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영국의 보수당 정부 말기, ‘4세아 교육 전국확대 정책’을 실시하면서 액면가 1100 파운드(한화 약 200만원)의 바우처를 해당 학부모에게 배당했다. 학부모가 공·사립 관계없이 유치원에 찾아가서 아이를 맡기고 바우처를 주면 이 유치원은 바우처를 모아 지역 교육청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어오는 것이다.
이 바우처 제도는 그 해 7월 노동당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세금 환불법으로 전환돼 6개월로 단명하고 말았다.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취학 전 아동교육비 바우처 제도’와 관련해 당시 영국의 바우처 제도는 어떤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폐지되었는지 전해보기로 한다.
바우처 제도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론적 장점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고, 공급자간의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급자간의 경쟁은 프로그램이 소비자 중심으로 개발되게 하고 비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반면, 단점으로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수요예측이 어려워 시설 공급계획이 어려우며 시장에서는 서비스 질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 서비스의 질을 통제하고자 할 경우, 부가적인 경비가 든다. 97년 당시 영국정부가 바우처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발표한 시한에 맞춰서 공립 유치원을 한꺼번에 만족할 만큼 공급할 수 없었고, 따라서 기존에 있는 사설 놀이방이나 유치원을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영국 교육부는 1980년대부터 4세아 무상교육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행여부는 전국 150개 지역교육청에 맡겨져 있었고 시설의 제공이나 운영형태는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책임지고 4세아 의무교육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겠다고 공표를 한 것이 1995년 7월이었다.
당시 민간 시설은 형태, 시간, 연령, 조건, 비용, 가격 등이 들쭉날쭉했으며 정부가 서비스를 구매하고자 하더라도 다양한 민간 서비스를 단일화하거나 규격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적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우처’였다. 학부모는 연간 200만원의 가치에 상당하는 바우처를 지방교육청으로부터 받아서 공·사립 유치원에 가져갈 수 있으며 200만원 이상을 받는 유치원의 경우는 그 차액을 부모들이 자비로 지불하게 했다. 공립유치원의 경우는 바우처 외에 별도로 학부모에게 징수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 교사들은 ▲민간 시설의 유치원교사 및 시설공간의 질적 보장을 할 수 없음 ▲개별 지역에서 필요한 만큼의 유치원이 제공된다는 보장이 없음 ▲보육사 연수가 인색해지며 시설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음 ▲행정비용으로 재원이 낭비됨 ▲아이들이 유동적이어서 학교 단위에서 계획 수립이 어려워짐 ▲유치원과 학교의 교육과정 연계성이 끊어짐 ▲유치원교육 의무가 주어진 지방교육청에 더 이상 공립유치원을 설립하라고 요구할 수 없음 등을 이유로 바우처 제도도입을 반대했다.
1996년 4월, 4개 지방교육청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이 실시됐다. 1996년 여름에는 91% 학부모가, 가을학기에서는 93%의 학부모가 바우처를 수령했다. 정부는 제도구축을 위한 행정비용으로 4개 교육청에 25만 파운드(약 5억원)를 지불했다. 이들 4개 교육청 관할지역을 통해서 분배된 바우처 가격은 총 5백만 파운드(약 100억원)였다. 전체예산의 약 5%가 행정비용으로 든 셈이다. 정부는 당초 전국으로 확대할 경우 바우처 가격은 7억 파운드(1조4000억원), 행정비용은 1000만 파운드(200억원), 약 1.4%로 예측했었다.
바우처는 한 장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일 년치 52장을 한 다발로 묶어서 주었다. 일주일에 한 장인 셈이다. 따라서 학부모는 유치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주일 단위로 다른 유치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일주일 단위의 유치원 전학 통보는 사설 유치원에서는 가능하지만 학교와 같은 경우는 예산 집행 단위가 학기별(약 12주)로 끊어지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아이들 중에 임시 보호자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는데 이런 경우 바우처 전달이나 흐름이 신속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