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이란 미명하에 공무원과 교원의 봉급을 삭감하고 특히 교원에 대하여는 정년을 3년이나 단축하는 등 고통을 강요하여 왔다. 이어 정부일각에서 흘러나온 공무원 연금법 개악설은 교원의 대량 퇴직사태를 부채질하였고, 교육공백과 교단황폐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에 김대중 대통령은 심각한 교단의 동요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난해 11월 23일 한국교총이 주관하는 '학교바로세우기 전국교육자대회'에 참석하여 연금부담금의 일부 조정 외에는 결코 기득권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1만 3천여 전국 교육자대표 앞에서 천명한 바 있다. 우리는 대통령의 약속을 굳게 믿고 교단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진력하여 왔다.
그러나 1년도 채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 연금법 개악 운운하는 정부의 태도는 40만 교육자를 포함한 91만 모든 공무원의 분노와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연금기금 고갈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첫째, 행정자치부도 스스로 인정하였듯이 국가의 전체 예산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실적위주의 무책임한 구조조정에 따른 동시 대량 퇴직사태에 주원인이 있다. 1999년도의 공무원 퇴직인원은 9만5천명으로 97년 문민정부 시절의 3만4천명에 비해 약 3배에 달했으며 2000년도에는 약 5만6천명의 퇴직이 예상되고 있다.
연금기금 규모도 97년 6조2천억이었던 것이 99년에는 2조6천억, 2000년에는 1조2천억으로 격감될 예정이다. 이는 정부가 연금기금의 운영에 얼마나 무책임하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으로 인한 일시적 연금지급의 급증에 따른 연금기금 고갈 분은 반드시 정부가 보전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연금기금의 부실한 운용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연금기금을 민간금융시장의 유가증권에 투자하였을 경우 발생할 기회비용이 무려 7,145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연금기금이 수급권자의 이익증진보다는 저리의 이율로 공적자금 등에 투입시켰던 비효율적 운용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부실 운용의 책임을 전체공무원에게 전가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셋째로, 정부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에 미온적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개인 부담률은 미국 7%, 일본 9.195%, 프랑스 7.85% 와 대등한 수준인 7.5%임에 비해, 우리 정부의 부담률은 선진국 수준에 매우 뒤떨어진 7.5%에 불과하다. 미국이 34.2%, 일본이 25.6%, 프랑스 28.5%로 부족분 전액을 정부가 부담하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도 개인부담 없이 전액 정부가 부담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정부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기피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40만 교육자를 포함한 91만 공무원은 낮은 처우와 열악한 근무여건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명감으로 묵묵히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해 오면서, 그나마 어느 정도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공무원연금제도를 위안으로 삼아왔다. 그러한데도 정부가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는 전체 공무원과 교원사회에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으며, 특히 타 직종 공무원보다 연금기여도가 큰 교원들의 분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얼마 전 행정자치부가 주관한 공청회 등에서도 수혜당사자인 공무원 대표가 반드시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또한 연금 기금을 부실하게 운용했던 책임자들을 문책하는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예로, 정부가 개입하지 않은 사립학교 연금기금의 기금잔고가 약 4조원으로 비교적 건실한 운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행자부와 연금관리공단의 경영 실패가 기금 고갈의 주된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폐쇄하던가 아니면 금융권 등에 기금운용을 위탁관리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연금법 개악 기도를 철회하고 기득권 보장의 약속을 지켜, 현직 공무원에게는 절대로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선에서 안정적이고도 항구적인 기금안정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학무 대구교련회장·달서공고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