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4세기 중반부터 격동의 시대를 맞는다.
백제(百済)는 삼한의 하나인 마한(馬韓)속의 작은 부족국가였지만, 고이왕(233~286)이래 급속히 세력을 증대시키고, 불세출의 명왕인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때 영토를 확장, 주변의 다른 소국들을 점령하면서 강성해 졌으며, 북방의 고구려(高句麗)도 4세기에 들어서서 중국의 낙랑이나 대방군을 공략하며 그 세력을 남쪽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한편, 진한(辰韓)속의 작은 소국인 서로국(斯盧国) 신라(新羅)도 이 시기에 진한의 대부분을 통합하면서 변한의 영토도 6가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손에 넣으며 세력을 동남쪽으로 확장하여 갔다.
이러한 욱일승천의 신라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백제의 근초고왕은 재빠르게 야마또국의 본국인 대가야(우가야 또는 미오야마국이라 함)를 점령하였다가, 본가야(아라가야 또는 구야국)에 반환하면서 신라와의 전쟁 시 거병을 요구하여 왔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라가 백제 공략 시 가야를 방파제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가야족은 태양을 숭배하는 태양족으로써 신라와는 같은 신을 숭배하는 변진족으로, 곰을 숭배하던 백제와는 이질적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 본가야는 이러한 백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이외에 별다른 묘책이 없었다.
이로써 백제의 승인아래 구가야의 전역을 경영하게 된 본가야에 대해, 일본의 대가야의 일족인 야마또국(邪馬台国)은 동족을 배반했다고 분개하여, 본가야의 분국일족인 규슈의 구노국(狗奴国)을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야마또(지금의 나라지방)로부터 멀리 떨어진 규슈를 원정한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무모한 행위였다. 결국 이 전쟁은 본국이 건재해 있던 구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으며, 이로써 야마또국은 소멸하고 구노국이 그 뒤를 있게 된다.
이런 역사를 ‘일본서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쥬아이(仲哀)천황은 신공황후(神功皇后)와 함께 규슈(九州)로 내려가서 구마소(熊襲)를 쳤지만, 신라를 치라고 하는 황후의 신탁(神託)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쓰꾸시(筑紫-후쿠오카 남쪽지방)에서 활을 맞고 급사했다.”
이로써 당시 야마또국의 쥬아이천황은 동족을 배반한 구야국(狗邪国)에 대한 징벌로 분국인 규슈의 구노국(狗奴国)을 토벌하려고 했지만 실패함으로써, 히미꼬(卑弥呼)를 조상으로 하는 야마또국(邪馬台国)왕조는 AD362년에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일본서기를 보면 쥬아이천황이 죽은 후는 구마소(熊襲)라고 하는 말이 역사에서 사라지는데, 이 구마소는 구노국을 의미하며, 따라서 구마소 자신이 야마또의 주인공으로 바뀌게 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