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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콩트> 병태

월요일 아침, 첫 교시가 끝날 시간에 전화가 왔다는 쪽지를 받았다. 박병태의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병태가 많이 다쳐서 입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병태는 특수학교에 다녀야 할 정신지체아였다. 해마다 특수학교 교사들이 찾아와 병태아버지를 설득해보려 했지만 병태아버지는 병태를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 특수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굴욕감을 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자식을 어떻게 해서든지 정상적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은 자식에 대한 왜곡된 사랑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병원을 찾아갔다. 병태는 링거주사를 팔뚝에 꽂은채 침대에 누워 있었고, 병태아버지는 일하러 가지 않았는지 그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병태의 얼굴은 전혀 몰라보게 퉁퉁 부어 있었고 누렇게 떠보였으며 이마, 눈가, 입가 등이 푸릇푸릇했다. 입술마저 과장되게 그려진 만화처럼 퉁퉁 부어올라 미음조차 떠넣기가 힘들다고 했다. 병태는 감은듯이 보이는 부은 눈으로 나를 알아보았는지 미소지으려고 얼굴 근육을 조금 씰룩이더니 그것도 고통스러운지 곧 그만두고 말았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요?”병태의 손을 잡아주며 병태아버지에게 묻자 병태아버지의 얼굴에 분노의 불길이 확 솟아올랐다. “어떤 군인놈이 글쎄 우리 병태를 이렇게…, 세상에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성한놈도 아닌 우리 병태를 개패듯이 두들겨놓다니….”

병태아버지는 분이 나서 말을 잇지 못했다. 병실의 다른 환자의 보호자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병태를 들여다보았다. 어려서부터 엄마 없이 자란 병태는 어머니의 정이 그리워 그러는지 여자의 다리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나 스타킹 신은 매끄러운 느낌을 퍽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건, 누구이건, 종아리를 내놓은 다리만 보면 다가가서 슬슬 쓰다듬는 버릇이 있었다. 학년 초가 되면 여선생들이 멋모르고 우리 교실 옆을 지나가다가 혹은 우리 교실에 들어왔다가 병태때문에 기겁을 하고 도망가는 사건이 의례히 발생하곤 했다. 나도 그게 싫어서 언제나 바지만을 입고 교실에 들어갔다.

전날은 일요일이어서 병태는 시내를 돌아다닌 모양이었다. 어떤 군인아저씨가 정복을 입은채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가씨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스타킹 신은 늘씬한 다리를 내놓고 걷고 있었다. 그걸 본 병태는 아가씨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 다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여자는 기겁을 했고 그녀의 애인은 병태를 때렸다. 이것이 병태가 다친 사건의 전모였다.

열네살이나 된 커다란 사내아이가 벗은 다리를 만지자 여자가 대단히 놀랐을 것은 당연하다. 그렇더라도 그 군인이라는 남자는 그렇게 까지 심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상이 아닌 소년을 보고 더욱 심하게 주먹질 발길질을 했을 지도 모르고 여자 앞에서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고자 더욱 힘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주변 사람들의 추측이 내게도 분노의 불길을 지펴주었다.

“병태야, 인제 선생님 다리만 만지고 다른 사람 다리는 만지지마, 응?”내가 말하자 병태는 고개를 흔들며 “아니. 인자 테레비만 만져.”했다.

텔레비전에 여자의 다리가 나오면 텔레비전만 만진다는 뜻이었다. 병태아버지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로 돌아와서 교장실로 들어가 보고를 했다. 내가 뒤돌아서 막 나오려는데 교장의 말이 들렸다. “아참, 진주반 운영비 배시되었던데, 집행예산서 만들어보지. 성한 애들한테 쓸 돈도 부족한데 뭐났다고 병신 애들한테 그리 많은 돈을….”

나는 돌어섰다. 아니, 일반인들의 편견도 참을 수가 없는데 교육자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니. 평소에도 그런식으로 말하는 교사들이 가끔 있어서 나를 얼마나 화나게 했던가. 병원에서부터 고여있던, 대상이 없어 퍼내지 못했던 분노를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시키고 말았다. 나는 교장이 마치 그 군인이라도 되는 듯이 소리를 지르고 대들었다. 교장도 뭔가 잔뜩 골이 난 사람처럼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내게 해대었다. 어디선가 한선생이 쫓아오더니 나를 얼른 우리 교실로 끌고 올라갔다.

“김선생이 이해를 해. 교장선생님도 마음이 아파서 그러시잖아.” “마음이 아플 일이 뭐 있어요? 또 마음이 아프면 그렇게 이야기해야 해요?”나는 풀쐐기처럼 쏘아 붙였다. “몰랐는가? 교장선생님 큰 아드님이 정신지체아야. 서른 살도 넘었을 걸. 지금도 돈을 주면서 뭐할거냐고 물으면 학교에 갈 때 책가방이랑 신발이랑 산다고 그런대. 그러니 학교 한 번도 보내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불쌍하겠어? 한 번은 수용소에 보내려고 했는데…….”

교장을 향해 쏘아올려지던 분노의 화살이 갑자기 공중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마치 원심력을 잃어버린 돌멩이 마냥 뚝 떨어짐을 느끼는 순간 한선생의 계속되는 말소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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