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6 (토)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선생이여, 줄탁을 해라

“알을 뚫고 어린 생명이 나오도록 선생은 줄탁을 하면 된다. 연약한 주둥이로 껍질 깨는 일이 가엾다고 새끼의 노력을 늦추면 부화는 실패한다. 진정 아이들을 위한다면 오감으로 뜨겁게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치열하게 세상을 관통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끌어안는 눈과 가슴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게 선생이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도 있다. 간혹 식당 같은 데서 학부모인 듯한 분들이, “야, 선생은 사람 아냐? 선생도 다 똑같은 겨!”라면서 선생을 속물의 계보에 포함시키는 소리를 듣는다. 선생이 도대체 어떻게들 살기에 그런 존경과 비하, 엇갈린 평가를 받는가.

정말 비도덕적인 함량 미달의 선생이 있다면 순도를 높이는 차원에서라도 과감히 처방을 내려야 한다. 물론 불량 교사를 계량화해 파악한다는 건 무리가 있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솎아내야 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둠벙을 흐리게 한다’는 속담처럼 일부 교사일지라도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부끄럽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학생을 위해 교무실의 희미한 형광등 밑에서 아이와 상담하는 교사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낡은 교무수첩엔 학생의 생일에서부터 장래희망, 성적과 고민에 대한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어 자신의 일보다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묵묵히 사랑을 경작하며 사는 교사도 많다는 것이다.

성적이 부진한 학생이 있으면 모아놓고 늦은 시간까지 아무런 보수도 없이 가르침을 펴는 진정한 교사, 학생이 학교를 포기하려고 할 때 집에까지 찾아가 설득하고 가출하면 가출한 곳까지 찾아가 아이를 찾아오는 교사도 많다. 적어도 나는 선생이라는 집단을 세상 어느 집단보다 덜 타락한 집단, 아직은 건강한 집단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하여, 기왕 선생을 할 바에는 학생 때문에 살고 학생을 위해 죽는, 진짜 선생을 해야 이름에 값한다고 믿는다. 선생은 험난한 시대의 마지막 권위이어야 하고 진취적 보수이어야 한다. 학생들을 품어줄 때 어미 닭처럼 품어주고 질책할 때는 매섭게 훈계해 바로 잡아주는 선생! 학생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기로 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십 년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교육하는 선생은 지혜로운 선생이 아니다. 아이들에겐 친구 같은 선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방목하듯이 놔먹이는 선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족집게 교사도, 빗나간 편의와 자율을 방조하는 선생도 아니다. 아이들에겐 존재의 의미와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가슴 짜르르하게 자아를 일깨워주는, 내공 깊음이 필요할 뿐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견이 있는 것처럼 교육에 있어서도 어떤 교육과정으로 어떠한 인간형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시대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대부분 ‘휴머니즘적 인간’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에는 일치할 것이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가르쳐야 한다.

감성과 지성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중요한 시기에 학문을 탐구하는 열정과 뜨거운 감동을 알게 해야 한다. 알을 뚫고 어린 생명이 나오도록 선생은 줄탁을 하면 되는 것이다. 연약한 주둥이로 껍질 깨는 일이 가엾다 해서 새끼의 노력을 늦추게 하면 부화는 실패한다. 진정 아이들을 위한다면 오감으로 뜨겁게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치열하게 세상을 관통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끌어안는 눈과 가슴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게 선생이다.

더러 아이들이 주장하는 모든 걸 존중해주어야 인권을 존중해 주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그것은 자칫 자율이 아니라 방조이다. 교사가 ‘피교육자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훗날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 역정을 돌아보며 아름답게 술회하도록 해야 한다. 선생이 나에게 현실을 바라보는 힘을 주었다고. 정말 치열하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달라졌다고.

교사란 이처럼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는 어쩌면 농부이다. 밋밋한 막대기로 화려한 장미꽃을 만드는 마술사이기도 하며,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보물지도 한 장씩 그려주는 희망설계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사는 세상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예언직인 것이다. 이제 푸른 꿈을 꾸는 선생들이여, 개들에게도 먹히는 아름다운 똥, 맛있게 싸면 어떨까!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