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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① ‘깨우치는’ 교수법 ‘깨치는’ 학습법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박수도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다. 가르침과 배움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가르치는데 배울 의욕과 열정이 없다면 가르침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열정이 없는데 배우려는 사람만 의욕이 강하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이 될 수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도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밖에서 쪼는 사람은 스승이고, 안에서 쪼면서 알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은 학생이다. 알은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어미는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의 과정을 도와줄 뿐이다. 가르침과 배움도 고장난명과 줄탁동기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한 판의 춤이다. 멋진 춤을 추기 전에는 항상 마음이 설레듯이 멋진 가르침과 배움의 여정에는 언제나 깨우침과 깨달음의 즐거움이 있다.

‘깨달음’은 생각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 깨달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깨달음에 담겨진 의미를 알면 이해가 갈 수 있다. ‘깨닫다’는 ‘깨다’와 ‘닫다’가 어우러진 말이다. ‘깨다’는 잠과 꿈과 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현실에 다시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의미다. 그리고 ‘닫다’는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간다’는 뜻이다. 결국 ‘깨닫다’는 흐리고 멍청하던 삶에서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 맑고 또렷한 본살의 삶으로 건너와서(깨다) 곧장 삶의 과녁을 겨냥해 내달린다(닫다)는 뜻이다.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제자로 하여금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깨달음이 없는 가르침은 곧 배움이 없는 가르침이기에 가르치지 않은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깨닫다’는 ‘알다’와 질적으로 다르다.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며, 입으로 맛보고, 코로 맡고, 귀로 들어가면서 부지런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길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깨달음’은 노력한다고 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깨끗이 비워서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변덕스럽게 줄곧 날뛰는 ‘느낌’을 눌러 앉히고, 쉴 새 없어 허둥대며 헤집으려고 드는 ‘생각’도 잠재우고, 불쑥불쑥 고개 들고 일어서는 ‘뜻’도 잘라버린 후에 거울같이 고요해진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어야 ‘깨달음’을 만난다고 한다.

참된 ‘깨달음’에 이르려면 우선 ‘깨우침’을 쌓아야 되고, ‘깨우침’이 쌓이면 ‘깨침’에 이르고, ‘깨침’을 거듭 쌓다보면 어느 날 느닷없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깨우치다’는 다른 사람의 힘으로 깨어나는 것이지만 ‘깨치다’는 스스로 깨어나는 것이다. 즉 ‘깨우침’은 수동적·타율적으로 오지만 깨침은 능동적·자발적으로 온다. ‘깨치다’는 ‘깨다’와 ‘치다’가 합쳐진 말이다. 여기서 ‘치다’는 북을 치고 종을 치는 것처럼 ‘깨다’에 힘을 보태는 도움가지다.

‘깨달음’은 각고의 노력 끝에 불현 듯 찾아온다. 안 들리던 귀가 어느 날 갑자기 뻥 뚫리는 것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우선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부터 무수히 깨지는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 자신이 깨지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거나 두려워해서는 깨우침이 올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깨우침은 깨짐의 결과고, 깨침은 깨뜨림의 결과다.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다 보면 깨침이 슬며시 다가온다. 깨침이 축적되면 깨달음이 불현 듯 찾아와 기뻐 날뛰게 만든다. 깨달음은 또 다른 깨달음에 의해서 무참히 깨지고, 또 다른 깨우침으로 자신을 부단히 깨뜨리다보면 새로운 깨침이 온다. 이런 깨침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깨달음을 선사해준다. 결국 깨우침과 깨침, 그리고 깨달음은 종착역이 없는 영원한 미완성 교향곡이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 유영만의 생각지도 못한 생각 地圖는 = 격동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교육은 평생 함께 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교육 본질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도 합니다. 본지는 지식생태학자이자 자기개발 전문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유영만 한양대 교수의 칼럼을 통해 스승과 제자 간에 이루어지는 가르침과 배움의 본질을 격주로 20회에 걸쳐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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