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에 대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커지고 있다. 맛과 영양은 부족하면서 칼로리만 지나치게 높아 어린이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급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장차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미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미션, 레디니스(Mission Readiness)’는 최근 성명을 통해 “17~24세 미국 젊은이의 27%인 900만명이 너무 살이 쪄서 군대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라며 “학교 급식이 학생들의 비만을 불러와 미국 안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존 샬리카쉬빌리 전 합참의장은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 급식의 질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급식 제도인 ‘전국 학교 급식 프로그램’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군부의 적극적인 건의로 도입됐다. 청소년들의 체중 미달로 군인을 뽑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당시 학교 급식은 열량을 높여 학생들의 살을 찌우는 것이 목표였지만 60여 년이 지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미 정부에 따르면 2008년말 현재 3050만명의 학생이 점심을 학교에서 먹고 있다. 학생들이 내는 식비는 끼니 당 1달러 75센트(약 1900원) 안팎이다. 연간 소득이 2만 8000달러 미만인 가구(4인 가족 기준) 학생은 무료, 4만 달러 미만은 40센트로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있다.
메뉴는 보통 2가지다. 그날의 주 메뉴가 있고, 이를 꺼리는 학생을 위해 햄버거나 샌드위치류의 보조 메뉴가 제공된다. 관련법에는 적당한 양의 단백질과 곡물, 과일과 야채, 우유 등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급식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우선 맛이 떨어진다. 아이오와주의 한 한인 학부모는 “학기 초 아이에게 학교 급식을 먹이다가 곧바로 집에서 도시락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며 “세계 최고 부국에서 이렇게 무성의하게 학생들에게 음식을 먹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도 “맛이 없어서 학생들의 상당수가 급식을 다 먹지 않고 버린다”고 말했다.
영양가도 문제다. 미 국립 과학아카데미 의약연구소 조사 결과, 학교 급식에 들어간 소금의 양은 권고치의 2배가 넘었다. 설탕과 지방도 많이 들어가 음식의 열량이 기준치를 크게 웃돌았다. 반면 과일과 야채는 부족했다. 학교 급식이 값싼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파는 음식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급식 질이 낮은 이유에 대해 일부에서는 학교에서 위생을 중시해 식중독 우려가 없는 냉동식품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학생들의 구미에 맞추다보니 지금과 같은 메뉴가 주류를 이루게 됐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핵심은 비용에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하면 학생들의 점심 단가는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1명당 2달러 68센트(약 2950원)이다. 하지만 식당 직원 인건비와 재료 운송비 등을 빼면 실제 학생들의 식재료비에 사용되는 금액은 1달러 수준이다. 타임은 “1달러로는 잘 해야 냉동피자 1조각과 감자튀김, 초코우유 밖에 먹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사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10년간 매년 10억 달러의 급식 예산을 추가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한 상태다. 영부인 미셸 여사는 학교에서 ‘정크 푸드’를 추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방송과 신문에서는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는 학교와 급식 회사의 모범 사례를 앞 다퉈 소개하고 있다. 학교와 지역 교육청이 생산자와의 직거래나 식재료 공동구매로 급식 단가를 낮추고, 맛·영양·신속 조리 3박자를 갖춘 메뉴를 개발하는 것 등이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학교 급식은 저소득층 복지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미국의 고질적 병폐라는 시각도 있다. 노병(老兵)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미국의 급식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