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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은상> 내일을 준비하는 희망의 날갯짓

해마다 3월이면 학교는 신입생과 새 학년 진급으로 설렘이 앞서고 의욕이 넘친다. 교무실은 새 학급의 아이들을 맞이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며 학생들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들떠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교단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빚어내는 불협화음을 지켜보노라면 학급 담임으로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운 좋게도 반 학생들이 규칙을 잘 지키며 공부도 잘하고 학생들 간에 단합이 잘되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않은 경우에는 기본생활습관 교육에서부터 시작해 교과학습지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일일이 신경 써야 되므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에 내가 새로 담임을 맡은 반의 경우가 그러했다. 지난 겨울방학 신학년 체제로 반을 편성해 방과 후 교육활동을 했는데 늘 어수선한 교실 분위기에 수업태도도 좋지 않고 게다가 버릇없이 행동하는 학생들이 유독 많은 반이 있었는데 내가 바로 그 반의 담임이 된 것이었다. 학급담임 발표를 하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정말 피하고 싶었던 반이었는데….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반월공단과 시화공단 사이에 있는 이 곳 안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동인구가 많고 학부모들 중 상당수가 맞벌이다. 이런 환경들이 은연중에 학생들의 인성에 영향을 주어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길러내고 있었고 특히 우리 반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각했다.

그렇다고 학급담임 발표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마당에 ‘나 몰라라’ 하며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니 순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식의 오기가 발동하게 됐다. 비록 지금은 말썽꾸러기에 오합지졸인 학생들이지만 앞으로의 교육활동에 따라 얼마든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할 줄 아는 학생들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그것이 나의 교육적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이해․배려 가르치기
하루는 유경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교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아이들이 자꾸 괴롭혀서 학교 못 다니겠어요. 선생님께 말씀 드리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신청합니다.”

지난 3월 달 까지만 해도 반장선거에 출마할 정도로 학급활동에 의욕을 보였던 유경 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놀라웠다. 사건 당사자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평소 게임광이었던 유경이가 게임을 즐기다가 친구들과 어떤 오해가 생겨 지금까지 계속 괴롭힘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일단 그 일은 사건 당사자들 간의 화해로 잘 마무리 되었지만 그 외에도 이와 같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학생들 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학급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소개하고 또한 상대방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마음 열기’ 활동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 전달하기’라 해서 그동안 나에게 도움을 줬던 부모님, 선생님, 친구 등의 사람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고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갖게 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진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진실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혀주어 우리 학생들의 생각과 태도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복도를 지나가던 이웃 반 선생님이 우리 반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어봤다. “선생님 반 학생들이 학기 초와 비교해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예의 바르고 수업태도도 무척 좋아졌는데 그 비결이 뭐예요? 혹시 학생들을 너무 혼내시고 다그치시는 것 아닌가요?” 하는 물음에 그때는 겸연쩍어 “학생들이 이제 철 좀 들어서 그런가 봐요”하며 웃어 넘겼었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학생들 가슴에 사랑만 심어준 것 뿐”이 라고.

사랑이 꽃피는 교실
따뜻한 봄 햇살과 함께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오월의 교실은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다. 학기 초의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학생들은 교실바닥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희희낙락 재잘거린다.

한쪽 구석에선 책을 읽고 또 다른 곳에선 이리저리 뒹굴며 장난치는 모습이 마냥 편안해 보인다. 지금 이렇게 내 집 안방 마냥 지내는 교실이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여기저기 버려진 휴지, 운동장 흙먼지, 각종 오물들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이러한 쾌적한 교실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난 4월부터 교실에서 실내화를 신지 않도록 지도했다. 처음에는 실내화를 벗고 다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학생들의 반발도 많았지만 답답하고 삭막했던 교실이 이렇게 내 집 안방 같이 편안하게 느껴져서인지 이젠 모두들 만족해하는 눈치다.

게다가 맨 발에서 느껴지는 콘크리트바닥의 시원함은 수업시간의 졸음을 쫓아냈고 여름의 무더위마저 저 멀리 날려 보냈다. 또한 발 냄새로 진동하던 교실에선 풋풋한 향기마저 흘러나온다. 이젠 안방 같은 교실을 지키려는 마음에 휴지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자기 자리 주변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청소한다.

“선생님 요즘 교실 바닥이 너무 더러워졌어요. 청소 한 번 더 해야겠어요”하며 교실 청소하자고 담임교사인 나보다 학생들이 더 성화다. 이러한 활동들이 교실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 반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 또한 같이 정화 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안방 같은 교실’ 말고도 우리 반 만의 또 다른 활동이 하나 더 있었다. ‘Best People’제도라 해서 학생투표로 매월 학급의 Best People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우리 반 학생들은 이러한 제도로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의 학급 활동에 대하여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 제도 역시 처음에는 학생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3월, 4월 Best People이 선발되어 그들의 사진과 칭찬카드가 부착되면서 학생들의 태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지각을 일삼던 지각대장 은성이의 지각횟수가 줄어들었고, 매일 졸던 세웅이도 졸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자율학습시간이면 딴 짓으로 일삼던 학생들이 이젠 서로 물어보고 가르쳐주며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Best People 선발에 사용됐던 칭찬카드가 학생들의 행동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으로 우리 반의 교실은 알게 모르게 사랑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행복한 세상을 일구며
학기 초 노인 단기보호센터에 대해 안내를 하고 매월 일정금액의 성금을 모아서 기부하자고 제안했더니 모두들 큰 부담이 아니라는 생각에 흔쾌히 호응 해주었다. 그리고 희망자를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로 했다. 맨 처음 봉사활동을 자청한 것은 다름 아닌 말썽꾸러기 윤호와 그 친구들이었다. 혹시 좋은 일을 하러 갔다가 말썽을 피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직접 동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걱정과 달리 그 누구보다도 할아버지, 할머니 팔다리를 열심히 주물러 드리고 식사 수발 또한 정성스럽게 하는 것아닌가.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사진을 찍어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윤호가 단번에 그달의 Best People로 선정됐다.

한 번은 지역자원봉사센터에서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 진행 도우미를 모집한다는 요청공문을 보고 의미 있는 봉사활동이다 싶어 학급에 들어가서 홍보했다. “어린이날 행사 진행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내일 모레까지 신청하기 바란다”는 말을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교무실에 내려오기 무섭게 열댓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겠다고 신청했다. 모처럼 갖는 휴일이라 집에서 쉴 수도 있으련만 이렇게 봉사활동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한 학생들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행사 당일 수많은 어린이들이 행사장을 찾았고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고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학생들은 봉사활동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찍었던 사진을 다음 날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더니 교실은 또 다시 감동의 도가니가 됐다.

이처럼 봉사활동은 학생들에게 자기가 살아오던 환경과 다른 환경과의 만남의 장을 마련해주며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력을 길러준다. 또한 그러한 만남 속에서 우리 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정을 느끼고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보다 더 성숙해진다. 그리고 그 성숙된 의식이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다 살만한 세상,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신뢰와 아낌없는 지원으로
학급담임으로 일 년을 지내다 보면 학생들 때문에 울고 웃기도 하며, 실망감도 없지 않지만 진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학년 초만 해도 우리 반은 늘 어수선한 분위기에 수업태도도 좋지 않고 버릇없이 구는 학생들도 많아 모든 선생님들로 부터 주의를 받았던 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떤 반보다도 안정된 분위기속에 예의 바르고 수업태도도 좋다. 그동안 이렇게 몰라보게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학생들의 긍정적인 행동변화에 대한 교사의 교육적 신념과 그러한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육이란 지식과 인성교육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경제발달과 사회패러다임의 변화로 지식교육은 강조되는데 비해 인성교육은 소홀하게 다뤄지는 점이 안타깝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학생을 한결같이 사랑하고,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하며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것은 우리 교사의 교육적 사명 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그러한 내일을 준비하는 희망의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우리 교사들은 아낌없이 지원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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