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현행 단계별 평가 개선 명분
우수모형 개발에 1만 파운드 지원
학교별 평가 무력화 의혹 등 반발도
지난달 20일 영국 교육부가 학생평가 모형 개발을 공모하는 ‘평가혁신안 개발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공모는 올 9월부터 적용될 영국 국가교육과정 개정 작업의 일환으로 현행 국가교육과정의 성취수준을 폐지하고 단위학교별로 자율적인 평가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영국은 현재 학교 내에서 우리의 성취수준 평가와 유사한 방식으로 국가교육과정에서 정한 성취기준에 따른 평가를 하고 있다. 문제는 성취수준이 8단계로 구분된다고 하지만 각 단계별로 다시 a~c로 구분되고, 취학 전 아동의 발달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인 P지표를 또 8단계 두고 있어 사실상 총 32단계로 구분되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학년별 성취수준이 아니라 전체 유·초·중등 전 교육과정을 대상으로 통합된 성취수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자녀가 도달한 단계가 해당 학년에서 우수한 정도인지, 학력미달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별도의 도표를 참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픽 참조>
영국 교육부는 이런 현행 평가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학부모들이 이해하기 힘들 뿐 아니라 교사들도 학생의 실제 역량보다는 성취수준 단계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는 논리로 평가체제 전환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평가의 폐지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그 중 일부는 국가가 학교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주장이다. 리버풀에 사는 학부모 피터 헤일은 “국가교육과정의 성취수준을 폐기한다는 것은 국가가 교육과정과 학생평가에 대한 책임을 포기한 것”이라며 “학교마다 평가가 다르면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아무도 학생들이 진짜로 발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평가혁신안 공모는 새로운 평가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학교에만 맡길 경우 교원들의 업무가중과 학부모들의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이런 비판에 대한 정부의 응답인 셈이다. 2월 14일까지 여러 학교에 일반화할 수 있는 편리하고 단순한 평가모형 개발을 공모해 우수학교에 최대 1만 파운드(약 1750만원)를 지원하고, 이후 모든 학교가 참고할 수 있도록 모형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교원들과 교육전문가들은 여전히 평가체제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일견 학교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객관적인 학력지표 제고를 목표로 교육개혁 정책을 추진해온 고브 장관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저항의 원인은 ‘단위학교 자율성’을 명분으로 학교에서 현재 활용하고 있는 단계별 지표는 폐지하면서 오히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강화하고 그 결과를 학교평가에 적용해 외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번 평가체제 전환의 밑바탕에는 학교 자체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거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유일한 객관적인 지표로 만들어 그 중요성을 강조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영국 교육부가 사업 공고에서도 두 번이나 자율학교 스폰서의 참여를 언급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평가체제 전환이 학교 외부의 평가 방식을 학교 내에 도입하도록 유도한다는 분석도 있다. 또 이 같은 정책이 고브 장관의 핵심정책인 자율학교에 예산을 추가로 지원하고 제약 없이 성적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율학교를 확대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