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골짜기가 많기 때문에 발라쥬라 불리는 샹파뉴 지방의 한 모퉁이, 강과 시냇물의 나라에서 태어났다. 내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골짜기의 움푹 파인 곳이나 맑게 흐르는 물가, 수양버들의 짧은 그늘 속에 있었다. 그리고 강 위에 안개가 피어 10월이 될 때…"
금세기 최고의 시인 철학자로 평가되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대표작 '물과 꿈'에 나오는 이 같은 물의 몽상은 강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조차도 물에 대한 근원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단지 바슐라르 특유의 아름다운 산문이 갖는 시적 문체의 흡인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살균 처리된 세계'라 부른 과학인식론의 메마른 탐구로부터 풍부한 문학 상상력의 형이상학 쪽으로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평생 행복한 몽상에 젖어 살 수 있었던 특이한 사상가 바슐라르. 그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 출신이면서도 유달리 물의 풍경에 민감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적 실체로 파악된 물에 대한 몽상을 회화의 세계에서 가장 절묘하게 묘사한 화가를 꼽는다면, 우리는 서슴없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940~1926)를 들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수련' 연작(사진)이 바슐라르의 몽상을 자극하고 활동케 하는 경탄의 대상이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동질적인 몽상의 세계에서 서로 화답하는 바슐라르와 모네라는 두 예술혼의 '만남', 이것이야말로 그림과 문학이 장르상의 칸막이를 뛰어넘어 울림과 되울림을 주고받는 행복한 '교감'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바슐라르는 1952년 '말'지에 '수련 또는 여름 새벽의 경이로움'이라는 모네에 대한 예찬의 에세이를 쓴다. 그는 거기서 마치 시인과 같은 탄력 있는 필치로 모네의 수련 그림에 나오는 물이라는 물질이 환기시키는 몽상의 자애로운 운동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조용한 수면에 떠 있는 '백조의 고상한 알' 같은 수련의 꽃봉오리가 어렴풋한 유혹의 붉으스레한 장미빛 꽃을 피워냄으로써 찬란한 "새벽의 순간을 알린다"고 쓰고 있다.
시적 창조력의 회화적 형상화라 할 수 있는 모네의 수련의 세계는 단순한 대상의 베끼기, 현실 재현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숨쉬는, 탄생과 죽음을 거듭하는 영원한 자연의 본질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역동적 몽상의 세계, 즉 인간의 상상력을 일깨우고, 부추기고, 확장시키는 내적 힘과 희열을 가져다주는 세계이다.
클로드 모네는 '수련 대장식화' 연작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후, 1926년 12월 6일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이 대작은 오늘날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보존되어, 그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종 물의 몽상의 바다에 빠지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