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해바라기 앞에 살그머니 앉았다. 그리고 뿌리 흙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해바라기를 캤다. 비에 젖은 흙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쿨럭 쿨럭 쿨럭.”
민식이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민식이네 마루에 불이 번쩍 들어 왔다.
“어이, 그 놈 시원하게 온다.”
민식이 할아버지가 마루에 나와서 비 오는 마당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고양이처럼 웅크렸다. 뿌리를 두 손으로 보듬고 가슴에 해바라기를 꼭 껴안았다. 오리걸음으로 담장을 돌았습니다. 종아리가 뻐근해지고 숨이 가빴다.
‘도둑이야!’
당장이라도 민식이 할아버지가 소리치며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쿵쿵쿵 북소리가 가슴을 쳤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해바라기가 있어야 우리 엄마가 돌아오실 거예요.”
나는 말을 하는데 자꾸만 목이 메었다. 해바라기 잎이 까슬까슬 볼에 스쳤다. 볼이 따가웠다. 빗물에 젖은 해바라기가 더 싱싱하게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