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일본은 식민지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했다. 창씨개명을 강제하고, 학교에서는 조선어 교육을 폐지했다. 그리고 1942년 당시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고 있던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 소속 학자를 사상범으로 체포한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당시 체포됐던 33명 중 이윤재, 한징은 고문 후유증으로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고, 이극로, 최현배 등 옥살이를 하던 사람들은 광복 이후 출소한다.
당시 유죄가 선고된 자에게는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이다”라는 결정문이 내려졌다. 이처럼 목숨을 걸고 우리말과 글을 지켰던 조선어학회는 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오늘날까지 한글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민간학술단체로 한글보급, 한글표준안 제정 및 국어교육에 큰 공헌을 미친 한글학회가 오는 31일로 100돌을 맞이한다. 1908년 8월 31일 주시경, 김정진 등이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위해 만든 ‘국어 연구 학회’가 생긴지 100년이 된 것이다.
한글학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2년 전 부터 기념사업회를 구성하고, 전시회·기념식·국제학술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22일 서울 신문로 한글회관 얼말글교육관에서는 ‘한글학회를 이끈 스승 추모전’이 열린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33인과 한글학회 역대 이사장에 대한 추모식과 함께 추모영정, 유품 등을 전시한다.
서울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념관 전시실에서는 ‘100돌 기념 전시회’를 갖는다. 한글학회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각종 문헌과 도서 150여점, 서예작품 40여점, 한글 연표 등을 2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전시한다. 가장 큰 행사는 29~30일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국제 학술대회’다. 스테판 크놉 런던대 교수, 알브레히트 후베 본대 교수, 로스 킹 브리티시콜럼비아대 교수 등 외국인 교수와 손호원 하와이대 교수, 김수원 서울대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서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학회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100돌 기념식은 학술대회가 이후 같은 장소에서 오후 5시에 열리며, 31일에는 ‘국어연구학회’가 처음 모임을 가졌던 서대문 봉원사에 표지석 제막식이 개최된다. 우정사업본부는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유윤상 한글학회 사무장은 “민간단체로서 정부의 지원이 미비하고 관심이 부족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우리 학회는 100돌을 기점으로 앞으로는 우리말·글의 세계화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