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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나의 제자, 나의 스승

처음 교편을 잡고 학교에 들어섰을 때는 오직 열정 하나만 가지고 덤벼들었다. 그때의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전쟁이었고 내 마음은 문제 학생들에 대한 불만투성이였다. 체벌도 해 봤지만, 학생들은 버릇을 고치지 않고 되레 반항하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엔 내 마음에도, 학생들의 마음에도 분노만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 요즘 녀석들은 하나같이 문제라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졌다. 문제 학생을 만나도 분노의 감정을 갖지 않고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내가 만난 두 명의 훌륭한 스승이었다. 바로 제자 민성이와 성규다.

지각, 조퇴, 결과를 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정한 우리 학급에서 가장 먼저 규칙을 어긴 학생이 바로 민성이였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민성이를 불러 세워 놓고 학교에서 규칙을 어기면 사회에 나가 인생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둥 일장 연설을 하고는 벌 청소를 시켰다. 학생이면 누구나 근면 성실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후로도 녀석이 지각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골라서 꾸중했고 벌 청소의 부담도 가중시켰다. 그런데 녀석은 오히려 벌을 준 내가 무안할 정도로 무관심으로 대했다. 결국 나는 녀석에게 체벌을 가했다.

다음날 녀석은 결석했다. 수업을 마치고 녀석의 집을 찾아갔다. 민성이의 집을 안내하던 친구 녀석이 조심스럽게 민성이의 부모님이 모두 집을 나갔다는 얘기를 꺼냈다. 잦은 부부싸움으로 어머니가 가출해 버리자 며칠을 술로 보내던 아버지마저 집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민성이는 혼자서 마지막 남은 쌀로 밥을 해먹고 그 후로는 내내 굶어서 방안에 누워 있었다.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던 민성이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무심히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고 코가 시큰거렸다.

쌀과 반찬을 마련해서 도와줬으나 결국 민성이는 그 도움마저 거부하고 작년에 가출한 친구 따라 서울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민성이의 무심한 눈빛은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우쭐대고 교육자라고 자처하며 거들먹거렸던 나를 질책하는 눈빛이었다. 간혹 교직생활이 힘들어 질 때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민성이의 눈빛을 떠올리곤 한다.

또 다른 스승인 성규를 다시 만난 장면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마주 쳐 오던 하얀색 승용차가 갑자기 멈추면서 웬 젊은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곧추 도로 가운데를 가로질러 다가왔다.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내게 그 젊은이가 꾸벅 절을 하자 갑자기 긴장한 것이 민망스러웠다. 성규였다.

제법 의젓한 음성으로 엷은 미소를 띠면서도 학창시절 속 많이 썩였다고 연신 죄송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 “그 시절에는 다 그런 것”이라고 말했지만 성규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학생이었다. 그가 그렇게 깔끔하고 의젓하게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선생님의 지도에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녀석, 자취하고 있는 손자를 위해 뒷바라지해준 할머니를 우습게 여기고 부모까지도 내팽개친 녀석이었다. 친구 따라 일주일을 가출했다 돌아와 다시는 도망가지 않고 학교생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용서받은 지 보름 만에 또 도망 간 녀석이었다. 참을성도 없고 삶의 목적도 없고 도덕과 윤리와는 담을 쌓은 녀석으로 보였다.

한번은 학교에 안 다니겠다고 도망 간 녀석을 온 시내를 뒤져 찾아서는 말을 꺼냈다. 겉으로는 마지막 훈계인 양 그를 설득했지만 당시 나는 내심 그 녀석이 도무지 인간 노릇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속된 말로 네가 잘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던 녀석이 조그만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며 풍족한 기쁨을 띤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다. 이제는 학창 시절의 게으름병도 없어졌다고 했다. 지금 이룬 모든 것이 그때 선생님께서 퇴학시키지 않고 바로 인도해준 덕이라고 말한 성규는 스승의 날에 꼭 인사를 드리겠다며 몇 번이고 인사를 하며 떠나갔다.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날의 만남 이후 나는 아무리 문제가 많은 학생일지라도 그 학생이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바로 그 날 성규의 미소가 날 변화시킨 것이다.

민성이와 성규는 나의 제자이다. 그리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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