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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곤경에 처한 영국의 다문화 정책

"정책실패로 극단적 무슬림 양산" 지적
보수당 연립정부, 이주민 정책 변화 조짐

지난 1948년 6월22일 런던 근교의 한 항구에 화물선 '엠파이어 월드러시'를 타고 온 자메이카인 415명이 내렸다.

영국 내 유색 인종의 첫 대규모 이주로 기록된 이 때 이후 영국에는 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주민들이 밀려들었고 이들의 통합은 영국 사회의 커다란 숙제가 돼왔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최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이주민 통합과 관련해 직설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이 문제가 다시 뜨거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 뿌리깊은 이주민 차별 = 캐머런 총리 발언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소극적 관용을 원칙으로 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실패했고 이로 인해 이슬람 극단주의가 뿌리를 내렸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는 영국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무슬림 단체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삭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보수당 내 뿌리깊은 정서가 깔려있는 것이지만 연립정부 내 소수파인 자유민주당과 일부 보수당 의원들 사이에서 조차도 만만치 않은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지난해 런던에서 열린 무슬림 국제회의에 참석하려다가 당내 반발로 무산된 사이에다 와르시 보수당 의장은 이슬람 혐오증이 영국 중산층까지 물들이기 시작했다면서 이로 인해 폭력이 양산될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법무, 내무장관을 지낸 야당인 노동당 중진 잭 스트로 의원이 영국 내 파키스탄계 젊은이들이 어린 백인 소녀들을 성적인 노리개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2~18세 여성들을 유인해 술과 약물을 먹인 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2명의 파키스탄계 남성이 최근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과 관련해 이같은 인종차별적 시각을 드러냈다.

지난 2005년 런던 도심에서 52명의 목숨을 앗아간 7.7 테러 사건이 이주민 2세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밝혀지면서 영국 사회는 이주민들의 정착 문제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당시 문제가 확산되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영국의 관용 정신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이주 노동력은 산업발전의 근간 = 영국으로의 이주 노동의 역사는 매우 뿌리가 깊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던 영국에서는 이미 노동조합단체들이 1890년대에 이주민을 통제할 것을 결의했을 정도로 이주민에 대한 배타성을 지니고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폴란드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됐고, 전쟁이 끝난 뒤 1950년까지 아일랜드에서만 10만명 가량이 옮겨왔다.

또한 수용소에 있던 10만명에 가까운 전쟁 난민들도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산업의 근간이 됐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 시기를 지낸 인도, 파키스탄, 케냐, 자메이카 등의 유색 이주 노동자가 본격 유입되기 시작했다.

1948년 첫 자메이카인 대거 이주 이래 1958년 12만5000명, 1959년 2만명, 1960년 5만6000명의 흑인이 카리브 지역으로부터 옮겨왔다.

이들은 주로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환경에 처한 업종으로 영국인들이 기피하는 용광로, 대도시 철도.버스 등 운수업, 섬유산업, 간호사, 환경미화원 등으로 종사했다.

최근 영국 입국 통계에 따르면 비자가 필요한 국가 가운데 입국자는 인도가 90만8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파키스탄의 경우 4만3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국 땅에서 부당 대우와 눈에 보이지 않는 멸시를 받아온 이들 이주 노동자들은 영국 내에서 공동체를 형성, 현재 이슬람교도만 200만명에 달하고 사원이 1000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힌두교도가 56만명, 시크교도가 34만명에 이른다.

◇ 이주민 문화 용인…진정한 융화는 요원 = 프랑스 정부가 이주민에 대해 동화 정책을 펴는 것과는 달리 영국은 이주민의 문화를 포용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다.

크고 작은 인종 폭동 이후 정부가 이민자 사회와 백인 주류 사회와의 교류를 지원하고 공동체 교육기관 설립을 돕는 등의 방법으로 이주민 공동체가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도록 유도해 왔다.

이주민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대표권 등을 인정해주는 식이다.

실제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반드도 유대인 이민자 2세일 정도로 이미 유대인의 경우 영국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등 예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 출신의 경우 이민 1세대는 그런대로 큰 갈등을 표출하지 않았지만 2,3세대들은 뿌리깊은 차별에 적응하지 못해 사회 갈등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5년 발생한 런던 도심 7.7 테러는 영국 시민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되고 차별받은 이민자 2세가 저지른 것으로 나타나 큰 충격을 줬다.

지난해 12월 스웨덴에서 발생한 자폭 테러 사건 용의자도 영국에서 태어나서 자라 고등교육을 받은 이민 2세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민 1세대는 본인의 선택에 따른 책임감으로 부당대우, 멸시 등을 참아내지만 2.3세대는 이에 대해 분노하고 테러 조직은 이들을 집중적인 포섭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 통합을 위한 영국 정부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영국인들은 미국, 캐나다, 유럽 등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보수당 이민정책 강경 전환 신호? = 보수당 정부는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이민정책을 엄격히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캐머런 총리의 최근 발언에 대해서는 단순히 보수당 내 우파를 달래기 위한 '립서비스'라는 시각과 보수당이 이주민 정책에서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싱크탱크 '센트리'의 하라스 라피크는 "노동당 정부 아래에서는 비폭력 극단주의자들과 연계를 맺고 그들을 지원하면 결국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를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보수당 정부는 이러한 접근법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영국 정치 센터 스티븐 필딩 소장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총리가 연립정부 내에서 소수파인 자유민주당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되는데도 (우파적인) 발언을 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면서 보수당 내 우파들을 의식한 것이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총리실은 이에 대해 캐머런 총리의 발언은 단순히 큰 방향만을 제시한 것이고 세부적인 것은 아직 연구단계라면서 말을 아껴 향후 어떠한 이주민 정책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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