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6억 원으로 증액해 원상복구…필수 교육예산 삭감
장애특수학교 설계비 전액, 사립학교 시설비 70억원 감축
교총․서울교총 “교육본질 외면한 정치적 폭력” 강력 반발
서울시교육청의 내년도 본예산 심의 과정에서 시의회 교육위원회가 ‘혁신학교’ 예산 증액에만 ‘올 인’하고 필수적인 교육예산을 삭감한 것을 두고 연일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교육현실을 외면한 ‘정치적’ 판단이라는 지적과 함께 특히 ‘사립’이라는 이유만으로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등 균형을 잃은 편향된 시각도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은 6일 40억 원이었던 혁신학교 예산을 96억 원으로, 10억 원이었던 혁신교육지구(구로·금천) 예산을 30억 원으로 증액해 원상복구 시켰다. 당초 시교육청이 시의회에 제출할 당시 50억 원이었던 혁신학교 관련 예산은 이로 인해 총 126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증액에 대한 시교육청의 동의도 구하지 않아 ‘지방의회는 자치단체의장의 동의 없이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로운 비용항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한 지방교육자치법(제127조 3항)도 무시됐다.
혁신학교를 챙기는 대신, 필수적인 교육기본 사업 예산들은 줄줄이 삭감했다. 10억 원을 배정했던 장애특수학교(2개교) 설립을 위한 설계비 예산은 전액삭감, ‘0’원이 됐고 ‘전국연합학력평가’ 예산도 12억 원 감액됐다. 사립이라는 이유로 △사립학교 긴급·위험 수리비(25개교 33건) 70억 원 △사립유치원 교재 교구비 3억 원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배움터 지킴이 수당 및 운영비 11억 원(사립초, 국제중, 자사고, 사립특목고 114명 수당 및 74개교 운영비)이 삭감됐다. 이밖에도 마이스터고 운영 지원비(수도전기공고, 미림정과고) 9억 원, 스마트스쿨 구축·운영 15억 원도 감축 대상이 됐다.
교육위원회의 예산 심의 결과를 받아 든 교육청의 입장도 이번에는 강경하다. 시의회가 아무리 예산을 쥐고 있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다. 특히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방만한 예산 사용 등 문제가 연일 지적돼온 혁신학교 예산을 줄여 교육예산에 목마른 다른 교육활동에 투자하겠다는 교육청이 세운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 시교육청 고위관계자는 “필수 교육 예산들을 감축해 혁신학교 예산에 몰아주는 꼴”이라며 “바뀐 예산안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의회 교육위가 사립학교 시설비를 감축한 데 대해서도 “학교 선택권이 없는 가운데 사립학교라는 이유만으로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교총·서울교총(회장 이준순)도 서울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회장 윤남훈) 등 18개 교육·학부모·시민단체들과 함께 12일 예결위가 열리는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교총은 “시의회가 예산 심의 권한을 남용해 정책 결정에 발목을 잡고, 다수당의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며 교육예산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교육본질을 외면한 정치적 폭력으로 각성해야 한다”고 항의했다. 또 “예산의 방만한 운영, 학교회계원칙을 무시한 무분별한 예산 집행으로 물의를 빚은 혁신학교 예산을 일방적으로 증액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혁신학교 정책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예산 삭감은 시의회가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립학교에 대한 행정보복이며 학교현장의 어려움과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적 결정”이라고 질타했다.
서울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도 “사립학교 긴급·위험 수리비 148억 중 70억을 삭감한 것은 현재 붕괴위험에 노출돼있어 긴급 보수가 필요한 해당 사립학교의 어려운 상황을 외면한 처사이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립학교에 배정된 학생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다수인 구성을 백번 감안하더라도 1억 5000만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고도 정당한 평가조차 거부하는 혁신학교에 대한 예산 원상 복구는 너무 노골적인 편들기다. 공정해야 할 시의회가 사립을 ‘비리’ 집단으로 보는 시각 그대로 예산 감축을 한 것도 그 자체로 설득력을 잃었다.
시교육청의 내년도 예산은 예결위에서 계수조정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다수관계자에 따르면 합일점을 찾지 못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예산은 당초 본회의에 상정·처리될 것이라 예상됐던 16일을 넘길 전망이다. 하지만 서로 양보 없는 정치적인 싸움 속에 희생되는 것은 필요한 특수학교 설립이 무산돼 원거리 통학을 계속해야 하는 장애학생, 긴급 수리가 필요한 학교에서, 배움터 지킴이 없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과 이들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이다. 교육위원회가 과연 ‘혁신학교’를 위해 존재하는 곳인지, 아니면 ‘서울교육’을 위한 곳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