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2년째를 맞는 한국시단의 '거목' 신경림(73) 시인은 5일 "영어 몰입교육은 비문학적, 반문학적 발상"이라며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에 우려를 표시했다.
시인은 이날 강원 춘천시 김유정 문학촌에서 열린 `문학의 의의'라는 주제의 특별 강연회에서 "문학하는 사람들의 첫번째 요건은 자기 나라 말에 대한 지극하고 깊은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품 안에서 배운 말을 버리고 어떻게 자기 감정과 자기 삶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진보주의자들 사이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뛰어난 언어를 쓰자는 주장이 오랜 전부터 제기돼 왔다"며 "우리나라 말 대신 영어를 쓰자는 것도 중국 것으로 다 바꿔나가자고 말했던 박제가, 일본말을 공용어로 쓰자고 했던 이완용의 주장과 맥락이 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이런 주장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를 버리고 자기 감정과 자기 삶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영어로 시를 쓰겠다는 사람은 결코 좋은 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요즘 작가들은 미국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작품을 써야 해외에서 초청받고 각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렇지만 문학의 힘이라는 건 우리나라 문학다울 때 힘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정서를 갖고 해외로 나갈 때 한국 문학이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나친 보편화.세계화 추세를 경계했다.
이밖에 시인은 "범죄가 끊이지 않았던 콜롬비아에서 세계 시인대회가 열린 이후 살인과 폭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며 "문학이 현실적인 삶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 문학은 스스로 비폭력적이고 자유로운 측면을 가지고 있어 삶을 빛내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사회적이다"고 말했다. 이날 특별초청 강연회는 김유정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유정탄생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