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노숙자 자립을 위한 ‘빅이슈’ 등의 잡지도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노숙자란 아직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하물며 알코올 중독자는 어떨까. ‘실종일기’의 작가인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그 경험을 만화 ‘실종일기’로 펴냈는데 ‘이 사람 자기를 희화화하고 있잖아?’, ‘본인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데?’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냉정하게 그 경험을 바라보고 있다.
책 말미의 대담에서 ‘자신을 제 3자의 입장에 놓는 것이 개그의 기본’이라고 말하는 그의 어투에서 만화 세계에서 잔뼈 굵은 작가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다. 주제는 심각하지만, 둥글둥글한 그림체로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노숙자 경험과 알코올중독 병원 입원기를 그려냈다.
웃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다. 만화도 때려 치고 목을 매 죽겠다는 각오로 산에 들어갔다가 다른 노숙자의 음식을 훔쳐 먹기도 하고, 버려진 술병들에서 한 방울씩 술을 모아 ‘아즈마 칵테일’이라며 마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면 이상하다. 아마 알코올 의존증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처절하게 웃고 말 것이다. 특히 알코올 중독 병동에서 동료 환자나 간호사 등 여러 사람을 인물의 특징을 잡아 기록한 것이 웃기면서도 처절하다.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 ‘웃프다’ 라는 말이 이 책에 적합한 말인지도 모른다. 웃기면서 슬픈데 한국에서는 이런 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세계2위의 알코올 중독자를 가진 나라지만 인식도 아직 낮고, 책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사실 알코올 의존증 뿐 아니라 다른 정신장애 역시 모두 그렇다. 정신과 한번 드나들면 정신병자, 막장,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면에서 한국 사람들이 정신과를 꺼려하는 것은 결혼 안한 아가씨가 간단한 검진 때문에라도 산부인과 가기 싫어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특히 알코올 의존증은 정신장애지만 그냥 ‘인간쓰레기’ 정도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들 중에는 인간쓰레기가 많긴 하다. 왜 ‘우리’라고 말하는가 하면, 필자 역시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꽤 오랫동안 받고 있기 때문이다. 증상은 호전됐다가 악화됐다 한다. 이 병의 완치율은 20%정도인데, 아즈마 히데오의 말로는 그나마 50대가 되면 다 죽어 버린다고 한다. 알코올 의존증 전문치료 병동은 직계 가족 2인 이상의 동의가 있을 경우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
1989년 만화, 가족 모두 내팽개치고 책 제목처럼 실종되어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배관공으로 일하기도 하던 그는 1998년 결국 연속음주, 즉 자는 시간 이외에는 모두 술을 마시는 지경까지 처해 환각을 보는 고통을 겪다가 강제입원조치를 당한다.
아즈마 히데오는 결국 AA(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모임, 영화에서 흔히 둥글게 모여앉아 자신의 중독 증상을 고백하던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와 연이 닿아 구제받았지만, 같이 치료받던 사람들이 금주하다가 무너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본다. 알코올 중독자는 ‘문제 음주자’들과 다르다. 문제 음주자란 술을 마시는 습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이들은 술 마시는 습관을 교정할 경우 문제없이 음주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들은 다르다. 이들에게는 ‘즐기면서 마시면 되잖아, 본인이 조절하면 되잖아’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인플루엔자에 걸렸을 때 ‘세균을 스스로 조절하면 되잖아’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인 것이다. 필자 역시 지난해 8개월 정도 완전 금주에 성공했지만 결국 올해 들어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도 또 병원에 간다. ‘이게 나아질 수 있을까’, 스스로도 계속 의심하면서 나아지려고 애쓴다.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알코올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실종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다면 AA나 전문 병원을 찾아서 치료받기를 권하고 싶다.
지난 4년 간 치료를 받고 있고, 나아질 때도 있고 안 나아질 때도 있지만, 적어도 병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만은 확고한 발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사고를 많이 쳤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이게 병이라 생각하지 않고 인격의 문제(물론 그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라고만 생각했다면 아마 지금쯤 나는 어느 차가운 길바닥에 죽어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본인의 알코올 문제나 주변 사람들의 알코올 문제로 고통 받아 본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남들 보기에는 멀쩡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몇 년이나 지냈던 유명 칼럼니스트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캐럴라인 냅)과 같이 읽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