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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인간파괴 고발한 예술 동지

⑧엘뤼아르와 피카소


“내 학생 때의 공책 위에/ 내 작은 책상과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이라는 외침으로 시작되는 ‘자유’라는 제목의 시를 써서 프랑스 최고의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폴 알뤼아르(Paul Eluard, 1894~1952)와 20세기 회화의 위대한 거장 파블로 피가소(Pablo Picasso, 1881~1973)와의 관계는 남다른 예술적 동지애로 묶여진 드문 예에 속한다. 그들은 특히 ‘게르니카의 비극’이라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인간말살의 전쟁과 파괴에 대항하여 각각 시로, 그리고 그림으로 공동의 예술적 항거를 강렬하게 보여준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스페인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1937년 4월 26일 일어난 게르니카 마을의 처참한 파괴는 이 두 예술가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차별 쏟아 붓는 엄청난 양의 폭탄투하로 거의 모든 주민들이 몰살 당하는 역사상 가장 끔찍스런 인간말살의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국의 불행한 대사건에 눈 감을 수 없었던 피카소는 분연히 붓을 들어 그 해 6월 3일 ‘게르니카’(1937, 사진)라는 제목의 대형 그림을 완성한다. 6월 4일 그 그림은 엘뤼아르의 시(詩) ‘게르니카의 승리’와 함께 만국박람회의 스페인 관에 전시된다.

피카소와 아주 친근한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시인 화가인 아르스는 ‘파블로 피카소’에서 이 그림이 엘뤼아르와의 뜨거운 연대감정 속에서 태어났음을 밝히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 그림이 제작되는 동안에도 자주 대화를 나누었던 엘뤼아르의 사상적 전개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게르니카’는 개인적인 원한과 증오의 차원을 넘어서, 스페인 내란, 프랑코의 폭력과의 투쟁을 출발점으로 하지만, 마침내 보다 더 넓은 차원의 높은 전인류적 시야로, 폭력과 전쟁과 죽음과 암흑에 대항하여, 평화와 행복한 여인과 아이들을 수호할 것을 인류에게 직접 호소하는 그림이다”

엘뤼아르가 ‘게르니카의 승리’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도 ‘전 인류적인 시야’로 폭력과 전쟁과 죽음과 암흑에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참여적 리얼리즘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 그는 ‘게르니카의 승리’에서 “포화에 견디는 얼굴”, “뒤집혀진 죽은 심장”, “저마다 자신의 피를 보여주는” 여인들과 아이들 등의 참혹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는 피카소가 ‘게르니카’에서 보여주고자 한 참담한 인간 파과의 영상에 대한 시적 변용으로서 동일한 전쟁에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뜨거운 연대감정과 정신적 동지의식은 그들 사이의 친분관계가 기본적으로 참다운 우정을 저버리지 않는 지속적 진실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무엇보다 순수한 시의 진실을 끝끝내 잃어버리지 않은 채 서로서로의 가치를 드높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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