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주신 만 원짜리 돈을 만지작거리며 선생님께 다가섭니다.
“선생님, 날갈이 해도 돼요?”
“시간 없다. 그냥 신어라.”
나는 집에서 가져온 스케이트를 든 채 쭈뼛거립니다. 날갈이를 해야 잘 나가는데 그냥 신으라니 짜증이 납니다.
긴 파마머리를 뒤로 묶은 선생님께서는 친구들이 스케이트 신는 걸 도와줍니다.
그냥 내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 위에 서니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미끄러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전모 타고 갈까?”
“동민아, 그거 재밌겠는데.”
준혁이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세워 흔들더니 안전모를 벗습니다. 나를 따라 안전모를 엉덩이에 깔고 앉습니다. 쭉 미끄러져 나갑니다. 빙글 돌기도 하고 기우뚱하며 아이들과 부딪히려고도 합니다. 스케이트 타는 것과는 색다른 아슬아슬한 맛이 있지요.
선생님께서 호루라기를 불어 우리를 부릅니다. 준혁이는 재빨리 안전모를 머리에 쓰더니 스케이트를 타고 갑니다. 나는 안전모를 깔고 앉아 두 발로 중심을 잡고 선생님 앞까지 미끄러져 갑니다.
“동민아, 너 지금…….”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듯 말을 잊지 못합니다.
“기분 짱이예요!”
“뭐?”
이상하게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그러고는 아직도 내가 깔고 앉은 안전모를 곁눈질합니다. 그동안 선생님이 말없이 뭔가 유심히 볼 때는 날벼락이 떨어지곤 했었지요. 나는 얼른 안전모를 들고 일어섭니다. 선생님께 더 대꾸는 못하고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입니다.
스케이트나 안전모나 타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규칙은 다시 정하면 되는 거고요. 꼭 안전모를 쓰라고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왜 내가 잘못한 건가요?
나는 준혁이와 가끔 발차기 놀이를 즐깁니다. 마주보고 한 걸음 정도 떨어져서 상대편 다리를 얼른 차고 피하거나 발바닥을 맞대서 공격을 막는 놀이지요.
스케이트 강습에서 돌아온 다음 날 2교시 뒤 쉬는 시간입니다. 선생님이 교실을 비운 틈에 내가 준혁이에게 눈짓을 보내며, 교실 뒤로 갑니다. 준혁이가 얼른 따라옵니다. 내가 창 쪽을 바라보고 자세를 잡자, 준혁이는 나와 마주보고 섭니다.
“휙. 차악.”
“파박. 척.”
발바닥과 발바닥이 팍팍 맞부딪히는 게 마치 장단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다리 공격을 시도합니다.
“휙, 어엇.”
준혁이가 잽싸게 피하는 바람에 그만 내가 헛발질을 합니다. 벗겨진 내 실내화가 붕 뜹니다. 이런! 공교롭게도 열린 창문 밖으로 날아갑니다. 창가로 달려가 고개를 창문 사이로 쭈욱 내밀어 봅니다.
“어떻게 하지? 실내화가 …….”
장식 동그라미가 나를 곤란하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우리 학교의 건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이 동그라미입니다. 창문 네 개를 에워싼 커다란 장식 동그라미가 2층 교실마다 두 개씩 있어요. 이 동그라미는 벽돌 하나만큼 벽에서 튀어나와 있지요. 하필 여기에 실내화가 딱 걸릴 게 뭐지요? 준혁이도 창까지 와서 내 실내화를 내려다봅니다.
“비로 걸어 올리자.”
준혁이가 청소함에서 비를 꺼내옵니다. 거꾸로 잡은 비를 쭉 내밀어 보지만 실내화에 닿지 않습니다.
“창문을 타고 내려가 볼까?”
내 말에 준혁이가 깜짝 놀라 말립니다.
“안돼. 큰일 나.”
선생님께서 커다란 난화분에 꽂혀 있던 지지대를 뽑아 둔 것이 생각납니다. 그걸로 칼싸움하다가 걸린 적도 있습니다.
무슨 구경났다고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그들을 헤치며 교실 앞으로 간 나는 모서리 구석에 세워져 있는 지지대 하나를 들고 옵니다. 왼손은 창틀을 잡고 배를 걸친 채 허리를 내밀며 오른손으로 한 쪽 끝을 잡은 지지대를 뻗칩니다. 좀 어질어질 합니다. 그 끝이 실내화에 닿을락 말락 합니다.
“끌어 올리려 하지 말고 아래로 떨어뜨려.”
옆에서 준혁이가 못 거들어 안달입니다.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내미는 순간 누군가 내 뒷덜미를 잡아당깁니다.
“뭐야? 어떤 놈이야?”
나는 잡힌 목을 흔들며, 소리를 꽥 지릅니다.
“나다.”
선생님의 낮고 힘을 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엇, 선생니~임!”
놀란 내가 고개를 휙 돌리는 바람에 잡혔던 목덜미가 선생님의 손아귀에서 풀렸지만 얼얼합니다. “뭐하는 거야, 지금?”
화가 잔뜩 난 목소리입니다.
“실내화가 저기…….”
고개를 빼서 밖을 보고 난 선생님은 내 어깨 양쪽을 꽉 잡습니다.
“이런 위험한 짓을 또…….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면 실내화도 못 신어.”
“안 위험한데…….”
어깨를 잡은 손을 두어 차례 흔들다 놓은 선생님께선 내 눈을 똑바로 쏘아봅니다.
나는 목을 움츠리며 또 뒤통수를 긁습니다.
선생님은 참 이상합니다. 내가 몸을 창밖으로 내민다고 떨어지는 건가요? 나는 나대로 조심한다구요. 괜시리 안전모 탈 때처럼 걱정만 많아서 꾸중합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대체 왜 내가 잘못한 건가요?
재량 휴업일과 토요 휴업일이 이어져 3일 내리 쉰 뒤에 등교한 날입니다. 교실에 들어서니 페인트 냄새가 가득합니다. 맨 먼저 와서 교실에 첫발을 딛는 순간에 나는 내가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요. 온 벽이 밝은 회색으로 깨끗이 칠해져 있어 낯선 느낌이 들었거든요. 다시 나갔다가 3학년 1반 학급 팻말을 확인하고 들어옵니다.
그때 교실에 들어 온 준혁이도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재미있는 일이 있을만하면 때맞춰 나타나는 준혁이가 맘에 듭니다.
“벽에 축구공 때리기 할까?”
내 제안에 준혁이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앞뒤로 흔듭니다.
“오예. 좋은 생각이얌!”
나는 축구공을 재빨리 꺼내옵니다. 칠판 아래쪽 깨끗한 벽이 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앞에는 책상도 없으니 공차기는 제격입니다.
“팍!”
“퍽! 팍, 퍽!”
나는 준혁이와 죽이 잘 맞아 번갈아 공을 차니 흥이 절로 납니다. 축구공도 재미있는지 퍽팍 소리를 내며 벽에 무늬를 만들어 놓습니다. 이건 상상도 못한 재미입니다.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란 생각이 떠올라 혼자 씩 웃습니다.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가방을 던진 채 달려듭니다. 축구공이 네 개로 늘어납니다. 열 명 남짓 몰려들어 겨루듯이 하는 공차기는 더욱 신바람이 납니다.
“좀 더 빨리!”
“팍, 팍, 파팍!”
온통 벽엔 축구공 무늬가 빼곡합니다. 공이 여러 개니 여기저기서 날아와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우와! 넘 재밌다. 난 역시 천재야.’
그 순간 내가 힘껏 찬 공이 칠판을 맞고 뒤쪽으로 튕깁니다. 공에 맞았는지 ‘아야.’ 하는 비명 소리도 들립니다. 그 북새통에 자리에 앉아 자습하던 여자 아이들이 왁자지껄 일어섭니다. 하지만 그런데 신경 쓸 내가 아니지요.
누가 뒤에서 던진 공이 데구르르 공이 굴러가는데 아무도 안 차네요.
“뭐 해. 공 굴러 가잖아.”
내가 잡으려는 순간에 불쑥 나타난 발이 그 공을 밟아 세웁니다. 빨강 꽃장식이 두 개 달린 은색 슬리퍼가 나를 얼어붙게 합니다.
“엉? 선생니~임.”
힐끗 보니 준혁이도 어느 새 한쪽으로 비켜서서 슬그머니 눈꺼플을 내립니다. 공을 찼던 친구들이 고개를 숙이고 교실 한쪽에 몰려 서 있습니다. 선생님은 축구공 무늬가 어지럽게 찍힌 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쉽니다. 그리곤 말없이 우리들을 둘러봅니다. 이럴 때가 나는 제일 힘듭니다. 차라리 한 대 맞았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습니다.
“매를 맞을게요.”
“…….”
이렇게 나서는 내가 한심한지 선생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토끼뜀 10바퀴…….”
준혁이 말에 또 한번 한숨을 쉬며 창 밖으로 눈을 돌립니다.
“한 달 간 청소할게요.”
누군가 한 말에 나는 깜짝 놀랐지만 선생님은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다시 보니 벽에 그려진 축구공 자국이 지저분하네요. 페인트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베란다에서 동생하고 장난치며 찍은 신발자국을 닦던 엄마 모습이 떠오릅니다. 페인트 위에 코팅하지 않았으면 닦아지지도 않았을 거라며 잔소리를 하였지요. 나는 슬그머니 뒤에 있는 청소함으로 갑니다. 청소할 때 쓰던 세제와 양동이, 걸레를 꺼내옵니다. 엄마가 한 것처럼 세제를 벽에 뿌리고 걸레로 빡빡 문질러 닦습니다. 축구공 무늬가 조금씩 지워집니다.
준혁이가 슬금슬금 다가와 같이 닦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슬그머니 끼어듭니다. 세제를 묻히지 않은 걸레를 양동이에 떠 온 물에 빨아 거듭 벽을 닦습니다.
“쓱싹쓱싹.”
벽을 닦는 소리만 납니다. 우리가 그렇게 조용히 청소한 적은 여태 없습니다. 벽이 깨끗해질 즈음에 땀으로 속옷이 젖고 튕긴 물에 겉옷이 젖어 있습니다. 나는 재빨리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의 물기도 닦습니다.
어느 새 1교시가 끝나가고, 공차기를 하지 않았던 친구들도 자기 주변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뒷정리를 마치고 선생님을 보니 처음 그대로 서 계시네요. 하지만 얼굴 표정이 뭔가 달라져 있습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나는 선생님께 한 발 다가서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합니다.
“뭐가?”
선생님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를 긴장시킵니다.
“교실에서 벽 축구한 거요.”
“왜?”
짧고 강하게 묻는 말이 내 가슴에 파고듭니다.
“축구는 운동장에서 하는 걸 알면서도 안 지켰어요. 깨끗한 벽도 더렵혔어요.”
“그래?” “소리도 지르고 뛰었어요.”
내가 잘못한 것이 왜 이렇게 술술 나오지요? 이제는 지난 잘못까지 떠오릅니다. 안전모 사건, 실내화 사건도 생각나며 잘못을 고백하고 싶어집니다. 이상합니다. 난 분명히 그 때는 잘못한 게 없었는데요. 이걸 다 용서 빌 자리는 아닌 것 같아 꾹 참고 있는데, 그럴수록 고개가 점점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축구가 그렇게 하고 싶었니?”
선생님 목소리가 뜻밖에 다정하여 움찔 놀랍니다.
“예!!”
우리는 잘못한 것도 잊고 큰소리로 대답합니다.
“그럼 축구를 해야지.”
“지금요?”
“그래.”
이게 왠일인가요? 우리 모두 어리둥절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 같아 선생님의 눈치를 살핍니다. 체육시간에도 운동장에 나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선생님이 수학시간에 축구라니요. 그런데 정말 선생님이 축구공을 들고 교실을 나섭니다. 그제야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따라 나갑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신이 나서 운동장을 누빕니다. 선생님도 처음으로 우리들과 함께 운동장을 뛰며 심판을 봐 줍니다. 아까 벽 축구로 몸을 풀어서 그런지 내가 한 골을 넣기까지 합니다.
그날 이 후로 신나게 운동장을 누비는 시간을 선생님은 가끔 주셨지요. 다른 반 친구들은 그걸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나도 선생님 등 뒤에서 뭐라 뭐라 하는 것보다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며 웃는 일이 많아졌다고 준혁이가 그러네요.
비밀인데, 사실 나에겐 입이 두 개 있어요. 하나는 여느 사람과 같이 얼굴에 달린 입이고, 다른 하나는 뒷덜미 바로 위의 뒤통수 속에 숨겨져 있어요. 머리 속의 입이 나도 모르게 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투덜대는 소리로 들리지요. 내 손이 뒤통수를 긁적일 때가 바로 그 순간이랍니다.
어쩐 일인지 요즘 빨래집게를 짚어놓은 듯 그 입이 꾹 다물려 있어요.
‘왜 내가 잘못한 건가요?’는 이젠 어디에 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