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1학년 2반 담임을 했을 때다. 입학식 직후부터 11월까지 정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다 싶을 정도로 사건, 사고가 많았던 우리 반이었다. 학부모 소환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의 상담과 생활지도부 징계 등으로 반의 소요가 가라앉는다 싶으면 타 교과 선생님들의 수업을 방해하고 심지어 선생님께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만 갔다. 여러 선배 및 동료교사에게 우리 반의 문제를 진단해보고 상담을 하기도 하면서 나 나름대로는 자구책을 만들어 체험학습 기회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줄 알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하니 절반 가까운 아이들이 시큰둥했다. 결과 역시 참혹했다. 출발 당일 우리 반 37명중 무려 6명이나 무단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무슨 단합대회인가 하며 참담해 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행 내내 폭우가 쏟아져 정말 어디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나마 그동안 아이들에게 한 가지 감사한 것은 반에 ‘왕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학교가 노원구에 몇 안 되는 남녀공학인데다 우리 반은 남녀합반이었는데 담배를 피거나, 무단결석을 하는 사고는 있었지만 다른 반에서는 불거지는 연애 문제나 남녀학생 편 가르기 문제가 유독 우리 반에는 없었다. 그렇게 11월까지 왔다. 이제 한 달 반 정도만 참으면 겨울방학이고, 문제 많은 우리 반 아이들과도 작별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큰 위안이 되었고, 하루하루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 그렇게 한 학년이 끝나나 싶었지만 그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별 사고 없이 하루가 끝나면 감사하다고 생각하던 그때 학교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보낸 사람은 ‘가현(가명)이 아빠’였다. 가현이는 학급 임원인데다 공부도 꽤나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가현이 아버님으로부터 느닷없이 편지가 도착했으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단순한 인사편지인가 했는데,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편지를 읽고 나서, 나는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 교사로서의 자괴감에 몸을 떨었다. 편지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가현이가 전학을 가고 싶어 한다. 아니, 매일 같이 죽고 싶다며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울기 시작해 잠들 때까지 운다. 애 엄마와 내가 달래고 달래 봐도 학교에 가기 싫어해서 아픈 것을 핑계로 몇 번 결석했다. 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가해학생들로부터 더욱 따돌림을 받을지 모른다며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씀드리지 못했다. 여러모로 죄송하다. 가현이를 지켜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고 보니 요 근래 가현이의 표정이 어두워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생리통이 심하다고 했을 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성적상담에서 가현이가 2학년 때는 전학을 갔으면 한다고 말했었다. 이유는 성적 때문이었다. 자신은 내신 성적을 위해 특목고가 아닌 우리 학교를 택했지만 생각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아 기대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나태해져서 성적이 오르지 않은 것은 탓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 핑계는 왜 대냐며 가현이를 엄히 혼냈던 기억이 났다. 그때 가현이가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은 성적이 아니었다. 도와 달라 손을 뻗은 것이었는데 ‘아뿔싸’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것 같았다. 일단 내가 먼저 침착해야 했다. 가현이 아버님께서 담임교사에게 비밀 편지를 보낼 정도였고 그 편지에 ‘죽고 싶다’라는 엄청난 말이 쓰여 있는 이상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발령 3년차인 젊디젊은 교사이자 열정이 넘쳐나야 하는 내가, 아이들에 치여서 무사안일주의로 가고 있다가 반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을 골고루 살펴줘야 하는데, 나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곪아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기초생활수급자 아이들, 자고 나면 문제를 일으키는 일명 ‘문제아들’과 씨름하면서 정작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자. 냉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침착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학기가 마무리 되는 날까지 나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걸 바쳤다. 그것이 그동안 내가 내버려두었던 아이들에게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학교 상담교사와 면담을 신청했다. 2시간 가까운 면담을 통해 왕따 사건에는 담임교사가 개입시기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와 더불어 왕따를 당하는 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금씩 천천히 접근하되 매와 같은 눈으로 아이들을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10년 경력의 베테랑 선배 교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왕따 사건에 비하면 흡연이나 단순 싸움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가해자 및 피해자 아이들과 긴밀하게 상담을 하되 다른 아이들이 전혀 눈치 채면 안 된다는 주의를 몇 번 받았다.
종례 때 우리 반에 들어갔을 때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마음속으로 당황한 건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차마 가현이 얼굴은 못 봤다. 가현이와 시간을 만들기 위해 며칠 전 본 국어과 경시대회 OMR 표시가 잘못됐다고 하고 일단 교무실로 불러 다른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교사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아버님 편지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건 아닌지 조용히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이는 끝없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현가 마음을 먹은 듯 내게 모든 이야기를 쏟아 놓으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따돌림을 당하는 건 확실했고, 이유는 가현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따돌리는 아이들은 모두 세 명인데 그 중에 ‘민정(가명)’이가 주축이 돼 가현이를 괴롭힌다고 했다. 음악시간을 비롯해 이동수업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가현이 옆에 앉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거나, 뒤에서 험담을 하고, 수업시간에 쪽지를 돌리며 가현이만 외톨이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지나가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들으라는 듯이 했다고도 했다. 상담이 끝난 뒤 가현이와 약속을 했다. ‘이 모든 것은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과 ‘선생님이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키지는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가해 아이들도 만나봐야 한다. 어떻게 접근할까 고민하다 세 명 중 ‘아정(가명)’이라는 아이를 부르기로 했다. 겉으로 봐서는 무엇보다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아이였고 그런 아이가 가현이를 따돌릴 리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정이에게 선생님이 교실에서 가현이 따돌리는 것을 알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한 뒤, 도움을 요청했다. 혼내거나 잘잘못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회복’이 우선이니 아정이를 통해 가해 아이들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듣고 싶었다. 아정이는 이 모든 사실을 담임교사가 알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란 듯 했다.
“왕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가현이가 평소에 공부를 잘한다고 잘난 체를 좀 하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시험 문제에 대한 불만이라도 말하면 큰 소리로, 다 수업시간에 배운 건 데 왜 모를까 라면서 비꼬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대놓고 싫은 내색 할 수 없으니, 그저 말을 섞지 않았는데, 그게 가현이를 괴롭히는 줄 몰랐어요. 민정이가 가현이를 좀 싫어하는 건 맞아요. 민정이는 영어성적이 오르지 않아 늘 고민인데 그 앞에서 영어시험이 교과서에서 다 나와서 쉬웠다는 둥 그런 소리를 해서 둘 사이가 좀 싸늘했던 적이 있었어요.”
아정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는 참 부끄러웠다. 담임교사라는 사람이 아이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알고 보니 민정이 부모님은 사실상 이혼이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했고, 어머님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민정이가 나에게 보낸 위급 신호였다. 자신을 도와주고, 안팎으로 힘들고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교사로서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행히 아정이는 지금 사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미안해하는 내 진심을 읽었는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아이만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고 가해 학생의 이야기도 충분히 듣고 정황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고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누구 하나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상처의 깊이를 최대한 가볍게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가현이 보다 민정이가 더 문제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정이를 불러 따져 묻는다면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 말이다.
우선 가현이 어머니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어머니도 학교에 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다 반시간 가량 울고만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는 나라도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에 매몰차게 이야기했다. “울지 마세요. 어머님께서 자꾸 우시니까 아이가 더 나약해지는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어머님이나 아버님께서 더욱 강해지셔야지요. 그러니 아이보다 더 불안해하면서 흔들리는 모습 보이지 마시고, 힘들어 하는 아이 의지될 수 있게 꼭 안아주시고, 감싸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저도 학교에서는 가현이 부모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느라 나 역시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우선 민정이를 성적 상담을 핑계로 교무실로 불렀다. 맹랑하고 당돌한 아이여서 담임교사의 눈을 흔들림 없이 바라보았다.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 이런 아이를 상대로 왕따 사건을 캐물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말 그대로 성적상담을 한 뒤에 아이를 올려 보내고,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온 마음을 다해 편지를 썼다. 뒤돌아보니 나도 대학 시절 동기에게 까닭 없는 미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저 재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다 서로 군대 가고 취업을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긴 했지만, 까닭 없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건 삶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걸 편지를 쓰면서 새삼 깨닫게 됐다.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과 가현이가 얄미운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미움과 짜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하는 사람은 학교생활 전체가 흔들리면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곡진하게 써내려갔다. 선생님도 대학 시절 왕따 비슷한 걸 당했을 때 학교 가기 싫을 정도로 괴로웠는데 17살 어린 학생, 더구나 여학생이면 어떨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조금 더 선생님이 관심을 갖고 민정이를 지켜봤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선생님도 반 아이들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는 말로 끝맺었다. 다음 날 편지를 민정이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미 사건을 모두 알게 된 이상 그냥 둘 수는 없어, 방과 후 가현이와 민정이를 비롯한 가해 아이들 셋을 모두 불렀다. 가해학생 한 사람씩 차례로 상담실에 들어와 가현이와 마주 앉힌 후 선생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서로 서운한 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우선 아정이가 가현이와 마주 앉았다. 몇 번 주춤거리더니 그간 서운했던 점을 모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번 말문이 터지니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모두 나왔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었다. 소녀들의 전쟁은 결코 크고 복잡한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현이가 아정이에게 샤프심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없다고 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하니, 아정이는 놀라면서 정말 샤프심이 없어서 못 준 것이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빌려주려고 했는데 마침 그 때 앞뒤 친구도 샤프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라도 빌려주려는 내 마음을 모르고 네가 얼굴을 돌려 버려서 나도 마음이 상했다. 이런 식의 말이 오가며 오해가 풀렸다. 마무리로 서로 오해될 일이 있으면 앞으로 이야기를 해서 풀어나가자, 나로 인해 마음이 괴로웠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끝맺음이 됐다.
민정이와도 마주 앉았다. 민정이는 어릴 때 외국에서 생활해 영어가 능숙했지만 시험만 보면 영어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괴로워했다. 그런데 가현이가 그 앞에서 이번에 영어시험이 쉽게 나와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왔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것이 민정이가 가현이에게 마음이 돌아선 결정적이 이유가 됐다. 민정이는 가감 없이 덤덤하게 기현이에게 이야기 했다. 전날 나에게 편지를 받아서인지 시종일관 차분했다. 가현이는 별 다른 생각 없이 말을 한 것이었고, 더구나 민정이는 원서를 읽을 정도로 영어에 능숙했으니 당연히 잘 봤다고 생각했다. 그때 네 표정이 다소 안 좋았었는데 내가 미리 살폈어야 했다. 마음에 상처가 됐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민정이도 그제야 마음이 풀렸는지, 음악시간에 아정이를 네 옆에 앉지 못하게 한 건 내 잘못이다.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꽈배기처럼 한번 마음이 꼬여버리니 걷잡을 수 없었다. 미안했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사실 나는 교사로서 그 순간 별로 한 일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줬을 뿐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장소’가 없다. 교실이라는 북적거리는 장소 말고, 오해가 있었을 때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장소, 서로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려는 곳이 아닌, 다 내려놓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 본연의 모습을 바라보려고 하는 ‘자리’ 말이다. 그 자리를 갖게 된 뒤, 정말 거짓말처럼 가현이가 다시 웃었다. 민정이는 여전히 맹랑하게 굴지만 담임교사인 내 앞에서 다소 수줍어하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12월, 바람 잘 날 없던 우리 반은 왕따 문제 해결로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쏜살같이 흘러갔고, 잃었던 웃음이 조금씩이지만 다시 돌아오게 됐다. 무엇보다 징글징글하게 느껴졌던 우리 반 아이들과 정이라는 것이 새록새록 돋아나 종업식을 하던 날은 반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서늘했던 날들이었다. 경력교사에게도 왕따 문제는 심각한 일이었는데 하물며 경력이 일천한 나에게 있어 말해 무엇 하랴.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하며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학교 폭력은 교사의 도움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의 협조 없이는 더더군다나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 교사 그리고 동료교사를 비롯한 학교 전체가 서로 똘똘 뭉쳐 해결해 나갈 때에만 음지에서 괴로워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情)’은 참으로 끊어내기 어려운 듯싶다. 몸 고생 마음고생 하며 애면글면 1년을 보냈으나, 이 아이들과 지금도 여전히 끈끈한 사제 간의 정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 아이들이 얼마 전에 수능을 봤다. 2년 전 우리 반 교실에서 언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이, 새까맣게 타버린 담임교사 마음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통을 심하게 겪은 내 아이들, 이번 수능에서 아이들 말로 ‘대박’이 나길 간절히 바라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