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집 자식들은 성적이 안 되어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호주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학생은 죽어라 공부해서 90점을 맞아 희망 학과에 합격했다면, 동급생 B는 80점을 맞고도 A와 버젓이 같은 과 학생이 되는 길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부에서 학자금을 융자받지 않고 자비로 전액의 대학 등록금을 낼 경우 희망 학과의 커트라인을 최고 10점까지 낮게 적용하여 합격을 시켜주는 특별대우를 대학마다 실시해 온 탓이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기여입학제'와 비슷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모습들도 보기 힘들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새로 들어선 정부는 대학의 이같은 ‘학비전액 자비부담제도’(full fee-paying scheme)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부유층 자제들에 대한 특혜로 인해 합격권의 성적을 받고도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일반 학생들의 허탈감과 좌절감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다. 반대로 성적이 썩 좋지 않아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넉넉한 집안의 자녀들은 이번 조치로 실망감을 안게 되었다.
해외 유학생들처럼 국내 학생들 가운데서 학비를 전액 부담하는 조건으로 대학입학 시험의 가산점을 부가하던 이 제도는 그간 의대, 법대, 치의대, 수의대 등 이른바 명문 대학 인기학과에 지원이 집중되어 부유층 자녀들을 위한 특별 제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해외 유학생들의 경우도 대부분의 과에서 일반 학생에 비해 낮은 커트라인이 적용되지만, 같은 내국인으로서 단지 ‘돈을 싸들고 들어왔다’는 이유로 고득점을 요하는 학과를 쉽게 차지해 왔던 것.
특히 대학등록금을 전액 부담하는 학생은 일반 학생에 비해 등록금이 더 비싼 데다 인상폭도 커서 한 때는 무려 75.5%까지 인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부금 입학 형태와 유사한 특혜를 받는 처지로서는 등록금 인상에 대해 볼멘소리를 할 게재가 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정부가 바뀌면서 제도 자체가 백지화 되게 된 것이다.
바뀌는 제도로 인해 예비 수혜 대상자들만 허둥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예산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대학당국이다. '학자금 전액 부담 학생' 1명당 2만 달러 수준을 받을 수 있었던 대학 당국으로서는 부족한 재정과 예산을 충당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측은 이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결국 해외 유학생들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자비 학비 학생들이 차지하던 자리는 일반 학생들에게 돌아가기보다 어쩔 수 없이 유학생 몫이 될 것이라며 정부 처사를 못마땅해 하고 있다.
현재 호주 대학의 총 유학생 수는 약 20만 명으로 대학에 따라서는 4명 중 1명 선에 이르고 있다. 한편 학비 전액 자비 부담 국내 학생 숫자는 전국 대학을 합쳐 1만 명을 상회하며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 숫자를 점차 늘여가던 추세였다.
‘학비전액자비부담제도’(full fee-paying scheme)가 폐지됨에 따라 각 대학들은 적게는 수 백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 천만 달러의 재정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례로 제도가 바뀜에 따라 규모가 큰 시드니 대학의 경우 향후 4년 간 3000만 달러의 재정손실을 겪게 될 전망이며, 맥콰리 대학은 올해 242명의 학비전액자비부담 학생들을 수용하여 총 289만 달러의 여유 재정을 확보해 놓은 상태이다. 그 밖에 이 제도 하에서 400명 정도를 따로 모집한 한 단과 대학은 이들을 통해 700만 달러의 재정 이득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폐지된 제도 하에서는 그 만큼의 재정 압박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학들이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호주 대학 총장 협의회는 제도의 폐지에 앞서 연방 정부가 대학 당국의 재정 손실과 부족분에 대해 어떤 형태로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계획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기대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하고 있다. 대학으로서는 모자라는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유학생을 유치하는 쪽으로 힘을 쓸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유학생들의 자질로 인한 대학의 학력 저하 문제가 다시금 불거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