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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삿갓 속에서 피어나는 풍자와 해학

⑨ 영월, 난고(蘭皐) 김병연 방랑의 시작과 끝


영월은 동강의 물결 속에 단종의 비극이 서려 있는 곳으로 단종을 추종하던 신하들의 충절이 느껴지는 고장이며, 김삿갓의 뛰어난 문장과 시가 살아 숨 쉬는 문향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발길이 머무는 영월을 찾아간다.

영월에 도착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군청 사거리에 있는 김삿갓 동상이다. 이제는 영월의 상징인 캐릭터로 태어났으니, 영월이 김삿갓의 고장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한다. 군청 사거리 공원에 있는 동상은 삿갓을 살짝 치켜들고 해맑은 웃음을 웃는 모습이 방랑 생활로 달관의 경지에 이른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불현듯 어린 시절에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방랑 시인 김삿갓’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해학과 풍자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호통치는 그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짓게 한다.

영월로 은둔한 김병연
해맑은 웃음을 짓는 동상에는 김삿갓이 영월과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가 간략하게 적혀 있어 김삿갓과 영월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남 김삿갓이 처음 영월에 도착해 산 곳은 영월읍 삼옥리라고 전해지는데 그곳에서는 그와 관련된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영월읍에서 만날 수 있는 김삿갓의 흔적은 읍내 영흥리에 있는 영월의 동헌인 관풍헌(觀風軒)이다.

김삿갓이 향시에 응시했던 관풍헌은 원래 지방 수령들이 공사를 처리하던 동헌 건물인데 화강석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3칸의 정사를 중심으로 좌우 양쪽에 각각 한 채씩 날개 모양으로 객사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관풍헌 앞에는 자규루라는 누각이 있는데 단종이 청령포에서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긴 후 자주 올라 ‘자규시(子規詩)’를 읊으며 설움을 달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죽장에 삿갓을 쓰다
영월읍 삼옥리에 거주하던 김삿갓은 20살이 되던 1826년 이 관풍헌에서 실시하는 향시에 응시하게 되는데, 시제로 제시된 것이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이었다. 즉, ‘홍경래의 난 때 목숨을 바쳐 싸운 가산군수 정공의 충절을 논하고, 어이없이 항복한 김익순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한탄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모르던 김삿갓은 예리한 문필로 탄핵 장원 급제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뒤늦게 어머니에게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김삿갓은 조상을 욕한 죄로 하늘을 보기가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세상을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된다. 결국 관풍헌은 김삿갓에게 조상을 욕되게 한 비운의 장소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내와 가족들을 이끌고 영월의 가장 외진 곳인 김삿갓면(2009년 명칭 변경) 와석리 어둔으로 이사를 해 세속과 등진 생활을 한다.

잠시 출세를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22살에 집을 떠나 전국을 떠도는 방랑 생활을 시작한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기 시작한 그는 이때부터 김병연이라는 본명보다는 김삿갓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을 곳을 없을 정도로 전국 각지를 누비며 속죄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김삿갓은 안동과 곡산 등에서 잠시 훈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의 방랑벽은 끝이 없었다. 권세 있는 집에 찾아가서 시 한 수를 지어주고 며칠씩 묶기도 하고, 문전 박대하는 집을 만나면 신랄한 풍자로 시를 지어 던져주기도 했다.

김삿갓 유적지로 가는 길
영월 읍내를 빠져나와 김삿갓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는 김삿갓면 와석리를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와석리는 영월읍에서 32㎞나 떨어져 있는 아주 외진 곳이다 보니 김삿갓의 묘소가 발견된 후에 비로소 도로가 포장되어 차가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남한강의 지류인 옥동천을 따라 자연이 빚어낸 비경에 감탄하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김삿갓 묘역을 알리는 안내판을 만난다.

유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이정표를 따라 산 속으로 약 5.8㎞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하는데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 길옆으로 물 맑은 계곡이 제법 눈길을 끄는데 이 계곡의 이름이 김삿갓 계곡이다.

원래는 와석리 계곡이었으나 묘소가 발견된 이후에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청정 수역을 자랑하는 김삿갓 계곡에서는 반딧불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신비감을 더해 준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길가에 정연하게 세워져 있는 김삿갓 시비들을 만나게 되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길을 따라 걸으며 시를 음미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높은 산 준령 속에 자리한 와석리는 산골의 작은 마을이었다.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이곳은 심산계곡이었으며 화전을 이루어 살던 마을로 행정의 손길조차 제대로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송이버섯이나 약초를 채취해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김삿갓이 왜 이곳에 숨어들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바람 따라 떠돌던 방랑의 끝, 김삿갓 묘역 =
단종의 비운을 간직한 영월은 한 시대의 비운을 삿갓에 담아 방랑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풍운아 난고 김병연의 넋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생을 김삿갓 연구에 헌신한 박영국 선생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김삿갓의 시와 일화를 모으고, 영월 어딘가에 묻혀 있을 그의 묘를 찾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마침내 영월에서도 가장 오지인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에서 김삿갓의 묘와 집터를 찾아내어 영월을 일약 김삿갓의 고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김삿갓의 묘역에는 시인의 시비와 문학관까지 건립이 되어 있고 해마다 ‘난고 김삿갓 문화큰잔치’가 열려 영월의 대표적인 행사가 되고 있다.

김삿갓의 묘소가 있는 와석리 노루목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와 경계가 되는 곳이다. 노루목은 산마루 정상에 있는 바위 두 개가 노루 뿔처럼 솟아 있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3도의 접경 지역인 이곳의 산맥 모양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김삿갓 묘역에는 그의 시비와 유적비, 일붕선사의 추모시비, 그리고 많은 장승과 솟대들이 세워져 있어 외로운 묘소만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묘소는 와석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노루목의 높은 언덕 위에 있다. 묘소 앞에는 넓은 자연석을 혼유석(魂游石)으로 삼았으며, 묘소 옆에는 ‘시선난고김삿갓지묘’라는 묘비가 선명하다.

김삿갓의 묘소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방랑 생활로 일생을 살다간 김삿갓이 숨을 거둔 곳은 정작 영월과 멀리 떨어져 있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이다. 그곳에 묻혀 있던 김삿갓의 시신은 부친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둘째 아들 김익균이 발견해 이곳 영월의 와석리 야산으로 이장을 하게 된다.

◈ 탈속의 세계가 된 마대산 = 김삿갓의 묘소가 있는 노루목 성황당 앞에서 서북쪽으로 마대산 자락을 약 2㎞ 남짓 오르면 김삿갓이 생활했다는 주거지가 나타난다. 와석리 어둔. 영월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라고 해야 할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마대산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과 그 옛날 김삿갓이 다녔을 오솔길이 여행객의 바쁜 발걸음을 붙잡는다. 어둔은 옛날에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며 살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다. 아마 김삿갓의 주거지도 그러한 곳 중의 하나였으리라. 이 주거지는 김삿갓이 관풍헌에서 치러진 향시 사건이 있은 직후 삼옥리에서 인적을 피해 숨어든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든 이곳이 지금은 묘소와 함께 김삿갓의 대표적인 유적지가 되어 있다. 날이 저물지 않았더라면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주거지로 오르는 오솔길만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전국의 행적 쫓은 난고 김삿갓 문학관 =
2003년 10월에 개관한 난고 김삿갓 문학관의 광장에는 멋스럽게 만들어진 시비들이 한껏 글 자랑을 한다. 종종 걸음으로 시비를 찾아 돌며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김삿갓의 시 속에 동화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관 앞 벽에는 김삿갓의 시가 벽화로 그려져 있어 어린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시의 원문과 이해하기 쉽게 우리말 풀이를 달아 놓은 시비 하나하나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묻어나 문학인으로서 고마움을 느껴본다. 광장에 있는 시를 감상하고 나서 문학관으로 들어가면 김삿갓의 친필 작품과 그의 행적들을 정리한 다양한 자료, 나무로 조각된 김삿갓 동상이 반갑게 맞이한다. 문학관에는 김삿갓 연구에 일생을 바친 정암 박영국 선생이 기증한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 김삿갓 문학의 새로운 조명, 문화큰잔치 = 김삿갓의 고장인 영월에서는 난고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 작품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매년 10월초에 김삿갓 묘역에서 ‘난고 김삿갓 문화큰잔치’를 개최하고 있다. 어린 시절을 영월에서 보내고 전국을 방랑하며 해학과 풍자의 시를 통해 민중의 삶을 대변하고자 했던 방랑 시인 김삿갓. 방랑의 끝에서 돌아와 영월의 산기슭에 잠들어 있는 김삿갓 묘역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함께 많은 문학인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영월은 ‘난고 김삿갓 문화큰잔치’를 통해 김삿갓의 문학적 의미를 되새기고, 대내외적으로 지역 문화를 활성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주요 행사로는 난고 김삿갓 심포지엄을 통한 학술행사, 문학상 시상식과 문학의 밤, 추모행사인 고유제와 추모굿, 각종 백일장과 휘호대회 등의 문화행사를 중심으로 실시하며,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과 장터 운영을 통한 영월 알리기 행사 등이 다채롭게 실시된다.

◈ 문학답사를 위한 여행 코스
영월 도착 ⇒ 청령포 ⇒ 장릉 ⇒ 관풍헌 ⇒ 김삿갓 계곡 ⇒ 김삿갓 묘소 ⇒ 김삿갓 주거지 ⇒ 김삿갓문학관 ⇒ 영월 출발

◈ 가는 길
- 고속버스(서울-영월) = 동서울터미널에서 매일 10회 운행. 요금 1만4400원.
소요시간 약 2시간
- 기차(서울-영월) = 청량리역에서 매일 5회(주말 6회 운행). 무궁화호 요금 1만1500원.
소요시간 약 3시간.
- 승용차(서울-영월) = 신갈분기점과 만종분기점을 지나 중앙고속도로 이용해 제천 IC 로 진입한 후 제천과 연당교차로를 지나 영월로 진입함.

◈ 문의 사항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 033) 370-2255
난고 김삿갓문학관 = 033) 375-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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