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은 나라가 어려울 때면 홀연히 일어나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를 지키던 선열의 얼이 고을마다 스며있는 고장이다. 만해 한용운 역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위대한 독립운동가요, 시인이요, 불교를 혁신한 승려요, 학자였다. 홍성에 서려있는 만해 한용운의 숨결을 따라간다.
충남 홍성은 예로부터 충절의 고향이라 한다. 고려말의 명장으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청렴과 충절의 상징이 된 최영 장군과 단종에 대한 충절로 사육신의 지조와 절개를 보여준 매죽헌 성삼문이 홍성군 홍북면 출신이다. 한용운의 생가와 가까운 갈산면 행산리에서 출생하여 우리 나라 최초로 노예를 해방하고 항일 투쟁에 참여하여 청산리대첩을 이끈 백야 김좌진 장군이 또한 홍성 출신이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일본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의병의 기개가 살아 숨 쉬는 곳이 바로 홍성이니 충절의 고향이라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싶다.
충절의 고장 홍성, 그리고 성곡리
홍성 나들목을 빠져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갈산면소재지가 나오는데 한용운 시인의 생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난 좁은 도로인 2번 군도를 따라가야 한다. 도로 입구에는 한용운 생가와 김좌진 생가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한용운 생가는 이곳에서 승용차로 20분 정도를 더 가야하는데 좌우로 펼쳐지는 포근한 산세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늦여름의 풍경이 익어 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한용운의 생가가 있는 성곡리는 인적이 드문 다소 외진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이곳을 찾아오던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생기기 훨씬 전이었으니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안내판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같은 길을 맴돌다 한밤중에야 비로소 생가를 찾았는데, 인적 없는 산골에 던져진 일행은 급한 데로 생가 앞마당에 텐트를 쳐 잠자리를 만들고, 생가의 우물을 길어 목욕을 하고 밥도 지어먹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참 많이 변했다. 일단 생가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어려움이 없고, 공원처럼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여 시인의 생가가 외롭지만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홍성군은 한용운이 태어난 성곡리 일대를 성역화 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넓은 주차장과 연못이 갖추어진 공원 입구에는 만해체험관이 보이고, 그 안쪽으로 시인의 생가와 사당인 만해사가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의 호위를 받으며 자리 잡은 생가에서 시인의 굳은 지조와 절개가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싸리나무로 곱게 울타리를 조성한 것이며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는 배롱나무의 빛깔 고운 꽃송이가 시인의 옥같이 맑은 심성과 고향마을의 포근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앞마당에 있는 우물을 들여다본다. 십여 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처럼 우물 옆에 놓여있는 두레박으로 힘껏 물을 길어 올려본다. 아직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물이 두레박에 달려 올라온다.
한용운은 3․1운동 이후 홀연히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가 불과 3개월 만에 88편의 시를 들고 나타난다. 그리고 시집 『임의 침묵』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이고 전통적인 시의 세계를 이룩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다른 시인들처럼 기교를 부리지도 않았으며 시어의 조탁에 연연하지 않고, 일상의 언어를 가장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모든 작품에 경어체를 사용함으로써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했음에도 섬세하고 여성적인 어조를 느끼게 하는 특징이 있다.
한용운의 시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대상이 있으며, 그의 시에서 시적 자아는 항상 그 대상을 위해 존재한다. 한용운의 시에 등장하는 대상은 ‘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작품에서는 ‘당신’, ‘행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용운의 시에 등장하는 ‘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용운의 삶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용운의 ‘임’은 부처일 수도 있고, 조국일 수도 있고, 세속의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인간이 추구해야할 영원한 진리일 수도 있다. 승려의 ‘임’이 부처라면, 독립운동가의 ‘임’이 조국이듯이 한용운의 삶이 다양한 만큼 그의 ‘임’도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민족혼의 성지를 꿈꾸며
홍성군에서는 한용운의 생가와 만해사가 있는 성곡리 일대를 민족혼이 타오르는 성지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이곳에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에 활동한 민족 시인 20명을 선정하여 민족시비공원을 조성했다. 생가 옆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조성된 민족시비공원에는 한용운의 『복종』,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이상화의 『가장 비옥한 기욕』, 정지용의 『고향』 등을 유명한 서예가들의 글씨로 화강암과 오석에 새겨 놓아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2007년 10월에 개관한 만해체험관은 한용운 시인의 유품과 작품을 전시한 전시실과 시청각 자료실, 문화 체험실 등이 있어 청소년들에게 역사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 문학답사를 위한 여행 코스홍성 도착 ⇒ 한용운 생가 ⇒ 한용운 시비(나룻배와 행인 / 알 수 없어요) ⇒ 만해사 ⇒ 민족시비공원 ⇒ 만해체험관 ⇒ 한용운대선사상 ⇒ 홍성 출발
♤ 가는 길-고속버스(서울-홍성)=매일 8회 운행(요금 8,700원) 소요시간 약 2시간 소요.
-기차(서울 용산-홍성)=매일 17회 운행(무궁화호 요금 성인 9,200원). 소요시간 2시간. (홍성-성곡리)시내버스 이용
-승용차(서울-홍성)=서해안고속도로 이용 홍성 나들목 29번 국도로 진입.
♤ 문의홍성군청 문화관광과=(041)630-1223
한용운선생생가지=(041)642-6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