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화합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학교 교장이 된다면 이를 봉합해 학교 경쟁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진흥원 건물 2층.
8월 말로 교장 임기가 끝나는 서울시내 11개 고교의 새 교장을 뽑기 위한 교장공모제 심층면접이 진행돼 일선 학교에서의 1차 심사를 뚫고 올라온 26명의 후보가 지망한 학교에 대한 진단과 처방책을 내놓고 교육관을 피력했다.
30년 가까이 교단에 섰거나, 다년간 교육기관에서 전문직으로 행정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이지만 교육계 안팎 인사 7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앞에서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여러모로 '준비된 교장'이라는 점을 10여 분간의 면접 시간에 최대한 적극적으로 알리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한 지망자는 공모한 학교의 실태나 문제점을 분석해 달라는 요구에 "공교육이 완전히 붕괴한 상황"이라고 단언했다.
"정년을 앞두고 전혀 열의 없는 교장과 소통·화합하지 못하는 교직원, 패기 없는 학생이 모여 있어 예전에 인기를 구가하면서 대학 진학률이 높았던 인문계 고교였지만 현재로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학급을 없애고 학생들을 소규모 단위로 쪼개 교사 모두가 담임을 맡게 하고 교장이 직접 학생 하나하나를 상대로 진로·진학 상담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른 지원자는 "정해진 교육과정에 아이를 넣는 게 아니라 가고자 하는 방향과 진로로 아이들이 갈 수 있게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전문계고 교장 후보는 "이 학교 문제는 특성화가 안 된 것"이라며 "학생, 학부모, 동문, 지역 전문가와 협의해 비전 있는 '명품 학교'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어떤 후보는 서울교육청이나 교육과학기술부 등에서 전문직으로 일한 경험을 내세우며 행정력을 뽐냈고, 같은 학교에 응모한 다른 지망자는 한눈 팔지 않고 20여년간 '○○부장'을 맡아 학생 진학·진로 지도에만 매진한 경험을 내세웠다.
연구팀을 만들어 교과서나 관련 서적을 집필했거나, 관련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각종 수상 실적을 안겨준 점을 내세우는 후보도 있었다.
반면 일부는 지원한 학교에 대한 현황이나 장·단점 등의 진단은 물론 해당 학교의 교장이 되려는 동기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해 공모제의 취지를 무색케 하기도 했다.
교장 후보들의 본인 홍보는 비단 면접심사장에서 뿐만은 아니었다.
서류 심사를 위해 제출한 자기소개서, 학교경영계획서 등은 온갖 수상 실적과 대외 활동 등에 대한 입증 자료까지 꼼꼼하게 첨부돼 많게는 100여쪽에 달해 대학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수험생의 포트폴리오를 연상하게 했다.
"내가 이 학교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하려 평생 쌓아온 `스펙'을 유난히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계고에 지원한 현직 교감은 "중학교에서 근무하다 대학 전공에 맞춰 전문계고 교사로 발령나자 ○○기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며 지망한 고교의 취업·진학률 현황과 산업체의 인력 수요 동향까지 분석한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이 학교의 특성화를 위해 학교명 변경과 학과 개편 방향, 산업체 연계 교육과정 운영 계획까지 제시했다.
또 다른 전문계고 교장 후보는 친분이 있는 업계 지인들의 연락처를 나열하고 졸업생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 인문계고 교장 지원자는 교육 당국으로부터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받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다른 후보는 영어, 수학 과목은 '상, 중상, 중하, 하'로 세분화된 4단계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또 한 지망자는 '연중무휴 방과후 학교(always open school)'를 운영해 주요 과목은 물론 논술·토론, 예체능, 토익, 한자, 제2외국어 등 특기적성 교육과 '스펙 쌓기 비법'도 가르치겠다고 제안했다.
블록타임제(한 과목을 90~100분간 집중 교육), 무학년제(학년과 무관하게 능력에 따른 교육과정 운영), 이중언어 수업(원어민 교사가 참가하는 팀 티칭), 독서인증제 등도 '단골 메뉴'에 속했다.
한 외부 심사위원은 "이 제도만 정착해도 학교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