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공사 비리부터 교원 인사 비리까지 '백화점식'으로 이뤄져 온 교육계 비리의 뿌리깊은 환부가 최근 검찰과 경찰의 고강도 사정작업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17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 교장의 절반을 공모제를 통해 선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근절책을 내놨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비리 행각이 일선 학교에서는 고질적이고 관행적으로 자행됐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분석이어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 만연한 자재·시설비리 = 교사의 촌지 수수에서 수천만원이 오가는 시설공사 비리까지 교육비리의 형태는 실로 다양하다.
칠판, 교과서 등 각종 자재나 학교 시설 개·보수공사는 일선 학교에서 가장 큰 비리의 고리다.
최근 특정 업체에 학교 창호 공사를 수주하도록 도와주고 많게는 수천만원을 받아 챙긴 서울시교육청과 지역교육청 직원들이 검찰에 대거 구속된 게 대표 사례.
이들은 사무실과 학교 교정에서 버젓이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교육계 비리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지역에서 부적격 칠판을 사주는 대가로 수억원을 받아 챙긴 학교장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일부 교장이 수학여행 때 특정 여행사를 선정하고 뒷돈을 받는다는 소문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 위탁업체에 협박까지…방과후학교 비리 = 지난 달 검찰 수사로 서울지역 초등교장 5명이 불구속 기소된 방과후학교 위탁업체 선정 비리에서는 교장들이 협박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금품을 주지 않으면 해당 업체가 이미 맡은 프로그램을 폐쇄하겠다고 엄포를 놓거나 강사 교체를 승인하지 않는 등 악의적 수법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운영 승인을 해준 이후에도 학생 수강료의 10%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등 적게는 700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모 초등학교 한모 교사는 "학교 행·재정 전반에 전권을 휘두르는 '제왕적 교장'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며 "교장의 권한을 줄이지 않고서는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피라미드 상납' 관행 = 교장과 장학사 자리를 놓고 일선 교사들과 교육청 간부 사이에 금품이 오가는 인사 비리는 교육계의 가장 깊은 환부다.
최근 불거진 '장학사 매관매직' 사건에서는 장학사가 '수금책'을 맡고 상급자가 돈을 요구하면 곧바로 은행 계좌 등을 통해 송금하는 조직적인 '피라미드 상납' 행태를 보였다.
이런 인사 비리가 장학사·장학관뿐 아니라 교육청 일반 공무원에게도 만연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교육계 인사는 "수억원짜리 학교 공사를 수주할 업체를 선정하는 권한을 가진 시설과장직을 놓고 인사권을 쥔 간부와 직원 사이에 거액이 오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 교과부 대책 효과 있을까 = 교육계는 '전문성'을 이유로 외부로부터의 개혁을 피해온 것이 교육비리의 온상이 된 근본 원인이라며 이번 대책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일단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시교육청 직원은 "고인 물이 썩게 마련이다. 공모제를 통해 기존의 '교육계 카르텔'과 관계없는 외부 인사 교장이 된다면 관행화된 비리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교장·교감 자격연수를 거친 인사에게만 공모 자격을 주는 초빙형 공모제 위주라면 기존 방식과 다를 바 없다고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상급자에게 근무성적평정을 잘 받아야 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어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진정 교육비리를 근절하려 한다면 100% 외부인사나 일반 교원이 응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원단체도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반대 입장을 내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논평에서 "교육장·교장공모제만 확대하면 비리가 근절될 것이라는 기대와 처방은 안이하고 졸속이다"며 "주민 직선 교육감과 공모 교육장의 교육철학과 시책이 다르면 곧장 갈등과 혼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장공모제 확대에 대해서는 "교원인사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수업에 매진해야 할 교직사회에 인기영합주의 풍토가 조성될 개연성도 크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보도자료를 내고 "자율과 경쟁 강화로 빚어진 교육비리를 자율과 경쟁교육 강화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냐. 원인 분석도, 대책도 없는 발표다"라고 비판했다.
또 "교장 임기 연장 수단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초빙형 교장공모제를 50%로 확대하겠다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며 "사립학교의 교사 채용을 빌미로 한 '교사직 판매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