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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수필 당선> 백령일기



7. 6. 수. 안개 오락가락
지난 주말에 휴가를 다녀왔다. 토요 휴업일을 끼고 이틀간 연가를 내서 4박5일의 휴가를 얻었다. 백령도에서 나오는 날도 안개가 끼어 제 시간에 출발하지 못하고 두 시간이나 대기하다가 배를 탈 수 있었다. 나올 때부터 불안했던 뱃길이 백령도로 들어갈 때는 사흘간이나 연안부두 대합실에서 대기하는 불상사를 겪어야 했다.

공식적으로 한 학기에 두 번씩 활용할 수 있는 연가가 허락되어야 겨우 사오십 일 만에 집에 와보는 것이다. 밑반찬도 만들어 와야 하고 가족들도 만나봐야 했다. 오랜만에 갇혀있는 것 같았던 섬을 떠나 배를 탄다는 것은 삶을 새롭게 충전시키는 아주 중요한 활력소가 된다.

같은 섬에 있는 중고교에서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육지에 나간다고 한다. 일 년에 7,8회쯤 될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일 년에 4회 정도. 그나마도 관리자에 따라 줄어들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문제는 학교분위기다. 얼마나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휴가를 얻는 결재과정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마음 편안함이 변수였다. 이번 휴가는 눈치 보며 나온 휴가였다.

“여보, 휴가 나온 당신 아들하고 똑 같은 게 있어. 어디 지그시 앉아 있지 못하고 집안 왔다 갔다 하는 거.”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나를 비교하는 아내의 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어디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넓지 않은 집안을 왔다 갔다 한다. 한시적인 휴가가 금방 가버릴 것 같은 초조감 때문에 집중을 못하고 그냥 마음만 바쁜 것이다.

휴가 이틀째가 되면 집안의 못마땅한 곳들이 눈에 띄고, 다정다감했던 눈길, 말투, 표정이 예전의 그것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내의 태도도 심드렁해진다. 사흘째가 되면 내 빈자리가 무엇인지 찾으려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살피는 처지가 된다.

“내 기타가 안 보이네.”
찾아보니 벽장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자주 치지는 않아도 늘 거실에 두었었는데, 왠지 씁쓸했다.
아내는 나흘도 안 돼 짧은 외출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내 눈길이 의외라는 듯 서먹한 표정을 짓는다. 올해 제대한 아들은 방학을 맞아 오랜만의 해방감에 이미 군기가 완전히 빠져 풀어진 모습이었다. 고3인 딸만 혼자 바빠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아빠, 1학기 중간고사가 다음 달 5일에 끝나. 그 때 맞춰 휴가 와.”
딸애는 중간고사와 내가 휴가 나오는 날이 겹치는 게 걱정이 된다고 전화를 했었다. 중간고사 끝나고 홀가분하게 대화하고 외식하고 함께 티비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십일 만에 휴가 가서 딸과 마음 놓고 지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놈의 대학입시가 원망스러웠다.

휴가 첫날부터 남부지방에서 장마가 북상하기 시작했다. 서해 해상에는 연일 짙은 안개가 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시청하며 부지런히 기상정보를 뒤졌다. 기상예보 131, 두 군데 해운회사 자동응답전화, 인터넷 일기예보 등을 뻔질나게 확인했다. 제 날짜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불안했던 것이다.

월요일보다는 화요일이 날씨가 좋다는 기상응답전화를 믿고 화요일에 떠나기로 한 것이 잘못이었다. 오히려 월요일에는 배가 뜨고 화요일부터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불었다.

어쨌거나 날씨에 상관없이 여객터미널로 가야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도 먹지 못하고 연안부두로 향했다. 비가 내렸다. 차문을 열자 비가 들이쳤다. 연안부두 여객선 대합실은 수백 명이 웅성거렸다. 백령, 소청, 대청, 연평, 자월, 덕적 등 서해의 섬으로 출항하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개중에는 떠나고 오는 사람을 마중 나온 사람들, 짐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함께 섞여 술렁거렸다. 개찰구 앞에는 운수회사 개찰원, 경찰, 헌병이 어슬렁거렸고, 옆에는 훈련이 끝나고 부대배치를 받아 들어가는 해병대 신참병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꼿꼿하게 줄을 맞춰 서있었다.

출항시간은 7시 10분인데 개찰구 안내판에는 ‘8시까지 안개 대기’라는 전광판 불빛이 벌겋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합실 의자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언제 뜰지 모르는 배를 기다리며 아예 자리를 펴고 드러누워 잠든 사람들, 그냥 바닥에 앉아 벌써부터 소주를 까는 사람들, 구운 김에 밥을 얹어 아침식사를 때우고 있는 나이든 관광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리를 깔고 눕거나 편하게 앉아서 쉬고 있는 사람들은 필경 이런 경험이 많은 섬사람들일 것이다. 새벽 일찍 나오느라고 아침을 먹지 못한 사람들이 구내식당에서 김밥이나 우동으로 대충 늦은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출항대기하게 되면 구내식당과 신문 파는 곳이 호황을 누린다.

8시가 되자 성능이 좋지 않은 스피커를 통해 역시 발음이 시원치 않은 여직원이 ‘10시까지 안개 대기’라는 멘트를 내보낸다. 아! 하는 짜증 섞인 탄식과 욕설이 축축한 대합실 안에 메아리처럼 퍼져 나간다. 대합실을 빠져 나가는 사람들,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로 대합실 분위기는 금방 늘어진다.

다시 12시, 14시까지 대기하다가 끝내는 ‘해상의 짙은 안개로 인하여 백령, 소청, 대청, 연평 여객선 운항이 통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방송이 나오자 원망어린 장탄식과 욕설이 뒤섞여 대합실은 순간적으로 술렁인다. 이내 대합실을 나서는 사람, 표를 환불받기 위해 우르르 매표대로 몰리는 사람들로 나뉘어 대합실은 금방 썰렁해진다.

오후 2시까지 대기하라는 12시 방송을 듣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다시 전화를 해야 했다. 전화를 받는 아내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있었다. 세 번씩이나 차를 끌고 와야 했으니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왠지 섭섭하다. 하루 더 있게 된 것을 기뻐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사실 가야 할 사람이 가야지,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안정이 되고 정상적인 자기생활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여행 가방을 싣고 새벽에 떠났다가 들어오기를 하루에 두 번씩이나 반복하다가 결국 집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아파트 경비는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집에 되돌아 온 것을 반가워하는 것은 그래도 딸뿐이었다. 그새 몇 번이나 전화를 해서 내가 섬에 가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는 엄청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빠 그렇게 섬에 가고 싶어. 섬에 못가서 안달을 하는 것 같아.”
섬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두고 딸이 한 말이었다.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꼭 가야하니까 가는 거야. 가고 오고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이잖아. 제법 달관한 사람처럼 말했지만 딸애의 마음만은 애련하게 전해져 왔다.

이튿날은 오후 3시까지 대기하다가 운항이 통제되었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울화통이 터졌다. 이럴 거라면 확실하게 아침에 통제를 시키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욕설 섞인 항의를 했고, 사무실에서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승객들과 운수회사 직원들 간의 말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안개는 2시간 간격으로 대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운항을 하려는 운수회사 측과 해 군, 해경, 기상대, 해운수산청 등 여러 기관의 관계자들이 협의해서 결정을 하는 것입니 다. 되게 복잡합니다. 원래 안개라는 것이 게릴라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울화가 치밀어 해운수산청 운항 상황실인가 통제실인가로 전화를 하자 관계자가 설명해준 말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6시. 안개는 물론 하늘이 시꺼멓게 흐려있었다. 한마디로 안개와 구름으로 어둠침침한 아침이었다. 오늘은 진짜 틀렸구나. 오늘은 숫제 대기 없이 무조건 통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게 마음 편했다.

그러나 자동응답전화는 또 8시까지 대기였다. 짜증이 왈칵 밀려왔다. 또 시작이군. 어제처럼 10시, 12시, 14시, 15시까지 대기하다가 통제하려고 하는가. 미치겠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틀 대기하는 동안 맛이 간 것 같은 반찬을 뺀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십여 분 전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연안부두에 도착할 무렵 비가 그치고 하늘이 훤해졌다. 대합실에 들어서자 그동안 대기하면서 제법 낯이 익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전광판을 보자 9시 30분 까지 대기. 어라, 오늘은 희망이 보이는군. 10시 대기가 아니고 9시 30분 대기라는 게 변수였다.

개찰구 앞에는 짐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이틀 동안 헤쳐모여를 하던 군인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오늘은 뜨겠지 하는 분위기가 대합실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들뜨고 대체로 밝아 보였다.

10시에 출항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개찰구 쪽으로 몰려들었다. 축 처져 있던 사람들은 생기를 찾고 바쁘게 움직였다. 다시 통제가 되면 집으로 데려다 주려고 기다리던 아내가 손을 잡아 주었다. 생각보다 작고 따스했다. 개찰구를 지나 배에 오르자 맑게 갠 하늘처럼 개운했다. 이제 섬으로 들어가는 구나.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고 오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7. 15. 금. 안개 풀풀 날리다
학교 운동장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운동장 울타리 쪽에 세워져 있는 그네에 누군가 앉아 있다. 그 모습은 안개에 묻혀 더 희미하고 작아 보인다. 나리다. 학교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다섯 살짜리 여자애다. 할머니, 아빠,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오빠와 살고 있는 김나리.

얼굴에 얼룩진 흙먼지처럼 항상 외로움이 묻어있는 아이였다. 이혼한 엄마는 뭍으로 나가고 없다. 그게 정확히 몇 살 때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엄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여리고 작은 새 같은 아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노는 날이 많다. 오빠는 교실에서 공부하고 아빠는 일 나가고 집에는 할머니가 있지만 상대가 안 되니 혼자 노는 수밖에. 다행히 학교와 담을 사이에 둔 곳에 살고 있어 학교 운동장이 놀이터인 셈이었다. 그래도 작은 아이에게 텅 빈 학교 운동장은 너무 넓어 쓸쓸해 보인다.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은 크게 학교주변 주택가와 시장근처의 신흥주택가로 나눌 수 있다. 학교주변 주택가는 주로 옛날에 지어진 집들로 노인들이 많이 산다. 예전에는 이곳이 중심지였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초등학교가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도 짐작이 간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장부근이 이곳의 중심지다.

나리는 중심지에서 좀 떨어진 옛 주택구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시장부근에 사는 또래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노는 경우가 많다. 학교운동장 구석에서 흙장난을 하거나 그네와 철봉이 있는 곳에서 논다. 홀로 철봉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고즈넉하다. 내년이면 학교에 들어오겠지. 그 때가 되면 아마 저 철봉위에 다리를 걸고 오를지도 모른다.

이곳 백령도에는 나리처럼 엄마나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이혼하거나, 별거형태로 부부가 헤어진 경우 둘 중 누군가는 섬을 떠나 육지에 있다. 개중에는 부모가 다 섬을 떠나 있어 조부모 슬하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꽤 있다.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 부모 곁을 떠나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섬을 떠나 있는 누군가를 그리며 살아간다.

이곳에서는 떠나고 만나는 일이 바다와 육지의 거리만큼 아득하다. 보고 싶은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육지는 그리운 사람이 있어 가보고 싶은 대상으로 자리할 것이다.

나도 역시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지낸다.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지내는 어려움을 알기에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아이들의 외로움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나리도 누군가에게 매달리지 못하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철봉에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철봉에 매달려 기어오르려는 나리의 모습에서 섬 아이의 강인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 나리야 힘차게 매달리렴. 언젠가 철봉에서 회전을 하고, 철봉에 여유 있게 걸터앉을 때가 되면 많은 친구가 생기겠지.

안개가 흩날리며 교문 밖으로 밀려가고 다시 울타리 주변으로 몰려오기도 한다. 안개 속에 홀로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리의 모습이 아득해진다.




7. 19. 화, 안개 조금, 오후에 무더움
오늘은 이곳 아이들이 기다리던 수영체험학습 날이었다. 수영체험학습을 하는 사곶 해변은 물이 차다. 기세 좋게 뛰어들었다가 찬 기운에 멈칫한다. 바다에 뛰어든 지 십 여분도 안 돼 입술이 파래지고 몸이 떨린다.

그래도 아이들은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부딪치며 신나게 논다. 밀려오는 파도는 교향곡처럼 변화무쌍하다. 부드럽게 밀려오기도 하고 성난 듯이 달려든다. 아이들은 성난 파도일수록 더욱 신이 나서 부딪치
며, 때려 치듯이 작은 몸을 내던지며 파도에 열광한다.

환성과 기쁨과 활력이 넘친다. 수영복을 입지 않고 입은 옷 그대로 물속에 뛰어든다. 모래입자가 곱고 미세해서 한번 입고 수영한 옷은 아무리 빨아도 그 모래가 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 아이들은 반바지나 티셔츠를 입은 채 수영을 한다.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옷을 입고 벗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 이곳에서는 수영복이 필요 없다.

해안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해가 보여도 안개는 사라지지 않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뭉클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안개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이 아름답다. 옷이 물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은 어린 몸들이 새끼 사슴들처럼 예쁘다.

섬 아이들 특유의 꾸밈이 없고 약간 투박하지만 강건하고 밝은 모습은 생명력이 넘친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새롭다. 사교육에 매여 하루 종일 절절매는 도시 아이들과는 달리 깨끗한 자연풍광과 풍토 속에서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도시생활에 절어 오염되었던 몸과 마음이 말끔히 씻겨 지는 듯 상쾌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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