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는 요즘 남북한 중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수록된 인물을 비교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경남대에서 논문 '남북한 중등학교 국사교과서 등장인물의 비교연구'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선규 교사(경남 진해고)가 그 주인공.
김교사는 남한의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와 북한 고등중학교의 "조선력사" 등 3종류의 남북한 국사교과서를 대상으로 등장 인물의 유형과 빈도, 공통 등장 인물과 한쪽 등장 인물의 정도, 그리고 공통 등장 인물에 대한 설명과 평가의 일치 여부 등을 비교·분석했다.
연구결과 가장 큰 특징은 남북한 교과서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133명으로 전체 735명의 1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한이 인물을 보는 시각차가 매우 큼을 반영하는 것으로 남한교과서에는 학자 문인 국왕 왕족 정치가 군인을 비롯 등장유형이 다양한 반면 북한은 정치가 군인과 피지배층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반봉건 반외세 활동을 한 인물들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한의 교과서에는 북한 교과서에 전혀 언급이 없는 문무왕, 진흥왕, 진덕여왕 등 고대 왕이나 왕족이 43명 등장하는 반면 북한 교과서에는 설죽화, 관수, 김보, 방보 등 남한에서는 생소한 농민 천민군 지도자 11명이 22회나 기술됐다. 황희 맹사성 김정희 윤선도 황진이 사명당 등은 남한 교과서에만 실렸으며 리명욱 김두량 정한순 등은 북한 교과서에만 등장하고 있다.
공통 등장인물의 경우 남한의 교과서에는 인물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인물 비중을 가늠하기 어려운 반면, 북한의 교과서에는 반봉건·반외세에 공을 세운 인물에 대해서는 그 활동이나 업적뿐 아니라 전투 당시의 병력, 날짜, 구체적 전투 상황까지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등은 특별히 '장군'이란 칭호를 붙여 높이 평가하는 반면 지배층 인물이거나 외세와 결탁한 인물, 침략과 관련된 외국인에 대해서는 '놈'자를 붙여 적대감과 호악(好惡)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은 인물 평가를 적극적으로 수록하지 않거나 가치중립적으로 서술하는 우리 교과서와는 비교되었다.
공통 등장인물 133명 가운데 28명만 유사한 평가를 내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치원의 경우 남한의 교과서에는 신라말 개혁을 주장한 6두품 지식인으로, 북한의 교과서에는 지배층을 비판하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동정한 시인으로 평가했다. 주몽의 고구려 건국도 남한은 B.C. 37년으로 서술한데 비해 북한은 B.C. 277년이라 하여 백제와 신라보다 오래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연개소문도 남한은 '정변' '독재' 등의 표현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나 북한은 당나라에 용감히 맞선 애국명장으로 높이 평가하는 점이 달랐다. 견훤은 남한이 '농민의 아들'로, 북한은 '봉건지주의 아들'로 서술하고 있다. 또 북한의 교과서는 최영의 요동 원정이 이성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며 조선 건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윤복의 풍속화에 대해서도 남한은 '양반들의 풍류 생활'로 해석하는 반면 북한은 '양반들의 썩어 빠진 몰골을 폭로'한 것으로 해석, 차이를 드러냈다.
김교사는 "남북한 국사 교과서의 이질성이 큰 만큼 그 극복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무엇이 얼마나 같으냐'와 같은 동질성의 측면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념적 차이만 부각시켜 비판적 시각으로 연구하면 이질성이 더욱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