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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교육부-대학 '3不정책' 놓고 정면 충돌 양상

대학들 "3不 정책 폐지" vs 교육부 "위반시 엄단"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를 금지하는 이른바 '3불(不) 정책' 폐지 문제를 놓고 교육부와 대학들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가 21일 정부의 3불 정책을 '암초 같은 존재'로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한 지 하루 만에 사립대 총장들이 22일 3불정책 폐지를 직접 요구하자 교육부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강력 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여권의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까지 나서 "대학이 어떤 학생을 뽑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에 대해 정부는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며 대학측에 합세하는 형국이어서 대학과 교육부 사이에서 촉발된 갈등의 파장이 정치권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다.

◇ 정부 '3불정책' 위반 대학 엄단하겠다 = 교육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일선 대학에서 3불정책 폐지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김광조 차관보가 22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3불정책은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규정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50여년의 경험에서 나온 최소한의 사회적 규약인 만큼 앞으로도 확고하게 유지하겠다"고 못박았다.

특히 3불정책을 위반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법령이 허용하는 모든 제재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단호한 입장도 피력했다.

서울대에 이어 사립대학 총장들까지 가세해 3불정책 폐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계속 소극적 태도를 보일 경우 교육부의 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이처럼 강경하게 나온 데는 3불정책을 포기하면 그동안 준비해온 공교육 정상화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대학자율화 보장 차원에서 웬만한 규제는 풀어줄 용의가 있지만 3불정책만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는 것.

◇ 3불정책에 대한 교육부 입장= 3불 정책이란 대학의 학생 선발과 관련해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를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고교등급제란 전국의 고교를 서열화해 대학 입학전형에 반영하는 제도다.

즉 강남과 비강남, 수도권과 지방 등의 각 지역 고교 간 학력차를 인정하고 해당 학교의 수능성적, 진학실적 등을 따져 입시에 반영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고교등급제가 교육의 기회 균등과 공정성에 위배될 뿐 아니라 고교선택권이 없는 현행 평준화 제도에서는 고교 간 학력차를 인정해 전형에 반영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개인의 능력에 따른 선발이라는 기본원칙을 훼손하고 중ㆍ고교 서열화, 과열 진학경쟁을 촉발할 우려도 있다는 게 교육부의 판단이다.

기여입학제는 특정학교에 물질적, 정신적으로 기여한 당사자나 그 자손에게 따로 시험을 보지 않고도 최저 시험점수로 입학을 허가해 주는 제도다.

대학들은 등록금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해마다 등록금을 인상해야 하는 재정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기여입학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여입학제는 사회 통념상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많은 게 사실이다. 교육부 역시 기여입학제는 '금전적 대가와 대학입학 기회를 교환하자'는 것으로 허용할 경우 계층 간 교육기회 격차 논란으로 사회통합을 저해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ㆍ영ㆍ수 등 특정교과의 지식을 측정하기 위해 치러지는 필답고사인 본고사는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부담과 사교육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금지 방침을 굳게 유지하고 있다.

고교등급제와 기여입학제는 대입제도 시행 이후 한 번도 허용된 적이 없었던 데 반해 본고사의 경우 대학별로 실시되다가 1981년도에 폐지되고 1986학년도에 논술고사로 부활하는 등 줄곧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며 논란이 돼 왔다.

기여입학제와 본고사는 1998학년도 대입전형기본계획부터, 고교등급제는 2003학년도 대입전형기본계획부터 금지가 명시됐다. 이에 따라 위반사례가 적발되면 교육부는 해당 대학에 대해 재정지원 감액 등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기여입학제는 지금까지 위반사례가 없었으며 고교등급제는 2005학년도 수시 1학기 실태조사에서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가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본고사의 경우 현재 각 대학이 실시하고 있는 논술고사가 본고사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부가 2005년 8월 '논술심의 가이드라인'을 마련, 2006학년도 수시 2학기부터 가이드라인 위반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 대학들 "3불 정책은 암초 같은 존재" = 대학들은 3불 정책을 학생 선발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규제로 꼽으며 이를 폐지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이 우리사회 통념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지난 50년 간 관행으로 굳어진 낡은 제도를 언제까지 고수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최근 한미 FTA 체결에 따른 교육시장 개방이 예고되고 국내 고등교육기관의 질 제고 문제가 교육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3불 정책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는 21일 장기발전계획안을 발표하면서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를 금지한 3불 정책이 대학 성장과 경쟁력 확보의 암초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며 정면 비판했다.

3불 정책이 대학의 자유로운 학생 선발을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학 교육의 수월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전위는 3불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계획안에 담은 뒤 교육부에 전달될 수 있도록 대학본부에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전국 158개 사립대 총장들로 구성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22일 회장단 회의를 열고 3불 정책이 대학 경쟁력을 가로막는 대표적 규제라며 이를 폐지해 줄 것을 정부에 적극 건의키로 했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학생 선발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이제는 3불 정책을 재고할 때가 됐다. 교육시장도 개방되고 경쟁이 더욱 심해지는데 우리만 이런 제도를 고집한다면 국제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역시 22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주최로 열린 강연에서 "'3불'까지는 아니더라도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는 허가해야 한다"며 "대학이 어떤 학생을 뽑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에 대해 정부는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과거에도 대학들이 3불정책의 부당성을 주장하다가 교육부의 '경고음'이 나오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해에는 정치권까지 가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대학과 교육부간 갈등 양상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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