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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수필 당선> 잔망스런 인섕

선생님, 며칠 전 학교 급식에 고추장 비빔밥이 나오던 날이었습니다. 밥먹다 말고 한 아이가 울상을 짓고 있길래 밥 먹던 숟갈을 내려놓고 그 아이에게로 갔죠. 평소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아이였기에 고추장을 덜어주어야 하나 맨밥을 더 퍼 줘야 하나 하면서요. 제가 맡고 있는 1학년 교실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니까요.

부지런한 숟가락질 소리, 몹시도 매웠는지 후울쩍 콧물을 들이마시는 소리, 조곤조곤한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비교적 뒤 쪽에 위치한 그 아이 자리로 갔습니다.
“○○야, 밥 먹다 말고 왜 울상이니? 누구하고 다퉜어?”

다른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말하려고 허리를 달싹 엎드려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는 여지껏 참고 있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묻지나 말 걸 제 물음은 그 아이의 한껏 부풀어 오른 울음보를 바늘로 콕 터뜨린 꼴이 되고 만 겁니다.

이미 봇물처럼 터져 버린 아이의 울음이 어찌나 구슬프고 처절하던지 저희 반 아이들은 모두 목이 메이는 점심을 꾸역꾸역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랬거나 말거나 제 몫의 비빔밥을 한 그릇씩 뚝딱 비운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가고 교실에는 어느새 그 아이와 저만이 남았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아이들이 모두 떠난 교실은 얼마나 휑뎅그레 적요로운지 몰라요. 흘러가는 먼지나, 언뜻 불어 온 바람에 흔들리는 화분의 잎사귀에서도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싶게 쨍하니 고요한 속에서 그 아이만이 목놓아 통곡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몇 십분이 흘렀건만 아이는 울음 그칠 생각을 당체 하질 않았죠.

복도를 지나는 옆반 선생님이나 교실 청소를 도우러 온 학부모들이 무슨 재미난 구경이나 난 듯 창문 앞에 기웃기웃하는데 참 난처하더라구요. 마치 제가 아이를 흠씬 패준 것같이 보이기 딱 알맞은 배경에 풍경이었거든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못되고 사나운 선생으로 비치는 게 아닐까, 우습지만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었지요.

‘이 아이는 도대체 왜 이리도 울음 끝이 질긴 것이지?’

아무리 달래고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도 않은 채 계속 울기만 하는 아이에게 저는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부아를 다스리기도 쉽지 않더라구요.

책상 위에는 몇 술 뜨지도 않은 채로 식어가는 제 몫의 비빔밥이 널부러져 있고 4교시 내내 장난꾸러기들과 씨름하느라 피로와 허기로 두 눈이 푹 꺼진 채로(거울은 안보았지만 그랬을 거라 믿으면서) 아이에게 다시 한 번 간청하듯 물었어요.




“왜 우는지 선생님한테 말해줘. 이건 부탁이야.”
그러자 아이는 간신히 울음을 참고는 제게 아주 놀라운 대답을 들려주더군요.
"인섕이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요."
"뭐라고? 인생?"

저는 제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습니다. ‘환상의 짝꿍’인가 하는 어린이 대상 TV 프로그램의 예선을 통과한 바 있는 이 아이는 평소 말본새가 당돌하고 야물딱지기까지 했지만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한테서 인생이란 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게다가 더욱 가슴 찡한 것은 앞니 빠진 그 아이가 말한 인생은 '인생'도 아니고 '인섕'이었다는 점입니다.

아이는 이제 어느 만큼 진정이 되었는지 울음 소리도 잦아지고 나중에는 여지껏 울어 제낀 것을 좀 민망해 하는 눈치였어요. 잠시 넋이 나갔던 저도 정신을 차리고 조금 더 캐물었더니 ‘요즘, 영어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놀 시간도 없단 말이에요.’ 하데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여덟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겪어야 했을 고단한 하루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진정으로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매스컴에도 종종 오르내리는 ‘소아우울증’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으며 잠시 아연하기도 했구요. 기회가 되면 아이 엄마에게 의당 선생으로서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은 충고해 주리라 마음도 먹었답니다. 도무지 놀 틈이 없는 아이들인 걸요. ‘놀아도 놀 줄 모르는 아이들’-운율까지 맞추어 굳이 말해 보지 않아도 그것은 요즈막의 서글픈 현실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랍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야. 이 아이가 단지 그 이유로만 울었던 것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다소 엉뚱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선 것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교회학교 동극에서 예수 인형을 붙안고 마리아역을 하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입니다.

너무 경건하기만 한 배역이었던지라 입체적인 감정표현 따위는 필요도 없었겠지만 아무튼 자동인형처럼 감정 없는 대사를 외우고 있던 제가 객석 쪽을 바라볼 여유를 부렸던 게 불행이라면 불행이었습니다. 교회당을 메우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유리알 박은 듯 무연한 눈들을 하고서 제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객석에서 수백 개의 눈들만이 이상한 실감으로 교교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왜 그리도 무안하고 서럽던지요. 지금 와 생각하니 그건 다름 아닌 서늘한 고독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 대사를 주워 섬기고 제 몫의 역할을 마치고는 허둥허둥 무대에서 내려와 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비빔밥을 먹다 울던 바로 그 아이처럼 말이죠. 저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 요셉이나 천사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저마다 굉장한 모험을 막 끝마친 후인 듯 두런두런 무용담을 나누고 있었답니다.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한 뼘씩은 훌쩍 자란 의젓한 표정을 하고 서로를 칭찬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 사이에서 잔뜩 구겨져 흐득흐득 느껴 울던 저의 모습은 얼마나 쌩뚱맞고 엉뚱한 것이었을까요?

무대 뒤로 달려오신 엄마는 제 모습을 보고 참으로 당황해 하셨어요. 왜 넌 다른 아이들처럼 웃질 못하고 그리 우는 것이냐 내쳐 물었을 때 저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는데 당황했습니다. 사실은 그 이유를 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저는 얼른 마음과는 영판 다른 대답을 꾸며 말했답니다.

“아빠가 이 자리에 계시지 않아서 너무 슬펐어.”

순간 제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에 스스로도 놀랐지만 더욱 놀란 것은 엄마 쪽이었던 모양입니다. 엄마는 제 대답을 듣고 대번에 얼굴이 화알짝 피시더니 저를 끌어 안으셨습니다. 그리곤 아빠를 주님 전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갸륵한 효성이라며 여러 사람들한테 떠들고 다니셨어요. 어찌나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선생님, 그 아이의 울음은 이렇듯 아련한 기억을 제 앞에 홱 잡아끌어 놓았답니다. 그 울음도 어찌 보면 그렇듯 설명할 길 없는 삶에 대한 막연한 서러움, 애매한 예감에 대한 반응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아이의 말로는 혹은 제 입을 빌어서도 도저히 형언할 길 없는, 보다 근원적인 감정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울림으로서 말이죠. 인간의 속에 오래 전 부터 심겨져 왔던 씨앗 같은 슬픔이 고 작은 아이를 흔들어 깨우고 울렸던 것은 진정 아니었을까요?

제가 중학교 3학년이던 그 때 선생님은 제게 황순원의 ‘소나기’를 가르쳐 주셨지요. 소설의 끝부분에 소녀의 죽음을 이야기하던 소년의 아버지는 이렇게 중얼거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계집애가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초등학교 5학년쯤이나 되었을 계집아이는 소년과의 추억을 간직하려고 자기가 입던 분홍의 스웨터를 그대로 입혀 묻어달라고 했다지요. 그 부분을 가르치시다 선생님께서는 문득 제 얼굴을 바라다 보셨어요.

‘보기엔 몹시 약하고 가냘픈 데가 있어 보이면서도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는 뜻을 가진 ‘잔망스럽다’는 말이 제게 꼭 들어맞는다고 껄껄 웃으시면서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기복으로 툭하면 울기 잘하고 엉뚱스런 질문도 곧잘 하던 저를 밉게 보지 않으시고 너그러이 보듬어 주시던 선생님. 선생님을 떠올리면 ‘소나기’가 생각나고 ‘잔망스런 소녀’로 저를 아껴 주시던 선생님의 마음이 물결처럼 퍼져간답니다.

삶이 힘들다고 여겨질 때, 스스로가 못나게 느껴지고 싫증이 나고 말 때 저는 마흔을 목전에 둔 아줌마라는 사실도 잊고 열 여섯 잔망스런 소녀 적 기억을 떠올려보곤 한답니다. ‘나에게도 그런 귀한 시절이 있었다. 열 여섯 그 얄궂은 마음을 곱고 순전하게 받아주신 선생님이 계셨다.’는 위안은 그렇게나 제게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흐득흐득 느껴우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어느새 저는 선생님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답니다. 그리곤 제 곁에 서서 작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아이를 눈시울이 뜨뜻해질 만큼 뭉클 솟아나는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전 선생님께서 보내 주셨던 그 눈빛과 닮아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면서요. 그리곤 한 팔로도 가풋하니 안겨지는 그토록이나 잔망스런 아이를 가만히 감싸 안으며 이렇게 뇌까렸답니다.

'아이라고 슬픔이 없겠는가? 무엇이 너를 울게 했니? 마음껏 울려무나. 인섕은 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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