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차는 체육만 좋아하는 학생들
정서, 감정, 느낌 등 신체적 표현 취약
체조동작으로 글자 만들며 창의력도
“남고생들에게 체육시간은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팍팍한 학교생활에 한 줄기 샘물이자 한 여름에 먹는 얼음 한 조각과도 같은 존재예요. 티셔츠가 젖어서 찝찝하든, 발 냄새가 진동하든 단 10분이라도 자율체육 시간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4년 동안 체육교사로 지내며 느낀 남고생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들과 교과 진도를 나가고 표현활동을 진행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이승현 인하대사범대부속고 교사는 남학생들을 ‘목석’같다고 표현했다. ‘체육’하면 뛰고 차고 땀 흘리는 것만 생각하는 학생들…. 이들에게 체육교과의 한 부분인 표현활동영역을 가르치겠다며 정서와 감정, 느낌을 신체로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분명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부채춤이나 발레를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가 고민 끝에 찾아낸 활동은 ‘몸으로 표현하는 한글’이었다. MBC 예능 ‘무한도전’ 달력특집에 나왔던 한글표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교사는 “정적인 체조동작을 통해 근력 및 균형감을 키울 수 있음은 물론 동작을 구상하면서 창의력도 신장될 수 있는 활동이라 생각했다”며 “한글의 소중함도 일깨워 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2일 강당에 모인 3학년 3반 학생들은 이 교사의 지도에 따라 조별로 나뉘어 ‘ㅍ’을 몸으로 표현했다. 이후에는 조별로 원하는 단어를 만들게 했더니 ‘야자’, ‘버스’ 등 다양한 단어들이 등장했다. 이동준 군은 “친구를 들어 올리거나 몸을 기대는 등 서로 의지하다보니 협동심이 생기는 것 같고 어떤 단어를 표현할지 논의하면서 다른 친구의 생각과 개성도 알게 됐다”며 “색다른 수업이라 친구들 모두 재미있게 참여했다”고 밝혔다.
인천체육교사모임에 소속된 이 교사는 지난달 29일 경기 중등좋은체육수업나눔연구회 총회에서 자신의 수업사례를 발표하고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몸으로 표현하는 한글수업 뿐만 아니라 지난해 1학년 학생들과 틈틈이 동작을 연습하고 준비했던 플래시몹 이벤트도 소개하며 자신의 체육수업 노하우를 동료 교사들과 나눴다.
“교사에게 ‘연구’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졌던 좋은 수업에 대한 물음과 고민을 풀어나가는 과정 자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제 고민과 생각을 다른 선생님들과 공유하며 표현활동 콘텐츠들을 늘려 나가고 싶습니다.”
“입시에 찌들고 경쟁에 지친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의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것이 체육교사의 역할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이 교사는 “다음 표현활동으로는 건전한 응원문화를 알려주자는 의미에서 미술교과와 통합해 카드섹션 수업을 기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