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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⑪ 백제의 멸망

김춘추는 당의 2대 황제인 태종을 만나 ‘북쪽의 근심인 고구려를 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뿌리인 백제를 공략하는 것이 순서’라는 이론으로 당을 설득시켜 동맹에 성공, 동북아 최초의 연합군을 탄생시키고 무방비의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파죽지세 총공격에 사비성이 끝내 불바다로 화했다.


가야 멸망 후, 한국은 본격적인 삼국 시대로 접어든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력 다툼은 그 도를 더해 결국에는 중국의 당까지도 끌어들이는 합종연횡(合縦連横)이 일어나는데 요점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589년에 중국을 통일한 수(隋)는 만주일대와 요서를 지배하고 있는 동이족(東夷族=말을 잘 타는 동쪽의 오랑캐) 고구려(高句麗)에 대한 근심을 제거하기 위하여 두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첫 번째는 수문제가 군사 30만으로 쳐들어 왔으나, 홍수와 전염병으로 대패해 철수했으며, 두 번째는 수양제가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까지 쳐들어왔으나,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을지문덕장군의 30만군에 크게 패하여, 살아 돌아간 자가 겨우 2700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인해 결국 수나라는 건국 38년만인 618년에 망하게 된다. 고구려의 강인함과 한민족의 위대함이 섬광처럼 빛나는 시기였다.

수를 이은 당나라 역시 당태조가 직접 진두지휘하여 고구려 공략에 나섰으나, 안시성(安市城)전투에서 양만춘(陽万春)장군이 쏜 화살에 한쪽 눈을 잃고 철군한 당 태조는 화병으로 죽고 만다. 이렇듯 강한 고구려가 백제와 동맹을 맺고, 또 백제는 일본과 연결하며 한강 유역까지 뻗어나간 신라를 강하게 압박해 오자, 다급해진 신라는 고구려를 방문하였으나 거절당하고, 일본으로 가서 사정을 파악한 후, 국가의 활로를 당과의 동맹에서 찾는다.

당대의 명재상인 김춘추는 당의 2대 황제인 태종을 만나 ‘북쪽의 근심인 고구려를 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뿌리인 백제를 공략하는 것이 순서’라는 이론으로 당을 설득시켜 동맹에 성공, 동북아 최초의 연합군을 탄생시킨다. 수년간 만만의 준비를 갖춘 나당연합군은 계획대로 백제의 수도 사비성(부여)을 급습하여 바다에서 육지에서 물밀듯이 쳐들어갔다.

무방비의 백제는 이러한 미증유의 대공세에 속수무책이었으며, 우왕좌왕하는 백성들로 사비성은 아비규환의 수라도였다. 계백장군의 유명한 5천결사대의 황산벌 전투도 화랑 관창의 죽음과 함께 밀려오는 신라군을 저지하지 못하고 전원 옥쇄로 막을 내리고, 그 후는 나당연합군의 파죽지세의 총공격으로 사비성은 끝내 불바다로 화했다.

당시 꽃다운 삼천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날려 순결을 지켰다고 하는 낙화암을 향해 부소산을 오르노라면, 길가 양옆으로는 지금도 당시의 곡량미 창고 터에 타다 남은 쌀 재가 수북이 쌓여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역사의 영고성쇄의 무상함에 그저 가슴이 아파올 따름이다.

아련히 들리는 백마강의 구슬픈 뱃노래 소리와 고란사의 번뇌를 떨치는 목탁 소리는 슬퍼하는 나그네의 애간장을 끊는 듯 들리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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