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은 수려한 월출산과 맑은 탐진강, 육지 깊숙이 밀려드는 강진만의 바닷물이 만들어 낸 천혜의 자연경관과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인구 4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삶의 여유와 넉넉한 인심이 넘쳐난다. 그렇기에 김영랑과 같은 위대한 시인이 태어났으리라.
김영랑과 다산 정약용의 넋이 살아 숨 쉬는 강진으로 걸음을 옮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하늘 밑으로 산자락이 다투어 아름다움을 뽐낸다.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이 피로에 지친 몸을 추스르게 한다. 18번 국도를 타고 달리자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했다는 다산초당 안내판이 여행객의 발목을 잡는다. 아쉬운 마음에 만덕산 자락에 있는 다산초당과 다산유물전시관을 돌아보고 다시 강진읍을 향해 달려간다.
시가 피어오르는 장소, 영량의 사랑채
강진은 해남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18년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정약용이 안식처로 사용한 다산초당과 다산유물전시관을 비롯해 월출산 자락에 감길 듯 들어앉은 무위사와 월남사 터, 우리나라 최대의 강진 다원, 고려청자의 보고인 대구면의 청자 도요지 등 강진의 빛나는 문화유산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강진에 들어서면 ‘영랑’이라는 상호가 적힌 가게의 간판이나 도로 이정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김영랑은 강진의 대표적 자랑거리인 셈이다. 강진군청 옆에 있는 골목길로 들어서자 가지런히 쌓아 올린 돌담 하나가 고풍스런 모습을 드러낸다.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1번지. 일명 ‘탑골’이라고 불리는 이곳이 김영랑의 생가이다. 김영랑 생가는 다른 어느 시인의 생가보다도 복원과 조경,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생가 입구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새겨진 시비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그대로 올려 만든 시비는 초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김영랑이 태어났다는 안채가 모습을 드러내고 앞마당에는 돌로 예쁘게 쌓아 올린 우물이 보인다. 김영랑도 이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티 없이 맑은 우물물에 자신의 맑은 영혼을 담아 노래했을 것이다. 김영랑은 총 80여 편의 시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60여 편을 이곳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 이제 강진은 김영랑을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시문학사의 중심에 서 있다. 강진 속으로 영랑의 오월을 찾아 나선다.
사랑채는 김영랑을 위한 공간이며, 시의 공간이었다. 젊은 시절에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이제는 제법 커서 여행객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해 준다. 툇마루 옆에서 유자나무와 연못이 이 사랑채를 돋보이게 한다. 김영랑은 많은 시간을 이 사랑채에서 생활하며 작품을 썼다. 툇마루에 앉아 모란꽃도 바라보고, 뒷산 언덕과 감나무, 동백나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돌담도 바라보면서, 그는 우리말이 가진 아름다움을 마음껏 실험했을 것이다. 홍시로 익어가는 감나무의 붉은 감잎, 바람결에 장광(=장독대)으로 날아드는 감잎을 보며 놀란 듯이 쳐다보는 시인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사랑채 옆에는 1996년 6월, 한국문인협회에서 세운 문학 표징이 있다. 표징에는 “이곳은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여 ‘모란이 피기까지는’, ‘가늘한 내음’ 등 남도의 정서를 전통적 운율로 읊어 낸 주옥같은 서정시를 남김으로써 한국 시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영랑 김윤식 시인이 태어나 성장하고 그의 예술혼이 감돌았던 유서 깊은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김영랑 생가가 지닌 문학적 가치와 의의를 되새기게 한다.
북도에는 소월, 남도에는 영랑
흔히 한국 순수서정시를 거론할 때면 ‘약산의 진달래꽃’을 사랑한 시인 김소월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한국적인 정서와 운율은 그를 1920년대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930년 박용철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창간하며 언어의 아름다운 조탁과 감미로운 음악성을 표현한 김영랑의 등장은 한국 시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드는 사건이었다. 북도에 소월이 있다면, 남도에는 영랑이 있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두 위대한 시인의 이름은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긋기에 충분했다.
◆ ‘영랑 김윤식 상’ 있는 영랑공원 = 장흥에서 강진으로 들어오는 초입에 있는 영랑공원에는 ‘영랑 김윤식 상’이라는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상 아랫부분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일부가 기록되어 있다. 마치 강진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의젓함을 엿볼 수 있다. 남도 문학의 꽃을 피운 김영랑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오가는 수많은 차량의 배기가스를 마시며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 처음 세워진 시비, 강진군립도서관 = 강진군립도서관 앞 어린이 놀이터에는 두 개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하나는 김영랑의 시비 ‘모란이 피기까지는’이고, 다른 하나는 김영랑의 문학 동반자이며 ‘시문학’ 동인으로 한국의 순수서정시를 이끌었던 김현구의 시비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이다.
김영랑의 시비는 1975년 7월에 세워졌는데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것이 아니라 멋스러움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콘크리트 기둥에 쇠파이프와 쇠사슬로 둘러싸인 모습이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이왕이면 미적인 가치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았을까.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김영랑의 대표작도 많은데 시비는 오직 ‘모란이 피기까지는’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작품의 문학비가 이 강진 땅에 세워질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 영랑과 현구의 흔적을 찾아가는 문학관 = 영랑 현구 문학관은 김영랑의 생가에서 약 30m 거리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김영랑과 그의 사촌인 김현구 시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문학관은 원래 강진 지역 출신의 예술인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2003년 4월에 개관한 강진향토문화관이었는데, 시문학 동인으로 문학의 영원한 동반자이기도 한 김영랑과 김현구 시인의 문학적 삶을 조명하기 위해 새로운 이름으로 재개관하였다. 280여 평 부지에 지상 2층, 연면적 130평 규모로 김영랑과 김현구 등 지역 출신 시인들의 생전 사진과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의 시 감상실에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오매 단풍 들것네’, ‘동백잎이 빛나는 마음’, ‘독을 차고’ 등 김영랑의 대표작을 서예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모란꽃으로 봄을 알리는 영랑문학제
2006년부터 시작된 영랑문학제는 한국 순수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영랑 시인의 민족 사상과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문학 축전이다. 영랑문학제는 모란꽃이 활짝 피는 4월 말에 김영랑의 생가 일대에서 개최하여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로도 많은 관심을 모은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시화전과 영랑백일장, 각계 문화 예술인이 주최가 된 영랑 시 문학의 밤, 시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해 보는 문학 심포지엄과 영랑 시문학상 시상식 등이 함께 열려 다채로운 문학 축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행사를 공동 주관하고 있는 영랑기념사업회와 ‘시와 시학사’는 영랑문학제가 강진 청자문화제와 함께 문화 예술의 고장 강진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축제로, 김영랑 시인에 대한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그 사상과 시 정신을 살려, 강진의 문화 활성화와 젊은 문학인을 발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영랑은 강진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남도의 자랑이요, 한국 문학의 자랑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김영랑의 시 한두 편은 외울 정도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시인이다. 강진 답사를 마치며 강진에서 추진하고 한국시문학파기념관이 빨리 건립되어 한국 문학사의 큰 획의 그은 김영랑의 문학이 새롭게 조명되기를 바라는 것이, 문학을 사랑하는 나만의 욕심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 문학답사를 위한 여행 코스
강진 도착 ⇒ 영랑 생가 ⇒ 영랑 현구 문학관 ⇒ 영랑공원 ⇒ 다산초당 ⇒ 강진다원 ⇒ 무위사 ⇒ 강진 출발
◈ 가는 길
- 고속버스(서울-강진) =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6회 운행. 소요시간 약 5시간. 요금 2만700원.
- 기차(서울-나주-강진) = (서울-나주) 매일 6회, 주말은 7회 운행. 소요시간 4시간 29분. 요금은 무궁화호 성인 2만 1600원). 나주에서 강진까지는 직행버스 이용.
- 승용차(서울-강진) = 서해안고속도로 이용 목포를 지나 2번 국도를 타고 강진 진입함.
◈ 문의
강진군청 문화관광팀 = 061-430-3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