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작가 이무영의 고향 음성. 음성은 최초의 한글 서사시인 ‘용비어천가’와 경기체가인 ‘상대별곡’을 지어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권제 선생의 고향이요, ‘석인상’의 시인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이상화의 고향이기도 하다. 전원 도시 음성 속으로 이무영의 흙냄새를 찾아 떠난다.
음성은 서울과 멀지 않으면서도 시골의 넉넉하고 온화한 인정이 넘쳐나는 곳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고향 아저씨와 아주머니 같은 자상함이 묻어나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고향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음성의 문화는 소박하고 은은하다. 다른 시․군처럼 뛰어난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문화 유적도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도심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설성공원을 비롯해 역사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권근 삼대 묘역, 돌의 미학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음성 큰 바위 조각공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화만큼이나 음성은 소박하고 진솔한 농민들의 삶이 묻어있는 곳이다. 작가 이무영이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과연 농촌 문학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을까. 도시의 바쁜 생활 속에서 먼 여행을 할 수 없다면 이무영의 고향 음성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 것은 어떨까.
음성은 수도권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한껏 여유를 부리며 답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음성을 찾아갈 때는 출발지가 어디든 충청도로 들어오면 국도나 지방도로를 달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고속도로보다는 느긋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길가에서 과일을 파는 노점상을 만나면 잠시 쉬어가고, 농사짓는 농부들의 모습에 손이라도 흔들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다. 특히 1930년대 소설의 대표적인 경향 중 하나가 농민소설이었던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소설 중에는 이광수나 심훈의 농민소설처럼 계몽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도 있었고, 이기영의 소설처럼 계급주의적이고 투쟁적인 갈등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이무영의 작품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농촌 계몽 운동이나 사회주의 목적성을 강조하는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농촌 생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했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그의 농민소설이다. ‘제1과 제1장’과 속편으로 쓴 ‘흙의 노예’, 5부작으로 계획했던 ‘농민’, ‘농군’, ‘노농’ 등을 보면 그가 얼마나 농촌 생활에 관심과 열정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다.
‘제1과 제1장’ 새긴 설성공원 문학비
음성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이무영의 문학비가 있다는 설성공원을 찾아간다. 설성공원은 중심부에 위치한 시민공원으로 주변 경관이 수려한 음성의 명소다. 이곳에 오면 음성의 옛 이름인 ‘설성’이 오히려 더 정감 있게 느껴진다. 공원에 들어서자 제법 단풍이 든 나뭇잎들이 소슬한 바람결에 가을을 이야기한다.
설성공원에 들어서면 경호정이 있는 연못 옆에 자리 잡은 이무영 문학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무영선생문학비’라고 쓴 전형적인 농촌에서 만나는 흙의 작가 이무영의 문학비는 그래서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이 문학비는 1985년 4월에 지역 문인들에 의해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구상 시인이 쓴 시비 ‘추모송’은 없었다고 한다. 구상 시인의 추모비는 1990년 12월에 문학비의 오른쪽에 대칭을 맞추어 조성한 것이다. 문학비의 측면이나 후면에 나와 있는 건립 날짜가 다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무영 문학비 앞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참배를 한다. 문학비에 참배하는 모습이 이상했던지 초등학생 몇이 조르르 달려와 들여다본다. 문학비 옆으로는 공원의 산책로가 이어져 있는데 이 길이 ‘무영로’다. 이 길섶에는 무영로라는 이름이 새겨진 작은 기념비가 있는데 이 비는 1995년 4월 21일에 세워졌다. 4월 21일은 소설가 이무영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음성문화원에서는 해마다 이무영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이 설성공원에서 ‘무영제’를 개최했는데 이 무영로 기념비는 무영제를 기념하고 이무영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것이라 한다.
이무영이 음성과 인연을 맺은 시간은 매우 짧다. 음성에서 태어나 중원군(지금의 충주시로 병합됨)으로 이사 가기까지 불과 6년에 지나지 않지만 그를 사랑하는 음성 시민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이 문학비에 묻어 있음을 생각하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설성공원 입구에는 성의 모양을 본떠 지은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이 있다. 음성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진다. 연건평 707㎡의 규모로 건립된 전시관은 1층에 향토전시관을, 2층에 유물관을 마련해 모두 900여 점의 음성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관의 2층에는 이 고장 출신의 농민문학가인 이무영과 관련된 문학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의 사진과 유품, 소설의 육필 원고와 작가가 직접 썼다는 이력서, 발표된 소설 등을 만날 수 있다.
유년시절을 보낸 오리골 생가 터
훈훈한 정서가 묻어나는 시골 역사인 음성역을 지나 2㎞ 남짓 달리면 우측으로 평석교라는 작은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갖춘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오리골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 1930년대 대표적인 농민소설 ‘제1과 제1장’을 발표한 이무영의 고향이다. 이무영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여섯 살 때 이사를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났지만 그때의 초기 기억들은 작품 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작품 ‘제1과 제1장’속에 등장하는 배경이 오리골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작은 길옆으로 흐르는 개울물과 개울둑에 자연스럽게 심어 놓은 밤나무. 추수가 끝난 논에는 떨어진 벼이삭을 쪼아대는 까치와 참새의 행렬이 이어지고, 길바닥에 떨어진 밤송이 사이로 알밤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리골의 제일 안쪽에는 이무영의 생가 터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2002년만 해도 이곳에는 이무영의 생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무영이 어린 시절 오리골을 떠난 후 다른 사람들이 살다가 역시 마을을 떠나자 생가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마을의 흉물이 되었고 군청에서는 생가를 철거했다. 생가 터에는 두 개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하나는 음성문인협회에서 생가 앞에 세운 ‘이무영 생가비’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문학 표징이다.
생가가 있던 자리에는 안방과 부엌 등의 위치를 표시해 놓은 작은 나무 푯말이 있어 생가의 위치와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또 생가 터 옆에는 서울 방학동 천주교공원묘지에 있는 이무영의 묘소를 그대로 본떠 만든 묘비가 유족들에 의해 2003년 4월 21일, 그의 기일을 맞아 세워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생가 터 옆에 있는 농가를 찾아들었다. 인정 많게 생긴 노부부가 마당 앞에서 벼 말리기에 여념이 없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이 생가 터를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가 이무영과 생가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별로 아는 것이 없다며 말끝을 흐린다.
정작 이무영의 고향인 오리골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연유도 있겠지만 생가조차 허물어졌으니 누가 그를 추억할 것인가.
생가 터에 있는 무영정은 음성군청이 작가의 생가 터를 정비하면서 그의 문학적인 업적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지은 건물로, 팔각정에 해당한다. 정자 안에는 철거되기 전 생가의 모습이 한 장 사진으로 남아 액자 속에 걸려 있다. 그리고 이무영과 관련된 사진 자료들이 생가 사진 옆으로 나란히 걸려 있다. 정자에 올라서면 오리골의 평화로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작가를 위한 문학 축제 무영제
음성의 대표적인 문학 축제인 무영제는 음성 출신의 작가인 이무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축제로 작가의 기일인 매년 4월 21일을 전후해 개최한다. 음성읍 석인리 오리골에서 태어난 이무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흙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무영제는 이무영 선생의 문학적인 업적을 널리 알리고 추모하는 행사인데, 단순한 추모 행사에서 벗어나 문학과 전시 및 각종 공연 행사를 접목해 종합 예술 형태의 축제로 추진하고 있다.
매년 4월에 개최되는 무영제는 많은 군민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사진 전시회, 무영백일장, 작가의 생가 터 방문, 추모제, 무영문학상 시상, 유품 전시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선생의 문학적 위업과 농촌 사랑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 문학답사를 위한 여행 코스
음성 도착 ⇒ 설성공원 ⇒ 이무영 문학비 ⇒ 무영로 ⇒ 향토민속자료전시관 ⇒ 오리골 ⇒ 이무영 생가 터 ⇒ 무영정 ⇒ 음성 출발
◈ 문의
음성군청 문화관광과=043-871-3061
음성군향토민속자료전시관=043-872-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