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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⑤ 두개의 가야국

두 나라는 같은 시조이면서도 서로 경쟁적인 입장에 있었으며, 낙동강 상류에 있던 대가야는 위에 있었기 때문에 윗가야(우가야, 上加羅), 본가야는 강 어구에 있었기 때문에 아랫가야(아라가야, 下加羅)라고 불렀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아주 비슷하게 닮은 원인은 아무래도 고대 한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찾아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역사학자 이병도 씨는 그의 저서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낙동강 유역의 변진족은 25개의 소국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 중 12개 소국은 가야국으로써, 이들 가야국은 고대 이집트 문화가 나일강 유역에서 꽃피었던 것처럼 낙동강 유역에 가야 문화를 꽃피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낙동강은 경상북도의 태백산 황지(黄池)에서 부터 시작해 김해에 이르는 길이 5300㎞의 대하로서, 유역의 넓이는 34750㎡로 하구에는 삼각주 델타를 형성하고 있다. 풍부한 수량, 비옥한 토지, 온난한 기후로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꽃피었고, 양질의 철을 바탕으로 한 철기문화의 발달로 내륙의 타 지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융성기를 구가했다고 한다.

가야국들 중에서도 특히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본가야(아라가야,下伽倻)인 구야국(狗邪国)이 특별히 번성하였는데, 이는 낙동강 하구에 위치함으로써 직접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데다, 그들의 해운 기술이 크게 발달되었었기 때문이다.

당시 본가야는 주요 생산물의 집산지로서 기능과 함께 고도의 해양 문명을 이루었던 것은 오늘날 유적지의 발굴 조사로도 입증되고 있다.

AD 42년 가야제국의 맹주로 등장한 본가야의 김수로왕(金首路王)은 멀리 인도로부터 왕비를 맞이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것도 그들이 일찍부터 해운 기술에 능해 해외로 웅비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의 원주민들에게 농경이나 금속문화를 전해주는 한편, 여러 가지 토산품을 수입하고 또 사람들도 잡아와 노비로 부렸다고도 한다.

작가 김달수 씨는 일본의 야요이 문화는 BC300~40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이 문화를 형성한 중심 세력은 고대 한국 남부에서 도래한 가야족들이라고 한다. 중국의 ‘후한서’ 동이전(東夷伝)을 보면, 그 당시에는 아직 신라, 백제는 없었고,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시대로써, 마한과 진한 사이에 길게 끼어 있는 존재 같은 12개국의 제 부족이 차지한 지역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가야 연맹체’였다.

삼국사기에도 ‘6가야 연맹’의 번영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이들 가야에 대한 표기를 ‘가야’ 또는 ‘가라’라고 하며, 당시에는 우리 문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쓴 관계로 伽耶, 加耶, 加羅 등으로 표기했다.

가야의 제 부족들은 점차 느슨한 연맹체를 결성하고 최초로 맹주가 된 것은, 지금의 고령지방에 자리 잡은 대가야 즉, 미오가야(弥烏邪馬国)이고, 후에는 김해지방의 본가야 즉, 구야국(狗邪国)의 김수로왕이 맹주가 된다.

이 두 나라는 같은 시조이면서도 서로 경쟁적인 입장에 있었으며, 낙동강 상류에 있던 대가야는 위에 있었기 때문에 윗가야(우가야, 上加羅), 본가야는 강 어구에 있었기 때문에 아랫가야(아라가야, 下加羅)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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