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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찾아‘가면’ 실패, 찾아‘오게’ 만들어야죠”

분교에서 본교로: 충남 아산 거산초, 본교로의 꿈: 광주 지산초 북분교

충남 아산시 송악면 거산초등학교는 학생들이 들꽃과 텃밭 가꾸기, 동물 기르기, 벌 기르기 등에 참여하는 생태교육 프로그램으로 전국에 이름이 났다. 이 같은 특화된 프로그램 덕분에 분교였던 학교는 대도시 아이들의 전학이 늘면서 분교가 된 지 13년 만인 지난 2005년 초등학교의 이름을 되찾았다. 학생 수 기준으로 교사를 도시로 전출하는 등 학교통폐합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광주 지산초 북분교가 또 하나의 거산초가 될 가능성을 보여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충남 아산 거산초와 광주 지산초 북분교. 두 학교의 특별한 교육과정을 살펴봤다.

숲·텃밭 가꾸고 고구마 캐고…교과․주제통합 수업, 계절별 체험학습
작은 학교만의 특화 교육과정으로 성공 ‘2008년생 벌써 입학대기 중’




# 10월27일 오전 11시. 2학년 햇살마을 아이들은 학교 앞 텃밭에서고구마 캐기에 열중하고 있다. 수확이 좋아야 햇살마을 어린이의 겨울 간식거리가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캐는 손놀림이 9살 아이들이라고 하기엔 정말 제법이다. 같은 시간 3학년 꽃잎마을 교실. 이미 고구마 캐기를 끝내고 특별실 수업을 간 아이들을 대신해 담임 류근란 교사는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실마다 준비되어 있는 버너와 코펠을 이용해 오늘 수확한 고구마를 찌고 있던 류 교사는 “아이들이 돌아오면 하나씩 나눠줘야죠. 저희는 제법 많이 캤어요. 교장선생님도 하나 드시겠어요?”라고 교실을 방문한 박장진 교장에게 스스럼없이 고구마를 하나 건넨다.

“학교 옆 텃밭에서 아이들이 상추와 토마토를 가꾸고 감자와 고구마도 심습니다. 수확한 고구마와 감자는 이렇게 선생님들이 간식용으로 아이들에게 쪄주지요. 닭과 토끼도 기르는데 새끼를 낳으면 아이들이 집에 가서 키우죠.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 심성이 정말 좋아요. 수업도 교과․주제통합 방식으로 합니다. 벼 베기를 하면서 논의 가로, 세로 길이를 재서 넓이도 구해보고 생산량은 얼마나 되는지도 따져 보는 식이죠. 이렇게 가르치는 저희 학교 수업방식을 보고는 과연 저렇게 가르쳐 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도 평균 80점 이상이 나올 정도로 높았습니다. 점수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저희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는 되겠지요.”

충남 아산 거산초등학교 박장진(59) 교장의 말이다. 이 학교는 1993년만 하더라도 전교생이 35명에 불과한 분교였다. 하지만 학교와 지역사회의 학교 살리기 열성으로 천안, 아산 등 인근 도시에서 2002년 한 해에만 96명의 학생들이 전학을 왔다. 덕분에 2005년 분교 가운데 전국 처음으로 본교로 승격까지 하기 이르렀다. 현재는 유치원을 포함 전교생 137명이다.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지역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어요. 그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학 대기자가 70~80명이나 되고 2008년생이 벌써 입학신청을 낼 정도로 인기가 있지만 학생 수를 늘일 생각은 없어요. 저희가 추구하는 알찬 수업을 위해 학급당 학생 수 20명이 적당하니까요.”

박 교장이 말하는 지역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의 비결은 바로 생태체험 학습이다. 이순신 장군 축제나 짚풀 문화제 행사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체험은 물론 학년별로 수준에 맞게 다양한 자연학습을 한다. 들꽃·숲·텃밭·양봉·벼농사가 좋은 교재다. 특히 여름과 가을엔 3~6일씩 교과 수업 대신 공예나 도예 등을 집중적으로 배운다. 지난달 19~23일은 가을체험학습 기간으로 영화 만들기, 교육연극, 전통놀이 체험 등을 학년별로 집중 실시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시간씩인 ‘다모임 학습’ 시간에 모두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토론하고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을 스스로 정한다. 학부모들은 교사·학부모 연석회의를 통해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1년에 두 차례씩 교육계획 수립 및 평가를 위한 교사·학부모 공동연수도 연다.

“통학버스와 그 비용을 모두 감수하면서 1시간 넘게 걸리는 우리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데는 학부모들의 소망이 들어있다고 봐요. 그만큼 ‘제대로 된 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박 교장은 “학부모의 이런 열의가 없었다면 거산초가 이렇게까지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생태체험교육이 실천될 수 있었던 것에는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사회 인적네트워크의 긴밀한 결속력을 꼽을 수 있다. 이경렬 당림미술관장의 미술수업, 이재영 공주대교수의 생태체험학습 지원, 이기영 호서대교수의 환경음악수업, 안복규 유기농농업인의 양봉실습, 수의사 학부모 초빙 동물수업, 생명의 숲 대전지부와 공주산림박물관의 강의 등 대학, 시민단체, 공공시설 등 각계 전문가들이 전문 강사로 나서 체험학습의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지산초 북분교 역시 거산초와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광주시라지만 주변에 논밭이 많아 농촌학교나 다름없는 북분교는 4년 전 학생 수가 28명으로 줄면서 분교가 됐지만 지금은 78명으로 늘어 농산어촌 지역 본교 기준인 60명을 넘어섰다. 올해도 17명이 입학하고 전학생도 늘고 있어 내년에는 8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북분교의 본교 격상이 꿈만이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북분교 만이 갖고 있는 몇 가지 장점이 주효했다. 아담한 정문을 지나 운동장에 이르는 길은 소나무 숲으로 덮여있고, 할미꽃, 민들레, 돌단풍, 구절초 등 야생화도 지천으로 널려 있는 환경을 이용해 1주일에 한두 번은 생태숲길 걷기, 야생화 관찰, 천연염색 등 생태체험 학습을 한다. 4000여m²의 텃밭엔 배추와 오이, 고구마 등을 아이들에게 직접 가꾸게 해 급식재료로 쓰고 있다.

이 학교의 교육방침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놀고 배우도록 놔두는 것. 교실에서 뒹굴고 떠들고 놀다 심심하면 운동장이나 텃밭에 나가 흙 놀이를 하는 아이들 때문에 학교는 오후 늦게까지 웃음소리로 넘쳐난다.

김숙희 교감은 “아토피 피부염 치료를 하려고 전학 오는 학생도 늘고 있다‘며 ”자연의 소중함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려는 학부모들의 열성이 학교를 폐교 위기에서 구했다”고 밝혔다. 김 교감은 “앞으로도 학생 수 60명 이상을 계속 유지해 본교 부활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제가 캔 고구마 이따 오후에 먹을 거예요. 친구들이랑 이렇게 즐겁게 다닐 수 있는 우리 학교가 정말 저는 최고라고 생각해요.”(이창민 3학년) “맞아요. 해마다 감자, 고구마, 벼 베기까지 할 수 있는 학교가 어디 또 있겠어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우리랑 같이 한 번 해 보실래요?”(이찬혁 3학년)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건네 오는 거산초 학생들의 모습에서 박장진 교장이 주창하는 ‘기본에 충실한 교육’의 힘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키워주는 게 우리 교육자들이 할 일”이라는 박 교장은 “거산을 떠날 내년 8월까지 교사들을 지원하고 시설 확충에 힘을 쏟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학교가 찾아가서 학생을 모집하려 하면 십중팔구 실패합니다. 장학금 주고 후원회 설립하고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2~3년을 못 버팁니다. 작은 학교를 살리려면 도시학교보다 특별한, 지역에 맞는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가 스스로 찾아오게끔 만들어야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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