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들이 걸어 다니는 이 조용한 지붕은/소나무들 사이, 무덤들 사이 꿈틀거린다/올바른 정오가 거기서 불로써/바다를 구성한다,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를!/오, 한줄기 사념 뒤에 오는 보상/신들의 고요에 쏠린 오랜 시선이여!”
이렇게 시작되는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의 시 ‘해변의 묘지’는 20세기 상징주의 시에 있어 가장 완벽한 언어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명편으로 지목된다. ‘흰 돛단배’를 ‘비둘기’에, 출렁이는 ‘바다 물결’을 ‘지붕’에 비유하는 독특한 은유법을 구사함으로써 또 하나의 시적 기적을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인의 고향인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세트에 있는 바닷가 공동묘지를 무대로 해서 펼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명상의 세계는 그대로 정오의 태양이 숨 막힐 듯 내리쬐는 한 폭의 바다 풍경을 선명히 떠오르게 한다.
발레리는 프랑스 최고의 ‘국민 시인’ 또는 ‘지성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다. 그리하여 그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국장(國葬)을 치루는 영광스런 예우를 받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수많은 크로키며 데생들을 남겼다. 현재 세트의 ‘발레리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화 및 데생들은 단순한 아마추어 그 이상의 화가로서 일가를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하겠다.
발레리가 37세나 연상인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와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친구인 에르네 루아르의 아버지인 앙리 루아르와 드가가 루이 르그랑 중학교의 동창이었기에, 그 친구 집에 놀러가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발레리가 드가의 ‘자화상’(1855,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특이한 사람, 섬세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지성을 가진, 의지적인 예술가’의 모습에 유달리 끌렸기 때문이다.
드가가 스무 살 무렵에 그렸다는 ‘자화상’은,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마침내 거기에 빨려 들어가 화면에 깊숙이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강한 흡입력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눈과 입의 표정이다. 그 눈의 우수에 찬 냉철함은 ‘단순히 투명하다고 말하거나 빛난다’라고만 말할 수 없는 “뭐랄까 자아에 대한 의혹과 만족하지 못해 하는 절망감”(발레리)에 차 있는 매우 날카로운 것이다.
발레리가 쓴 일종의 철학적 에세이 소설 ‘테스트 씨와의 저녁’(1896)에 나오는 주인공 테스트는 드가를 모델로 한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발레리 스스로 “내가 상상하고 있던 드가에 다소간 영향을 받았었다”라고 고백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밀한 고백을 담고 있는 ‘드가·춤·데생’(1936)이란 에세이를 발레리가 쓴 것은 그 자체로서 뛰어난 예술론을 남긴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종종 ‘천사’라 불러주었던 드가에 대한 애정 어린 찬사를 보낸 것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