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 용기가 빠진다면 그 지식은 학생들의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할 수 없다. 교수법의 핵심은 가르치는 사람의 목소리와 사연, 체험과 열정, 주관과 해석이 가미된 지식을 통해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있다. 사상이 사상으로서의 진정한 의미를 갖게 하려면 사상에 나의 느낌과 아픔을 가미해서 내가 실천한 체험적 스토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논리적 설명도 중요하지만 감성적 설득이 중요한 이유는 머리로 이해된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가슴으로 와 닿지 않으면 실천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학생들을 이해시켰지만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궁극적인 실천으로 연결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일곱 가지 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가르쳐줘야 할 일곱 가지 용기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앞에 나오는 사자성어는 위기를 지칭하고 뒤에 나오는 사자성어는 위기를 극복하는 용기를 지칭한다.
첫째,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난국에서도 크게 생각하고 크게 이루려는 대사대성(大思大成)의 꿈을 가져야 한다. 학생들이 앞으로도 못가고 뒤로도 못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옆으로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 가르침의 진면목이다. 학생들이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함께 도달할 수 있는 큰 꿈과 생각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꿈의 크기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역경을 즉시 행동해서 완성하는 즉행집완(卽行集完)의 용기로 벗어나야 한다. 백척간두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목적이나 경지(境地)에 도달한 상태다. 어려운 도전과제에 처해있는 학생들이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해결대안을 갖고 만족하고 있을 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노력해 지금보다 좋은 대안을 찾도록 용기를 북돋우는 교수법이 필요하다.
셋째, 계란을 쌓아올린 듯 긴장된 누란지세(累卵之勢)의 파국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기로 돌파할 수 있다. 계란을 쌓는 과정에서 계란을 깰 수도 있으며, 계란이 깨지면 다시 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바람에 들풀의 줄기가 휘어지지만 결코 뽑혀나가지 않는 들풀의 지혜를 학생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넷째, 살얼음판 같은 아슬아슬한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위기를 포기 대신 인내를 더하는 불포가인(不抛加忍)의 용기로 타개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 불가능한(Impossible) 상황에서도 가능성(I'm possible)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진정한 가르침이다.
다섯째, 어려움이 가중되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고통스런 협곡도 처음의 열정을 되새기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의지를 가지면 돌파할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에게만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처음 마음을 되새겨 보면서 새로운 의지와 용기를 다지고 문제가 발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음을 깨닫도록 지도하는 교수법이 필요한 대목이다.
여섯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듯 긴박한 기호지세(騎虎之勢)의 형국을 배수지진(背水之陣)의 전략으로 타파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결연한 용기를 갖고 임하면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결연한 자세를 취해보면 격랑의 파도 뒤에 평온한 바다의 고요함을 즐길 수 있음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난관도 현재의 모든 것을 거는 현존임명(現存任命)의 결의로 굴복시킬 수 있다. 창조적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은 더 나은 새로운 대안을 찾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재해석하는 힘이 중요하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가용한 자원을 활용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자세와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면 빠져나갈 돌파구가 보인다.
가르침의 본질은 지식의 전달보다 지식에 용기를 담아 어려움과 두려움을 학생들 스스로 극복하도록 고무해주고 장려해주는데 있다. 지식보다 용기가 중요하다. 기존 지식이 용기를 내는데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고 디딤돌로 작용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 가르침의 본질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