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경기도 신도시의 아파트 밀집지역에 위치한 S초등학교에 부임한 이 학교 교장은 한달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어이가 없다. "교장 선생님. 지금 3학년 체육시간인데 왜 벤치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있습니까. 관심을 갖고 제대로 좀 지도해주세요" 따지듯 언성을 높인 학부모는 자기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담임에게 물어보니 "학부모들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고 툭하면 전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또다른 교장은 더 기막힌 일을 경험했다. 지난해 가을 점심을 마치고 소파에 기대 밀려오는 졸음에 잠시 눈을 붙였다. 그때 울린 전화벨. "교장선생님. 근무중에 낮잠이나 주무시고 그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항의하는 학부모 말에 당황한 그는 전화를 끊고 창밖으로 인근 고층아파트를 올려다봤다.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교장실을 '감시'했다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요즘 일선에서는 '익명의 전화공세'에 시달리는 일이 부쩍 늘었다며 "불안해서 살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교장실이고 교무실이고 마구 전화를 걸어 수업중에 일어난 일을 항의하고 심지어는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교사들은 그래도 "학교로 전화하는 사람은 점잖은 편"이라고 말한다. 상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곧바로 교육청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는 최근 대전지역 일부 초등교가 전화발신지 추적서비스를 이용해 각종 항의전화를 걸어오는 학부모들의 신원을 파악해 온 사건에 대해서도 "적법여부를 떠나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모 초등교 교장은 "학부모가 교육수요자 입장에서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신분을 숨기고 막무가내의 항의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솔직히 발신지를 추적하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젊은 교사는 "수업중에 장난을 치는 학생 서너명을 불러내 손바닥을 두대씩 때렸는데 이튿날 '왜 우리 아이에게 체벌을 했느냐'며 '교육청에 신고해 버리겠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신원을 숨긴 학부모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으면 교직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다"고 털어놨다. 한편 대전시교육청은 발신지 추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관내 3개 초등교장에 '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낙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