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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야기> `쿵'이요!

나의 초임지는 완행버스가 터덜거리며 달릴 때면 수업시간에도 흙먼지가 날아드는 국도변에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문맹을 퇴치하는 교육의 장인 학교에 전기는 물론 전화 한 대도 없는 참으로 캄캄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은 오직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문명의 빛으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멀쩡한 두 눈을 갖고 있으면서도 최고 학년인 졸업반이 되도록 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또래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힘도 세
부족할 게 없던 그 아이는 뜻밖에도 완전 까막눈이었다.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를 몰랐다.
나는 한 시가 급하다는 생각에 날마다 방과후에 아이를 남겼다. 그러고는 한글 기초과정부터 차근차근 지도했다. 아이가 열등감을 갖지 않도록 교실
주위에는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렀다.
열흘이 지났을까. 이제 웬만한 글자는 읽으리라고 믿은 나는 칠판에 `나' `어머니' 등 가장 기본적인 낱말들을 써 놓고 글자 하나를 짚으며
이렇게 물었다. "자, 이게 무슨 글자지?" "……"
`이 정도는 읽겠지' 기대했던 예상은 빗나가고 아이는 처음부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당황한 나머지 내가 짚고 있는 낱말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머리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자, 그럼 이건 무슨 자야?" `어' 자를 가리켰다. 아이는 또 말이 없었다. `이럴 수가…' 나는 너무 기가 차서 그만 얼떨결에 한쪽 발을
들어올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교단을 굴렀다. 그러자 멍청해 있던 아이의 말문이 열렸다.
"쿵이요"
햇병아리 교사의 열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일주일 후, 나는 그 아이의 가정환경을 알아 볼 요량으로 집을 찾았다. 산골 생활이 넉넉할 리 없었지만 유난히 가난한 형편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책보퉁이를 내던진 채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간 후였다. 때 국에 절은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부엌에서 얼굴을 내민 어머니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수인사를 건넸다.
내가 대략 찾아온 내력을 얘기하고 났을 때였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쇼. 졸업하면 설마 제 이름 석자 못쓸랍디여"
대수롭지 않게 건넨 어머니의 말씀을 되뇌며 귀가를 서두르던 그 때 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품에 안고 있던 새를 놓쳐버린 기분이랄까. 결국
나는 아이의 까막눈에 빛화살을 꽂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25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난 이제는 마흔 남짓의 중년이 돼 있을 그 아이를 떠올리곤
한다. `이제는 제 이름 석자는 쓰겠지…' <김재옥 서울소년의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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