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중국 교육부는 우리나라의 교사윤리규정에 해당하는 ‘초․중․고교사직업도덕규범(初中學敎師職業道德規範)’을 수정안을 의견 수렴하고자 언론에 발표하였다. 교사직업도덕규범은 1997년 제정된 이래 11년 만에 수정되는 것인데, 수정안의 내용 가운데 새로 삽입된 한 줄도 안 되는 문구로 인해 중국 교육계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수정안에는 모두 6개의 교사들이 지켜야할 규범이 명시되어 있는데, 첫째, 나라를 사랑하고 법을 준수한다. 둘째, 직업을 공경하고 이에 헌신한다. 셋째, 학생들을 사랑한다. 넷째, 학문을 가르쳐 사람을 기른다. 다섯째, 사람들을 위한 사표가 된다. 여섯째, 평생 동안 배운다가 그것이다.
수정안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지만 ‘학생을 사랑한다는(熱愛學生)’ 조항 속에 ‘학생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문구를 새로 넣음으로써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크게 문제될 것 없을 문구가 새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최근 중국 교육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교사 판메이쫑(范美忠)의 도망 사건’과의 관련 의혹 때문이다. 지난 원촨(汶川) 대지진의 과정에서 드러난 교사들의 살신성인 모습은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커다란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사들의 명예가 한 사람의 개인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한순간에 실추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이른바 ‘판 선생의 도망(范跑跑)’ 사건이다.
지진 대참사가 발생한 지역의 한 학교인 두장옌광야학교(都江堰光亞學校)에서 국어(語文)를 담당하는 교사 판메이쫑(范美忠)은 지진 당시 학생들보다 먼저 운동장으로 대피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당시의 심경을 적은 글을 자신의 블로그(blog)에 ‘지진 경험기’라는 제목으로 올렸고, 중국 인터넷에서는 이 사건을 의미하는 ‘판선생의 도망(范跑跑)’ 또는 ‘먼저 도망간 선생(先跑老師)’라는 검색어가 검색 순위 상위에 오르면서 ‘교사가 그래서는 안 된다’와 ‘교사도 사람으로,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격렬한 찬반논쟁의 소재를 제공하였다.
현재까지 이와 관련한 네티즌들의 의견은 판메이쫑(范美忠)은 교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할 위치에 있는 교사가 위기의 순간에서 학생들을 팽개치고 어떻게 자신만 살겠다고 혼자 뛰쳐나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들이 분개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의견들은 판메이쫑(范美忠)을 비난하는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등 아직까지도 판메이쫑(范美忠)에 대한 마녀사냥식 인격모독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네티즌들은 지난 6월초, 판메이쫑(范美忠)의 교사자격을 취소하거나 그를 교단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을 교육부에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여론과 관련하여 중국 교육부는 판메이쫑(范美忠)이 속한 학교는 국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교사의 고용과 해고의 권한이 학교 측에 있으므로, 이 문제는 해당 학교가 해결해야 한다고 하여 일단 이 사건은 해당 학교로 넘어갔다. 이후 해당 학교에서는 판메이쫑(范美忠)을 해고하였고, 이에 판메이쫑(范美忠)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이 교사로서 숭고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염치없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라며, 부당한 해고에 대하여 항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교육부가 갑자기 예정에 없던 교사직업도덕규범 수정안을 발표하고, 내용 가운데 학생의 안전 보호 의무를 끼워 넣자 교사들은 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행동을 빌미로 교사 전체를 모독한다며 반발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하여 중국 교육부 대변인 왕쉬밍(王旭明)은 6월말 기자회견에서 이번 규범의 개정은 판메이쫑(范美忠)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10여 전에 만들어진 교사도덕규범이 현재 중국의 상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수정을 하게 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당위성의 근거로 현재 미국의 경우 교사가 학생들을 관리하지 않는 상태로 내버려둘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지진 발생 시에 교사가 학생들을 떠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중국의 교사도덕규범에도 마땅히 교사는 학생의 안전을 보호해야한다는 규정을 삽입해야 함을 강변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로 앞으로 중국에서는 교사가 갖추어야할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도덕성이 부각되게 되었다. 교사도덕규범이 비록 법률적인 구속력은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 교사의 초빙 과정에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교사가 갖추어야할 덕목 가운데 도덕성이 강조되는 상황과 관련하여 일부 교육계 인사들은 학생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사회구성원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인데, 이러한 당연한 사회 도덕률을 교사가 갖추어야하는 도덕규범으로 명문화한다면 이는 우스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학생의 안전을 보호해야한다는 규정을 교사도덕규범에 명문화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러한 도덕률을 지킬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교사도덕규범의 ‘학생들을 사랑하라’는 조항 속에는 이미 학생들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이러한 문장을 따로 삽입할 필요가 없으며, ‘판선생 도망사건’을 빌미로 교사들을 폄훼하는 이러한 규정을 삽입하려는 중국 교육부의 의도는 더욱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이번 조치와 관련하여 일부 교사들이 불만을 드러내는 가장 큰 이유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현저히 낮은 중국의 현실에서 교사들의 책임과 의무만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에는 교사들에게 도덕적인 책임에 대한 요구만 있을 뿐 정작 교사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내용은 없다면서 이번에 중국 정부에서 교사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도덕규범을 수정하는 김에 교사의 권리에 있어서의 보장조치도 명문화하자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소수 의견은 아직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교사도덕규범 수정과 관련한 중국 교육계의 논쟁을 접하면서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모두 교사는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