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등학교에서 졸업생 대표 연설자(valedictorian)가 된다는 것은 최고의 영예였다.
전체 졸업생을 대표해 졸업식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주어질 뿐 아니라, 명문대학 입학의 우선권을 갖는 전통도 있었다.
그래서 각 고교들은 매년 졸업생 대표가 누가 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가장 학업성적이 우수할 뿐 아니라 타의 모범이 되는 수석졸업생이 대표 연설자로 선정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 영광의 자리가 급속히 퇴색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7일 보도했다.
평균 A플러스를 받은 학생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이들 가운데 특정인 한 명에게 이 명예를 주는 데 대해 학교 측이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뉴욕 롱아일랜드의 제리코 고교는 28일 졸업식에서 7명의 공동대표가 각자 30초씩 간단한 인사말을 하도록 결정했다.
휴스턴의 스트랫포드 고교에서는 졸업생의 6.5%에 달하는 30명이 졸업생 대표로 선정됐다.
또 뉴저지 체리힐 이스트 고교는 9명의 졸업생 대표들이 추첨을 통해 한 명의 연설자를 선정했으며, 뉴욕시 북부 해리슨 고교에서는 221명의 졸업생 가운데 13명이 최우수 졸업생으로 선정됐다.
고교 교장들은 복수의 대표제는 학생들간 경쟁과 부담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1등과 5등이 2학년때 과학 과목의 미세한 성적차 하나 때문에 발생할 정도로 학생들간 격차가 좁혀져 있기 때문에 공동대표제는 학생들에게 공평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과 학부모들은 학교 측이 이른바 명문대 입학의 기회를 우수 학생들이 더 많이 공유하도록 하기 위해 학업성적을 인플레 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퍼먼대학의 크리스 힐리 교수는 "이는 심각한 명예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했고, 하버드대 입학관리실장인 윌리엄 피츠시몬스는 "100명 이상의 최우수 졸업생을 선정한 학교들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면서 "솔직히 말해서 이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대학 입학과정에서 졸업생 대표가 갖는 차별성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고교 교장들 조차도 복수의 수석졸업생이 과거와 같은 무게감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체리힐 이스트고교의 존 오브리자 교장은 "500명중의 한명이라면 특별한 상징성이 있지만, 500명중 9명, 10명, 30명은 희소성을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