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 서울시교육청을 접수한 곽노현 교육감이 벼랑 끝에 섰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례 가운데서도 가장 질이 안 좋다는 ‘후보자 매수 및 이해유도’ 혐의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전망이다.
곽 교육감은 선거운동 당시부터 부패비리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선거 전날 방송에서는 “반부패 혁신 전문가의 길을 걸으려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더러운 곳 근처도 안 가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반(反)부패를 위해서는 윗물이 맑아야 하는데, 그 점에서 나는 누구보다 자유롭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28일 일요일 오후 기자들 앞에 서서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보도와 관련한 기본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박명기 교수가 자신의 경제적 형편과 사정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같은 미래를 꿈꾸며 교육운동의 길을 계속 걸어온 박 교수의 상황을 모른 척 할 수만은 없었다”며 대가성을 부인했다.
“이런 맥락에서 2억원의 돈을 지원했다. 드러나게 지원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기에 선거와는 전혀 무관한 저와 가장 친한 친구를 통해 전달했다. 그 친구도 저와 마찬가지로 정의와 원칙과 도덕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이기에 만약 이 돈에 문제가 있는 돈이라면 결단코 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곽 교육감은 급하게 작성하느라 2010년 지방선거를 2009년으로 틀리게 적은 원고를 4분간 읽은 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 한 채 회견장을 떠났다. 이른바 진보교육감이라는 이유로 표적수사를 받고 있다는 그의 결론을 기자들은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뜻으로 돈을 줬다는 그에게 네티즌들은 ‘기부 천사(?)’냐는 조롱을 보내는 상황이 됐다.
한국교총은 성명을 통해 “곽 교육감의 선의 주장이 법률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될 경우 차후 모든 선거에서 이러한 방식이 악용될 소지가 크며, 진실로 선의로 했다 하더라도 법은 ‘선의-악의’ 이전에 ‘합법-불법’을 가린다는 사실을 법학자인 교육감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라고 논평했다.
교총은 이어 “곽 교육감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번 사안을 계기로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며, 교육본질에 충실한 교육감선거제도 개선에 대해 교육계를 중심으로 한 범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곽 교육감을 지원했던 일부 정치권도 그를 외면하면서, 보궐선거 판세가 어떻게 될 것인지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9월 말까지 곽 교육감이 물러나게 되면 10월26일 서울시장 선거와 함께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정치권은 시장 선거의 유불리를 놓고 분주하고, 교육계에서는 보궐선거에 나설 인물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