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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책과 세상> SF소설 같은 유럽식 민주주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어느 조사결과를 보니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이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 한다. 이유는 다른 사람의 삶이 나보다 나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게 어디 마크 주커버그 때문일까, ‘가식월드’라고 사람들이 말하던 미니홈피나 블로그 역시 ‘방문자’를 의식하는 곳이기 때문에 역시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 내 삶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은 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 뉴스에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함은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드러내는 페이지, 트위터던 블로그던 포털 뉴스에서 누군가의 성형이나 감량 소식 등 타인의 사생활을 자주 클릭하는 사람으로 고쳐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는 방법이 간편하면 간편할수록 우월감이나 박탈감의 발생도 자연히 신속해진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굳이 참견 잘하는 동네 수다쟁이처럼 이 집 저 집 문 일일이 열고 캐고 다니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꾸만 눈앞에 봐, 봐, 이거, 하고 들이미는 정도가 세서 그렇다. 잘 안 보는 텔레비전을 켰다가 한국의 패리스 힐튼이라며 소개되는 여성을 보니 저 집 드레스룸에서 먼지를 주워 와도 우리 집 한 달 월세보다 많이 나갈 것 같았다. 나는 내 드레스룸에 불만이 없다. 사실은 드레스룸 겸 응접실 겸 작업실 겸 침실이지만 뭐 그렇다 치고, 그러나 나도 모르게 기분이 찌질 해지는 것이다. 아마 저 프로그램에 밤새우며 매달린 방송작가들도 몇을 빼고는 수익이 짠 비정규직일 것이다. 직업이 뭐건 다들 너무나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고 싶은데 안 되는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는 것도 열심히 한다.

한국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지만 능률은 가장 떨어지고 삶의 만족도는 가장 낮은 편이라고 한다. 켈로그 6시간 노동제 같은 진보적인 시도가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업가의 마인드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미국은 우리나라와 상당히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커피 파는 아르바이트생이 한 시간을 일해도 그 커피를 사 마실 돈이 안 되는 것 같은 깎은 듯 아찔한 경사의 피라미드 사회 구조가 그렇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저자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은 흑인 전기공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했다. 단전 사태가 발생해 끼니도 거르고 응급 복구를 하다가 피자를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 사회와 닮았다. 피자 문제가 아니라 어이없이 해고되는, 노동자가 파리 목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측은 그를 작업 중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분류했고, 법은 회사의 편을 들어 줬다. 변호사라면 괜찮지 않겠는가 생각하기 쉽지만 게이건의 말로는 자신 같은 중산층도 일자리를 잃으면 아무 대책이 없으니 죽도록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그는 부침이 심한 파리 목숨의 미국 스타일과 유럽식 민주주의를 조목조목 비교한다. 단순히 비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머가 넘치는 문장으로 자신이 경험한 독일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기가 될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고 말한다.

굶고 일하다가 피자 한 조각 먹었다고 전기공은 해고되었지만,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로 마음먹은 독일의 여성 은행원은 그 전에는 노동조합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조합의 도움으로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할 속셈으로 그제야 가입했다. 누가 봐도 얄미운 짓이다. 물론 속이 쓰렸던 게이건은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조합 변호사에게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쿨했다. “아, 그거야 그녀의 권리죠” 이것만 봐도 SF소설 같았는데, 록밴드도 사회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방식도 재미있는데, 시청에서 경연대회를 열어 꼴찌까지 모두 상금을 받는 방식이라고 한다. 툭하면 ‘살아남는 사람은 단 한 명!’을 외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는 그렇게 살고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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